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간장오이피클과 너의 자몽청
어떤 일도 준비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운동하러 나가는데, '일어나자마자'라고는 해도 정말 '눈 뜨자마자' 곧바로 밖으로 뛰쳐나가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일어나자마자'에는 30~4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준비'다.
일단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운동복과 물병과 블루투스 이어폰을 챙기고, 마스크를 끼고, 운동용 마스크는 따로 챙기고, 모자도 눌러쓰고, 베란다 문을 열어봐서 많이 추우면 도톰한 외투도 걸쳐야 한다. 베란다로 나간 김에 화분에 물도 조금 준다.
속이 빈 채 운동하면 핑 돌 수 있으니 사과라도 한 쪽 먹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사과를 깨끗이 씻고 잘라야 한다. 사과를 아삭아삭 씹으면서는 강아지 밥을 주고, 사과를 잘라먹은 칼과 도마와 강아지 밥그릇을 설거지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관에 나가 신발을 신고 나를 쳐다보는 강아지에게 "다녀올게!" 하는 인사를 진하게 한다. 여기까지가 '일어나자마자'다.
모든 일은 '준비'가 우선이다. 이 '준비'라는 말에는 수많은 것들이 담긴다. '외출 준비'라고 하면, 일어나 씻고, 밥을 먹는 게 좋을지 안 먹는 게 좋을지 생각하고(먹는다면 먹을 준비를 하고, 먹고, 치우고), 어떤 옷을 입어야 적당할지 정하고, 외출해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서 꼼꼼히 챙기고, 내가 나간 후 홀로 남겨질 집을 정돈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그래서 '준비'에는 시간이 든다. 그 시간은 세심한 계획과 단호한 결단으로 가득한 시간이다. 모든 준비가 그렇다. 어느 장소에 갈 준비, 누군가를 만날 준비, 새로운 일을 시작할 준비, 이사할 준비 등.
아빠는 엄마가 장점이 참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어떤 장점은 좀 지나칠 정도였지만, 아빠는 그런 좋은 점은 지나쳐도 좋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었다. 뭘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줄 때가 많았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다가 딱히 줄게 없으면 하고 있던 귀걸이와 목걸이를 빼서 그 자리에서 그냥 주기도 했다. 오래전 중국에 2주 정도 봉사활동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신고 있던 신발까지 다 주고 슬리퍼만 간신히 신고 집에 돌아왔다.
우리 엄마와 만난 사람은 그 누구도 빈 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누군가를 만날 때는 며칠 전부터 그 사람에게 줄 것을 준비했다. 날아갈 듯한 목소리로 "다녀올게!" 하던 엄마는 양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돌아올 때는 빈 손이었다. 맨날 엄마만 그렇게 다 퍼주면 어떡하냐고, 그 사람들은 엄마한테 아무것도 안 주지 않냐고 내가 볼멘소리를 하면 엄마는 딱 잘라 말했다. "받으려고 주는 거 아니야. 주고 싶어서 주는 거야. 오늘 그 사람이 그걸 받으면서 얼마나 좋아했다구!"
엄마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항상 무언가를 주었다. 짜장면 배달 아저씨한테도 음료수 한 병이든, 새우깡 한 봉지든 아무튼 무언가를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에는 늘 간식거리와 음료수들이 많았다. 새우깡 같은 봉지과자 이외에도 초코파이, 초콜릿, 비스킷, 빵, 과일주스, 비타 500과 같은 것들이 쌓여 있었다. 우리 집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을 때도 그랬다.
엄마는 늘 말했다. "부자만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게 아니야. 오히려 세상에는 하나도 베풀지 않는 부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리 가진 게 없어도 마음만 있으면 뭐라도 줄 수 있어. 돈이 없어서 못 주는 게 아니야. 마음이 없어서 못 주는 거야. 그래도 우리는 이만큼이나 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니. 우리 열심히 살아서 더 풍족하게 살자. 훨씬 더 많이 줄 수 있도록."
