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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Oct 19. 2023

시댁환장곡-21화 설명절이라는 전쟁터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21화 설 명절이라는 전쟁터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21화 설 명절이라는 전쟁터


설 연휴는 전쟁터다. 승리를 확신했던 다짐, 긍정적인 에너지는 전투에 임하는 군인이 적을 만나면 깨닫게 된다. 나뿐만 아니라 적도 목숨 걸고 지키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스스로가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처음 받아 든 총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운 풋내기 얼뜨기 군인이라는 사실 말이다. 상대방이 쏘는 인정 없는 총에 맞아 죽거나, 부상하거나, 살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상대방으로 쏘고 죽여야 하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한 번의 전투만으로 알게 된다.    

  

내가 준비한 군인정신은 신기술이 장착된 뒷담화와 기습방문에 허를 찌르고 남편이라는 스파이로 인해서 나의 정보가 다 노출된다는 사실을 연휴가 시작되고 알게 되었다. 적은 더 약아지고, 굳이 명절을 전투라 칭하고 시댁을 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과한 설정일지 모르지만, 신기하게도 상황과 입장을 설명하는데 제격인 것으로 보아서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것은 맞는 거 같다. 

    

감사하게도 시간은 며느리의 편이다. 세 며느리는 고양이에서 호랑이로, 바닥을 기던 뱀에서 하늘로 승천하는 불을 뿜어대는 용으로 변하고 있다. 살려면 별수가 없다. 해마다 반복되는 설 명절이라는 전투는 며느리들을 노련하게 만든다. 반대로 아들들은 으르렁거리던 사자에서 어딜 가든 따라다니는 강아지로 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배려하고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상황이 조금 유리해졌을 뿐일지 승패가 결정 난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싸움 같을지 모른다. 누가 봐도 러시아가 이길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오래 버티는 전쟁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잘 버티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인가 이길 거라고 장담 못하는 것은 비실비실해 보여도 상대는 러시아이기 때문이다. 승패가 쉽게 나지 않는 길어지는 전쟁 국면에 우크라이나가 이길지도 모른다는 것이고 미국 등 유럽의 지원 없이는 언제든 패배로 끝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즉 자력으로 전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 모두 피해자라는 것을 역사는 끊임없이 증명하고 있는데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전쟁에 속한 이상 이기기 위해 싸워야 한다. 연약한 마음, 망설이는 마음이 파고들면 지는 것이 전쟁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잊혀가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으로 주식과 부동산 하락이 우리에겐 더 큰 걱정이고, 눈에 보이는 가까운 불꽃이기 때문이다. 그렇듯 전근대적인, 금이 가고 있지만 아주 견고한 성벽 같은 시어머니를 군주로 한 시댁과의 전쟁은 무지하고, 철없으며, 사리 분별이 쉽지 않은,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듣기 싫은, 갈등을 죽도록 견디지 못하는 나에게는 애초부터 지는 싸움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나처럼 사는 사람이 없다. 여전히 힘들고 스트레스받고 있지만 무난하게 설렁설렁 타협하면서 살아가고 있어 보인다.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10년 전의 일상을 보내고 있으니 나에게 지금 이 싸움은 고독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다. ‘요즘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아이고, 힘들겠다.’라는 말은 공감이 아니라 구분 짓기이다. 고립된 상태에서 싸워본 사람은 안다. 그냥 죽어도 좋고, 기회만 있으면 항복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정신을 차려보니 너무 강적을 만난 거 같아 조금 당황스럽다고나 할까. 나이 오십을 바라보니 잘 살고 싶기보다 다르게 살아가 보고 싶다. 남들이 좋다는 삶의 궤도가 아니라 비와 바람 피하지 못하고 우산도 없지만, 나만의 궤도를 찾아서 떠나고 싶다. 설 명절이라는 전쟁터는 점점 사라가져 있다. 우리 아이들에겐 할머니 때 치열함을 거쳐 엄마 때 마무리가 된 잊힌 전쟁으로 기억하리라 생각한다. 이 전쟁에서 나는 해방을 앞둔 전쟁의 끄트머리에서 마지막 마무리를 하는 군인이다.


전쟁의 참상을 그 누구보다도 목격하게 되고 평화의 시대를 살게 되면서도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 이 전쟁에서 내 운명이다.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내가 맡은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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