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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Oct 19. 2023

시댁환장곡-22화 내가 치루는 전쟁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22화 내가 치루는 전쟁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22화 내가 치루는 전쟁


사랑을 해서 결혼했다. 그 사랑 때문에 사랑했던 엄마에게 상처도 주고 미안했지만, 나는 스스로 당당했다. 하지만 현실은 연애와 사랑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선사하고 당황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다. 남들이 결혼하면, 따르며 사는 방식으로 살면 꽤 괜찮을 줄 알았다. 그리고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안락함과 편안함으로 상징되는 중산층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이번 생, 이만하면 되었다고 자부하며 살았다.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늦었지만 나란 사람은 이것으로 만족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야 각성했다고 하면 변명이 될까?  

    

설 명절을 기점으로 시댁 식구들과 얽히기 시작하면 너무 힘들다. 이러한 힘든 반복을 25년 가까이 하고 있고, 처음 힘들었던 것이 100퍼센트라면 지금의 힘듦의 강도는 10퍼센트정도로 낮아졌는데 힘들다고 느끼는 강도는 더 커졌다. 몸은 편해지고 있는데 마음은 더 불편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식사 모임, 오래간만에 만나서 겉도는 안부들, 진심을 주고받기보다 상처를 입히는 모임 때문에 우리 시댁은 구제 불능이라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그 문제의 원흉은 어머니이고 칼을 휘둘리는 망나니는 시숙님들이라고 생각하며 나의 시간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남편을 비롯한 핏줄로 상징되는 ‘성 씨’들이라고 원망하면서 말이다.      


나답지 못하게 사는 이유는 ‘시댁 식구들’ 때문이라 확신했다. 과연 오로지 그들의 문제인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근본적인 질문에 다가선다. 사랑이라는 감정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랑 그 이면도 보아야 하지 않았을까? 


너무 어려서 경험이 없어 그것을 보지 못했다는 변명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다. 정말 너무 어렸으니까. 하지만 진짜 문제의 원인은 나를 존중하지 않는 무례한 사람들에 대해 비겁하게 ‘좋은 것이 좋은 거다’라는 두루뭉술하게 넘기며 살았던 ‘나’ 아니었을까? 그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홀로 된 친정어머니 욕먹는 일 만들지 않기 위해서, 내가 좋아서 한 결혼이니까 힘들다는 말을 못 하고 참아내기 급급했던 거 아닐까, 남편까지도 내 편이 아닌 홀로 싸우는 것이 두려워서, 배운 거 티 낸다는. 그런 말 듣기 싫어서 화가 나도 웃고, 하고 싶은 말 있어도 없는 척 바보, 등신처럼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며느리, 아내, 딸, 시누이, 올케 등 역할에 따라 주어지는 이름들은 모두 가면이다. 어느 한 역할을 벗어던진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겐 또 다른 역할의 가면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역할은 나라는 존재가 명확해지는 데 필요하고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작은 등불이다. 하지만 그 역할이 형식적인 껍데기만 남아있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내가 치루는 전쟁은 단순히 며느니로서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나’를 찾기에 있는 것이고 그 시작은 기존의 역할에 대한 의문과 재정의에 있고 더 나아가 사람들이 말하는 ‘역할’이라는 것에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점은 각성하고 인식의 전환이 아니라 문제 대한 해법이 뻔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아주 신박하고 창의적으로 혀를 내두르는 통쾌한 방법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점은 절대로 유머와 재미를 포기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내가 치루는 전쟁의 실상은 ‘나를 변화시키는 치열한 전투’이다. 남이 알려주는, 변화를 기다리는, 시간이 흐르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정의, 설, 추석, 제사, 등의 모든 의식을 나만의 방식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관계들 속에서 상대방을 이해하며 주도권은 포기하지 않는 그리고 나를 희생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원망과 복수의 칼날을 상대방에게 겨누는 것 아니라 우아하지만 솔직해서 불편하지만, 사실을 추구하고 싶다. 그것이 ‘나다움’을 찾게 되고 결국 ‘애리다움’에 이르게 한다고 믿는다.  

   

예전의 나였으면 설 명절을 빌미로 의미 부여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나약한 울분만 토하고 1월 내내 우울했을 텐데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려 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다. 어쩌든 불만족스럽고 화가 나지만 내가 살아낸 1월은 내 인생이 되어버렸다.      


지난주 만난 지인에게 설 명절 잘 보냈냐는 인사에 자신이 운이 좋다고 말했다. 시댁 식구들 자기에게 힘들게 하는 사람 하나 없다고, 조금 어색하고 불편하긴 한데 설 명절 등 하루, 이틀만 불편하고 말면 되지. 생각하고 넘어간다고 한다. 나는 3주가 넘게 시집살이 중이라고 말하며 부럽다고 했다. 


편안하고 안락하게 사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고 생각하고, 그에 미치지 못한 자기 현실에 비교하고 나의 힘듦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감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게 살고 싶다고 주장하고 소망했지만 결국 속마음은 남들보다 편안하고 불편한 관계는 어떤 식으로든 회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냐고 말하고 싶다.      


모두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알고 내막을 들어보면 모든 가족이 막장이긴 별반 다르지 않은 거 같다. 부러운 부분은 한 면이고, 다른 부분은 찌그러지고, 잘려 나가 있는 것이 보면 우리는 참 단순하다 못해 어리석은 존재라는 사실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 가족이란 혈연으로 맺어진 혈맹 같아 보이지만 피떡으로 굳어진 상처들의 집합 같기도 하다. 알고 보면 피로 얼룩진 너덜너덜한 관계가 너무 많음에 놀랍다. 나만 낭자한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 그리고 인생 특별한 거 없는 고기서 고기란 허망함, 그리고 이런 촌스럽고 우악스러운 삶이 오히려 정직해 보이기까지 한다. 


완벽해 보이는 삶이란 완벽하게 가리며 사는 삶일 수 있다. 우아하게 호텔에서 스테이크 먹어도 하루나 이틀 후 다 똥으로 쏟아내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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