아빠는 다른 건 몰라도 엄마의 이 부분만큼은 내가 닮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빠는 하늘나라에 갈 준비를 하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베풀면서 살아.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기왕이면 많이 베풀 수 있도록 열심히 살면 더 좋고."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줄 때도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 엄마가 집에 항상 간식거리를 쌓아 놓았던 것은 '누구에게 언제든 줄 준비'를 해 놓았던 것이다. 나 또한 집에 몇몇 간식거리를 구비해놓았다. 나는 먹지 않더라도, 갑자기 누가 왔을 때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기 위함이다. 경비아저씨, 택배기사님, 정수기 필터 교체 기사님...
엄마가 구비해놓았던 과자들만 보다가, 내가 직접 준비하려니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마트에 가서도 나름대로 고심해서 과자를 고를 필요가 있었다. 배달하시는 분들은 잠깐 얼굴만 보고 가시지만, AS기사님은 집에 들어오셔서 한참을 있다가 가시니까 그때그때 적당한 과자를 찾아야 했다. 오시는 분들의 연령대도 신경이 쓰였다. 60세가 넘으신 분에게 새콤달콤을 드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단 걸 못 드시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으니까 방울토마토 같은 간단한 과일이나 견과류 같은 것들도 챙겨놓았다.
그렇게 힘들게 힘들게 장을 보고 집에 와서 정리하고 보니 엄마의 '줄 준비'와 비슷한 모양새를 하게 되었다. 엄마는 늘 이렇게 온갖 종류의 간식을 준비했던 것이다.
'누구에게 언제든 줄 준비'를 한다는 것은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잡아서 주는 게 아니었다. 그 사람의 분위기를 이해하고, 잠깐이지만 그 사람과 대화하면서 어떤 걸 주면 가장 적절할지, 그러니까 받는 사람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는 선에서 아주 귀여우면서도 극진히 대접받는 느낌이 들만한 그런 것을 주는 것이었다.
줄 때의 기쁨은 뭐라 말로 할 수가 없다. 이건 엄마의 표현이 정확하다. "받으려고 주는 거 아니야. 주고 싶어서 주는 거야."
가장 최근에는 세탁기를 청소하러 오신 분들에게 어디서 오셨냐고 물어보니까 1시간 거리에서 오셨다고 하시길래, 가시는 길에 차 안에서 드시라고 고구마 말랭이와 두유를 싸드렸다. 경비실에 택배 찾으러 갈 때면 하루견과 한 봉지나 비스킷 한 봉지 같은 것을 들고 가는데, 그러면 경비아저씨는 또 너무나 좋아하신다.
친구들을 만날 때면 난 또 '줄 준비'를 한다. 지금 가끔 만나는 친구들은 오래된 친구들이기도 하고, 나에게는 하나같이 의미 있는 친구들이다. 그 친구들과 만날 때면 나는 늘 뭐라도 줄 것을 준비해서 간다. 이 때는 조금 더 신경을 쓴다. 보통, 1~2주 전에 약속을 잡으니까 준비를 할 시간이 1~2주 정도 있는 셈이다. 수많은 선택지들 사이에서 나는 고민하고 고민한다. 만나는 친구의 성향도 고려해야 하고, 포장도 신경 쓴다. 이왕이면 예쁘게. 그러면 선물을 받는 사람도 기쁘겠지만, 선물을 주는 나도 아주 기쁘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보면 줄 생각부터 들 때가 많아졌다. 인터넷 쇼핑을 하다가도 '이건 그 친구한테 주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어떤 레시피를 보면 '이건 그 친구한테 만들어주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자꾸 엄마 생각이 난다. 아, 엄마가 이랬구나. 이래서 엄마가 그렇게 맨날 뭘 사들이고, 뭘 만들고 있었구나.
