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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Oct 21. 2023

시댁환장곡 38화 익숙해졌다고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38화 익숙해졌다고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38화 익숙해졌다고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힘든 일도 많지 않고 불편한 사람도 적어진다. 참 좋은 일이다. 예민하지 않다는 증거니까 말이다. 나이를 먹었을 뿐 힘든 일이 덜 힘든 일이 되지 않고, 불편한 사람이 불편하게 만들었던 이유를 개선되었을 리 없다. 

     

힘들고 불편해도 시간이 쌓이면 익숙해진다. 익숙해짐에는 편해졌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함정이 존재한다. 어둠이 익숙해지면 아무것도 안 보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어둠에 적응한 눈이 어스름하지만, 사물을 구별하고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침이 온 건 아니다. 한밤중이든 곧 동이 틀 새벽이든 어둠은 깜깜함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멀고 먼 땅끝에서 홀로 농사를 지으며 지내는 시어머니가 이제 80세가 넘어 85세이다. 한 해 한해 갈수록 90세에 가까워진다. 거칠어진 손과 교환한 먹거리를 철마다 정성 들여보내시는 어머니에게 부득이한 일이 없으면 일 년에 한 번 생일은 챙겨드리고 싶다. 일 년 365일 외롭게 지내시니 생일날만큼은 맛이 없어도 손수 만들어 식사를 챙겨드리고 나서 안락하게 지내시라고 집 안 청소와 부엌 정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자 마음먹는다.      


이것은 익숙해진 마음은 아니다. 사랑까진 못 미치는 그 언저리에 존재하는 시간이 만들어 낸 기적의 감정이다. 그리고 제사와 추석과 명절은 계속되어야 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과 암울한 미래가 보이더라도, 똑같이 차리는 음식은 물려 지겹지만 모여서 음식을 나누는 것은 고생스럽더라도 시어머니가 계실 동안은 어머니가 원하던 대로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 후엔 잘 모르겠다. 계획해도 마음먹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미리 닥치지도 않았는데 이런저런 생각은 부질없고 시간 낭비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그때 가서 생각하고 결정하면 된다. 어떤 상황일지는 모르지만, 그 상황에 내 감정뿐만 아니다 다른 시댁 사람들의 가치관, 신념, 의지, 소망, 상황, 감정들이 포함되어 요동칠 것이기 때문이다. 

     

셰프는 아니지만 마음만 먹으면 시어머니의 생일상은 뚝딱 차려낼 수 있다. 그리고 제사와 추석과 명절 음식도 항상 뻔하고 비슷하지만, 하루 이틀 몸이 피곤해서 그렇지 세 며느리가 모여 일사불란하게 차려낸다. 그것이 뭐든 20년을 넘게 해오다 보면 머리와 심장을 거치지 않고도 손과 발이 알아서 한다. 시간이 선사해 준 무신경한 익숙함과 반복이 가져다준 효율적으로 능숙함은 도와주는 사람 없고, 어차피 해야 할 거라면 빨리 후다닥 해치워야 여유가 생긴다는 것을 깨달아서 일 것이다. 어디에 부딪혔는데 다행히 찢어지지는 않아 피도 안 나고 크게 다치지는 않아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 상처는 안 나도 멍이라도 들었을 것이다. 그 멍은 자기만의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고 아프다 표시하지 않고 감내하게 된다.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아픈 건 사실이다.     


20년이란 시간이 흘러 시댁의 모든 행사는 능숙하게 감당하게 되었다. 힘들다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익숙한 힘겨움이고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편함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익숙하고 불편하지 않게 되었다고 해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불만이 없는 건 아니고, 짜증 내고 화내지 않고 웃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이왕 하는 거 웃으며 하자고 마음먹은 자기 세뇌의 결과이다. 처지를 바꿔봐라 어찌 좋아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그 안에 속하지 않고 바라보는 시선은 대게 깊이가 없다.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척일 때가 부지기수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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