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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Mar 29. 2024

맛있는 커피란 말입니다

커피의 풍미 


 '커피맛'이라고 하면 보통 '쓴 맛'을 떠올립니다. 아마 커피가 부담스럽거나 어려운 분들은 커피의 쓴맛을 떠올리는 분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커피는 커피의 종류에 따라 정말 여러 가지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커피는 설탕이나 시럽을 따로 넣지 않았는데도 단맛이 느껴집니다. 견과류나 초콜릿 같은 고소달달함이 있기도 하고, 과일 같은 상큼달콤함이 있기도 합니다. 여기에 향이 더해지지요. 캐러멜 같은 단향이 나기도 하고, 싱그럽고 우아한 꽃향이 나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맛과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게 스페셜티 커피의 특성이지요. 


 커피에는 이런 다양한 맛과 향이 있고, 이걸 세부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센서리(sensory)라고 합니다. 


 커피를 먹고 나서 어떤 맛인지 설명해 보라고 하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맛있다', '별로다', '쓰다', '내 스타일이다' 등 표현하기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이때 이 커피가 맛있으면 왜 맛있는지, 별로였으면 왜 별로였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센서리가 하는 일이지요.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이 커피는 포도와 같은 신맛과 시럽에서 느껴지는 것 같은 단맛, 그리고 후미에는 다크초콜릿에서 오는 쌉싸름함이 있네요." 이렇게 센서리가 되었다면, 컵노트(cup note)는 '포도, 시럽, 다크초콜릿'으로 표현되겠지요. 


 사람마다 느끼는 맛의 강도와 차이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맛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미(五味)라고 하지요. 단맛, 쓴맛, 신맛, 짠맛, 감칠맛. 이러한 일반적인 맛을 구체화해 설명하고 표현하는 일이 센서리가 하는 일인 것입니다. 


SCAA의 커피 테이스터스 플레이버 휠



 센서리에서 커피의 단맛은 주로 과일의 단맛과 그 외의 단맛으로 나뉘는데, 여기에는 신맛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이때 맛있는 커피를 위해 중요한 것은 '거부감 들지 않는 신맛'입니다. 덜 익은 레몬이나 식초처럼 시기만 한 신맛 말고, 잘 익은 포도나 사과처럼 맛있는 신맛 말입니다. 적절한 단맛을 동반한 감칠맛이 도는 신 맛. 이 신맛을 우리는 '산미(酸味)'라고 합니다. 


 커피는 커피 자체의 특성, 생산지와 재배환경, 가공방법, 로스팅, 추출환경 등 수많은 요인에 의해 커피 맛은 너무나 다양해집니다. 어떤 커피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내고 표현하는지가 커피하는 사람들의 숙제입니다. 맛있는 커피를 위한 숙명 같은 것이지요. 



 저희 에스프레소바에서는 각각의 손님들이 취향에 맞게 드셨으면 하는 마음에 에스프레소의 기본 블렌딩 원두를 3가지로 준비해 놓았습니다. 


 이 중 한 가지가 산미를 담당하고 있는 '산뜻 블렌딩'인데, 이 커피는 베리류의 상큼함을 떠올리게 하면서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의 신맛과 입안을 감싸는 달콤함이 다채롭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산미(酸味)'라고 해도, 신맛은 호불호가 나뉩니다. 신맛 자체를 싫어하시는 분도 계시고, '신 커피'를 싫어하시는 분도 계시지요. 한 모금 맛보고 "아우, 셔!" 하시는 분들은 그냥 고소한 커피를 드시는 것도 좋습니다. 


 커피의 '고소한 맛'은 크게 견과류의 고소한 맛과 초콜릿과 같은 고소함으로 나뉩니다. 아몬드, 호두 같은 기름진 고소함이 입 안에 가득 차오르는 커피가 있고, 초콜릿의 쌉싸름한 고소함이 혀 끝에 맴도는 커피도 있지요. 