얼마 전 친구의 아기가 첫 생일을 맞이했다. 뭔가 특별하면서도 유용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아기가 조금씩 걷기 시작했으니 신발을 선물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기는 너무 금방 자라서 신발을 사줘도 몇 달 못 신을게 뻔했다. 나는 한참을 더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기 엄마의 신발을 함께 사주기로 했다. 아기 키우느라 고생하는 내 친구에게 유용한 선물이 될 거란 생각을 하니 더 좋았다. 아기와 아기 엄마가 커플 신발로 신으면 그게 또 예쁠 것 같았다. 아기 신발, 어른 신발이 같은 디자인을 한참 동안 찾아다녔다. 기껏 찾아내도 세트로 함께 파는 데가 없어서 각각 다른 곳에서 주문해서 각각 배송받았는데, 배송이 또 오래 걸려서 점점 약속한 만남의 날이 다가올수록 나는 마음을 졸였다.
아기 신발은 아기에게 아직은 너무 커서 어서 아기가 자라 신어줄 날을 기다리고 있으나, 아기 엄마는 그 신발을 벌써 신기 시작했다. 처음 신은 날 그 친구는 나에게 인증샷을 찍어 보여주였고, 그 신발을 신고 나를 만나주었다.
어느 날, 라슈에뜨La Chouette님의 <손쉬운 간장 오이피클>을 보고 입맛이 돈 나는 다음날 당장 시장에 나가 오이를 샀다. 혼자 사는 나는 1~2개의 오이면 충분했지만, 시장에서는 채소를 낱개로 팔지 않는다. 나는 무더기로 쌓인 오이 5개를 샀다. 양파도 한 망이나 샀다. 양배추도 같이 넣으면 또 좋을 것 같아서 양배추도 한 통 샀다. (양배추는 또 왜 이렇게 큰지ㅜ 제일 작은 양배추로 고르고 있는데 옆에서 보고 있던 주인아저씨가 제일 큰 걸 집어주며 '이게 더 크고 좋네. 이걸 가져가요!'라고 했다. 결국 나는 제일 크고 싱싱한 양배추를 끌어안고 집에 왔다.)
집에 와서 오이와 양파와 양배추를 깨끗이 씻고 다듬는데, 오이 5개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많은 양이었다. 오이를 썰다가 당황해서 양파는 2개만 썰었다. 양배추는 원래 반통을 할 계획이었는데, 썰어놓은 오이 무더기, 양파 무더기를 보니 또 당황해서 반의 반통만 하기로 했다. 겹쳐진 양배추를 펼치니 양이 더 많아졌다. 안 되겠어서 반의 반의 반통만 하는 걸로 했다.
내용물을 통에 꾹꾹 눌러 담았는데 원래 준비했던 통이 모자라서 다른 통을 더 꺼내야 했다. 이거 너무 많아서 어쩜 좋지, 라는 생각과 동시에, 마침 며칠 전에 한 친구에게서 자기 집에 놀러 오라는 초대를 받았던 게 기억났다. 고등학교 때 친구인데, 그 친구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집에 계속 살고 있는데도 나는 이제야 처음으로 그 집에 놀러 가게 되어, 어떤 걸 주면 좋을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그때부터는 일이 재밌어졌다. 간장물을 만드는데, 원래 계획에 없던 레몬을 조금 넣었다. 밥반찬으로 장아찌처럼 먹어도 맛있을 수 있도록 청양고추도 넣었다. 어차피 설탕을 따로 넣지 않으니, 조금 더 단맛을 끌어올리기 위해 양배추를 조금 더 썰었다. 덕분에 양이 더 많아졌지만 괜찮았다. 깨끗이 닦고 열탕 소독도 한 유리병에 손질한 재료들과 간장물을 들이붓고 냉장고에 넣어두고서도 1~2시간마다 병을 뒤집으며 맛이 잘 배길 소원했다. 밤에도 자다 말고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 병을 뒤집었다. 모든 순간에는 '그 친구가 좋아하겠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아마 내가 간장오이피클을 만들어 나 혼자 먹을 생각이었다면 아마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는 않았을 것 같다. 친구에게 '줄 준비'를 하면서 더 맛있게 만들어지도록 더 신경을 쓰고 심지어 '맛있어져라'하고 계속 쓰담 쓰담하며 주문을 외웠던 모든 시간들 덕분에 나의 간장오이피클은 더 맛있어졌다.
