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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May 10. 2024

오늘의 커피


 손님들 중에 커피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 있습니다. 오셔서 이 커피, 저 커피를 드시면서 이 커피는 어떻고 저 커피는 어떻고, "그래서 맛있네요"라고 말씀하시지요. 어떤 프로세싱을 거친 생두인지, 로스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추출 레시피는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었는지 물어보시기도 하시면서 저희와 함께 이런저런 커피이야기를 나눕니다. 정말 너무나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셔주시는 것만도 감사한데, 이렇게 구체적인 피드백까지 주시니, 저희로써는 새겨들을 말씀이 많아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모든 유익한 대화보다 더 마음에 남는 피드백이 있습니다. 


 작년 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 50, 60대쯤 되어 보이는 한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오셨습니다. 아저씨는 매장 앞에 자전거를 세우시고 카페 안으로 들어와 따뜻한 라떼를 달라고 하셨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게 담아달라고도 했습니다. 따뜻한 라떼 한 잔을 1구 캐리어에 담아 드리면서 "맛있게 드세요!"하고 보내드렸습니다. 


 다음날 그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또 오셔서 라떼 한 잔을 달라고 하셨고, 저는 또 라떼를 1구 캐리어에 담아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아저씨는 자전거를 타고 오셔서 라떼를 가져가셨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했을까. 어느 날 아저씨는 저를 보며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커피맛은 잘 모르는데, 여기 커피 맛있는 건 알겠더라고요. 커피 맛있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난다 긴다 하는 커피 하는 사람들도 여럿 보았고, 커피 마니아분들도 많이 만나 보았지만, 저는 자전거 탄 이 아저씨의 이 말씀이 가장 마음에 남습니다. 



 '맛있는 맛'에 대해 앞에서 여러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런 맛 저런 맛, 오미(五味)가 어떻고, 센서리가 어떻고... '커피의 맛'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을 어렵게 주욱 늘어놓았지요. (참고 <맛있는 커피란 말입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름의 미적 기준이 있어서 그 기준을 충족하면 '맛있다'며 그 맛을 분석하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일반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찾기란 너무나 막연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커피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아무리 초콜릿의 달콤 쌉싸름함과 견과류의 고소함을 표현하려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게 초콜릿의 맛인지 견과류의 맛인지 별로 생각하지 않고 먹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사람들이 한입 먹어보고 "맛있네!" 혹은 "별로네"를 이야기하면, 그게 왜 맛있는지 혹은 그게 왜 별로인지를 설명해야 하는 게 커피 하는 사람들의 숙명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진짜 맛있는 커피'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한입 딱 먹었을 때 딱 "맛있네!"라고 반응하게 되는 커피가 맛있는 커피인 것입니다. 잘 익은 과일의 산미와 단맛이 훌륭한 스페셜티 커피든, 꼬숩꼬숩함이 입안에 차오르는 라떼든, 설탕과 크림의 황금비율이 더해진 카페 피에노(Caffe Pieno)든, 한입 딱 먹어보면 압니다. 이게 맛있는 건지 아닌지. 


 좋은 소고기를 한입 먹어보면 "음! 정말 맛있군!" 하게 되지요.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자란 소인지는 몰라도, 한 입 먹어보면 좋은 소고기인지 아닌지 바로 알게 됩니다. 커피도 그렇습니다. 한입 딱 먹어보면 알지요. "와, 맛있네!" 하면 그건 진짜 맛있는 겁니다.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한입 딱 먹어보면 압니다. 




 자전거 탄 라떼 아저씨의 말씀은 제가 추구했던 딱 그 이상(想)이었던 것 같습니다. 맛에 대해 뭐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설명이 필요 없는 커피 말입니다. 






 카페 일을 하다 보면 유독 힘든 날이 있습니다. 하루종일 바쁘게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든 날도 있고, 정신적으로 힘든 날도 있습니다. 


 몇 년 전 어느 날, 마신 커피가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저는 그 커피를 마시고 이렇게 메모를 남겼습니다.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물었다.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났다. 힘든 하루였는데, 힘든 아침이었는데, 과연 내가 오늘을 살 수 있을까 싶었는데, 커피가 '살 수 있다'라고 말해주었다. 난 커피를 먹으며 엉엉 울었다. 커피가 맛있어서.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울다 말고 다시 커피를 먹었다. 입에 또 한 모금 들어가 커피가 혀에 닿으면 나는 또 엉엉 울었다. 너무 맛있잖아. 커피가 너무 맛있잖아.


 커피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저는 '맛있는' 커피를 팔고 싶었습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먹어도 맛있는 커피, 그리고 커피를 먹지 않는 사람이 먹어도 맛있는 커피. 하지만 '맛있는'이라는 이 애매모호하고 지극히 주관적이고 불분명한 말을 그동안 저는 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기껏 찾은 설명은 '커피의 단맛'이었습니다. 상큼함, 달달한 감칠맛, 고소함과 부드러운 쓴맛과 같은 것들. 블루베리, 사과, 포도, 자몽, 레몬, 아몬드, 초콜릿 같은 커핑 노트들 말입니다. 


 저는 저 메모를 기록한 그날 '맛있는'을 드디어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입 딱 먹어보아 맛있는 커피, 설명이 필요 없는 커피. 오늘을 살게 하는 커피. 



 이 글을 읽는 오늘이 어떤 분들에게는 힘든 날일 수도 있습니다. 이토록 힘든 이런 날, 커피 한 잔이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전의 저의 그 힘든 하루를 달래주고 힘을 준 그때 그 커피처럼 말입니다. (혹은 어쩌면 매우 기쁜 날일 수도 있겠지요. 이토록 기쁜 날, 커피 한 잔이 축배의 잔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그러니까 제가 이 일을 지금도 계속하는 이유이자,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이유일 것 같습니다. 어디서 어떤 커피를 드시든, 여러분의 오늘에, 커피가 맛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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