 저희의 기본 블렌딩 중에서도 가장 기본인 블렌딩이 바로 '고소 블렌딩'입니다. 견과류의 고소함과 달달함이 부드럽게 퍼지는 커피지요. 밸런스가 좋아 편안하고 부담이 없습니다. 한 모금 마시면 입안에 커피 향이 가득 차고, 목 넘김이 좋아 꿀떡꿀떡 마시게 된답니다. 누구나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커피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부드럽기만 한 커피보다 조금 더 진하고 묵직한 커피를 찾으신다면, 다크한 느낌의 커피도 있습니다. '다크하다'는 맛을 표현하는 말은 아니지만, 커피의 맛을 표현하는 데에는 널리 쓰이고 있는 말입니다. 커피를 볶을 때 열을 더 가해 조금 더 다크한 색깔이 나오도록 로스팅한다고 해서 하는 말이지요. 가끔 '탄 맛'으로 설명하는 분들이 있는데, 다크한 맛은 '탄 맛'과는 다릅니다. 타고 남은 재와 같은 쓴맛이나 매캐하고 아린 탄맛은 '맛있는 맛'과는 거리가 있으니까요. 


 다크한 맛의 '맛있음'은 보통 다크초콜릿의 다크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다크 블렌딩'은 바로 이 다크초콜릿의 묵직한 단맛을 제대로 드러내면서  견과류의 고소함을 품은 커피를 표현하고 싶어 만들어진 커피입니다. 진하지만 부드럽지요. 쌉싸름하지만 쓰지 않고, 여운이 남으면서도 부담스럽지는 않습니다. 


 산미가 없는 커피를 찾으시는 분들 중에 적당히 무게감 있는 커피를 찾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께는 다크 블렌딩을 추천해 드리곤 합니다. 이 커피를 드시고 나서는 "이게 커피지!"라고 하시지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는 이 커피로 라떼를 만들어 마시면 맛이 풍부해진다고 느낍니다. 우유에 다크초콜릿을 타서 먹는 느낌이랄까요. 


 맛을 설명하기 위한 예시로 저희 블렌딩을 간단히 소개했습니다만, 커피에는 대표적으로 신맛과 고소한 맛, 쌉싸름한 맛이 존재합니다. 여기에 각각의 맛들을 아우르는 단맛과 감칠맛이 있고 적당히 조화롭고 깔끔하다면 우리는 보통 그 커피를 '맛있다'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풍미(風味)는 '음식의 고상한 맛'을 의미합니다. '고상하다'는 말은 '수준이 높고 훌륭함'을 일컫는 말이지요. 수준이 높고 훌륭한 것을 접하면 우리는 마음이 좋고 즐겁습니다. 어렵고 부담스러운 것은 불편하지요. 커피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편함이 없어야 합니다.  


 단맛이라고 해서 모든 단맛이 긍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어떤 단맛은 너무 달아서 거부감이 드는 경험이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반면, 어떤 쓴맛은 기분 좋은 쌉싸름함이 되지요. 이런 측면에서 보면 단맛이라고 하여 무조건 고상한 맛이 아니고, 쓴맛이라고 하여 무조건 불쾌한 맛이 아닌 것입니다. 좋은 느낌으로 다가와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맛. 마음을 흡족하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보게 하는 맛. 그것이 풍미(風味)입니다. 


 커피에는 달콤함과 새콤함, 고소함과 묵직함이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쓴 맛이 불쾌하지 않고 달달함이 충분히 동반될 때, 거기에 더해 상큼함이나 고소함이 입안에 균형감 있게 함께 차오를 때, 우리는 그 커피를 '맛있는 커피'라고 느낍니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 기분이 좋고 즐겁고 위안이 되지요. 네, 커피의 풍미(風味)입니다.




 커피를 드시는 손님들의 분위기를 살피곤 합니다. 손님들의 분위기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음~"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분도 있고,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같이 온 동행의 눈을 마주치기도 합니다. 이런 능동적인 반응이 아니더라도, 어느 순간 손님들이 앉아계신 테이블에 즐거움이 묻어나기도 하고, 목소리의 톤이 높아지며 웃음소리가 섞여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면 저는 '커피를 맛있게 드시고 계시는구나!'하고 생각합니다. 맛있는 커피는 즉, 즐거움이니까요.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커피를 드시고 성큼성큼 다가와 "커피가 정말 맛있네요!!"라고 적극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그 즐거운 분위기가 저희를 휘감곤 한답니다.)


 이 즐거움을 위해 오늘도 커피를 볶고, 정성껏 내립니다. 커피의 풍미가 잘 드러나도록이요. 우리의 커피를 드시는 분들의 하루가 행복하고 찬란하길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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