사실은, 양배추를 조금 더 썰어 넣었더니 양이 또 너무 많아져서, 그 친구에게 줄 통에 넣고도 많이 남아 고민하다가 다른 유리병을 또 꺼내 또 깨끗이 닦고 또 열탕 소독해서 한 병 더 만들었다. 그 한 병은 아기와 신을 커플 신발을 선물했던 친구에게 안겨 주었다. 친구는 딱 자기 스타일이라며, 먹을 때마다 실시간으로 중계를 보내왔다. 이토록 격하게 좋아해 주다니! 좋다니 좋구나! (참고 <좋다니 좋군요>)
유난히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 있다. 뭘 이렇게까지 준비하나 싶은 그런 사람. 정말 필요한 것들을 챙겨 오고,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만들어 온다. 그러기까지 아마 많이 고민하고 궁리했을 것이다.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쥐어짜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 가늠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을 보면 나는 감동한다.
그건 준비를 해 본 사람만 아는 것이다. 평상시에 그렇게까지 준비를 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준비성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 사람이 그걸 그렇게까지 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결과만 보고 감탄할 뿐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생각하겠지. '우와, 멋진 프레젠테이션이었어. 저 사람은 타고난 재능이 정말 훌륭하구나. 나와는 다른 사람이야. 부럽네.'하고 말이다.
하지만 준비를 해 본 사람은 안다. 그토록 훌륭한 프레젠테이션을 하기까지 사전 조사를 얼마나 많이 했을지, 얼마나 많은 과거 사례를 찾아보고, 말 같지도 않은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여기저기 자문을 구하고, 연습 또 연습했을지 아는 것이다. 그래서 감동한다. 감탄이 아니라.
그러니까,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것이다. 음식을 먹기만 할 때는 이 음식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짐작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음식을 먹기만 할 때는 잘 모르지만, 직접 요리를 해 보면 '이거 하나를 먹는 게 보통 일이 아니구나'는 걸 깨닫게 된다. 나 또한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하면서 '요리'라는 건 엄청난 준비를 수반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먹는 건 20분이면 충분한데, 만드는 건 2시간이니까.
우리 엄마는 늘 맛있는 음식, 건강한 음식, 영양이 듬뿍 들어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그러느라 엄마는 얼마나 많은 정성과 시간을 쏟았던 건지. 재료 본연의 싱싱한 맛, 비밀특제양념의 맛은 물론, 특별한 사랑과 정성의 맛이 더해져 그 음식을 완성했을 것이다. 나의 간장오이피클이 그랬던 것처럼. 이게 바로 손맛일 것이다. 사랑과 정성의 맛.
요리처럼, 특히 '다른 사람'을 위한 준비의 시간은 희생과 헌신의 시간이다. '줄 준비'를 한다는 것은 이토록 큰 일인 것이다. 관심과 애정이 없이는 그렇게까지 정성을 들일 수도, 시간을 쏟을 수도 없다.
얼마 전 친구가 자몽청을 만들어 주었다. 껍데기를 일일이 손으로 다 벗겨내 알맹이만 깨끗하게 채워진 자몽청을 보니 친구의 정성과 애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더 싱싱하고 좋은 자몽을 선별해서 구입하는 것부터 시작이었을 것이다. 하나하나 깨끗이 씻고 칼집을 냈겠지. 목과 허리가 뻐근해지도록 그 껍질을 하나하나 꼼꼼히 벗겨냈을 것이다. 친구는 설탕을 덜 넣어서 맛이 없을까봐 걱정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시중에서 파는 설탕 덩어리의 자몽청보다 훨씬 맛있었다.
이 자몽청에 따뜻한 물을 부었더니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자몽차가 되었다. 이 자몽청에 탄산수를 탔더니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자몽에이드가 되었다. 내 몸에는 친구의 애정과 자몽의 비타민이 듬뿍 들어갈 테니 이것들이 나의 몸과 마음을 견고하게 해 줄 것이다. 이렇게 나는 또 건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