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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Oct 22. 2023

시댁환장곡 39화 발칙한 상상_시어머니, 며느리, 딸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39화 발칙한 상상_시어머니, 며느리, 딸, 아내로서 뒤집기

50되기 365일전, 7남매 막내며느리의 시댁과 제사와 명절이야기 


시댁환장곡 39화 발칙한 상상_시어머니, 며느리, 딸, 아내로서 뒤집기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의 한자 성어이다. 사실 잘 안되어서 그렇지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 보면 이해 못 할 일이란 게 있을까? 어쩌면 견해를 바꾸고 싶지 않은 건 아닐까? 그래서 소설과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억지로라도 몸이 바뀌는 설정이 많이 있는 건지 모른다. 나가 상대가 되면 서로를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은 필요 없어진다. 나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나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몸이 바뀐다는 것은 상대가 내가 되는 것이다. 몸이 되었는데 이미 게임 끝난 거 아닐까?     


상상으로 견해를 바꿔보면 어떨까? 그러면 이해 안 되는 비논리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의 원천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끝내 이해는 못할지라도 미워하지는 않을 테니까.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바라보는 데 어떤 마음일까? 지금은 시어머니지만 처음은 며느리였다. 힘들어 죽겠다는 며느리보다 열 배, 아니 백배는 힘든 며느리의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7명이나 자식을 줄줄이 낳아 놓고 남편은 일찍 죽어 버렸다. 큰아들, 둘째 아들, 큰딸은 어느 정도 키워놓았다 치더라도 나머지 4명은 크려면 아직 멀다고 느꼈을 것이다. 잘 먹일 자신은 없고 굶기지만 않는 것이 삶의 목표였을 것이다. 


그래서 가마니가 무거운지도 모르고 이고 지고 했다. 땅에 엄청난 애착을 보이는 것도 실은 땅이 많을수록 자식들 입에 넣어줄 뭔가가 생겼기 때문이다. 땅을 숭배한 것이 아니라 자식들 입을 숭배한 것이다. 배운 지식은 막연하지만, 경험한 것은 확신이 있다. 자신이 며느리였을 때 했던 것이어서 당연하게 요구하게 된다. 잘못된 것은 나이 들어 깨닫게 되고, 잘못된 줄도 모르고 확신하는 것은 젊음의 어리석음의 실체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시간차만 있을 뿐 같은 사람인 것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나는 딸이면서 며느리이다. 딸보다 며느리라는 역할이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자신도 딸이면서 딸이란 존재에 대한 신뢰가 적다. 속이 얇고 부침개처럼 마음이 잘 뒤집히고, 달콤한 커피 같지만, 씁쓸한 맛까지 지우지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딸은 항상 지 살 궁리는 항상 마련해 놓는다고 생각한다. 


결혼한 딸도 다른 집 며느리가 되어 족쇄를 달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게 된다. 며느리로서 역할이 힘들수록 친정에서만큼은 수월해지고 싶으니까. 시댁에서 상처를 풀 수 있는 곳이 친정 말고 어디 있을까. 허물까지도 장점이 되는, 잘못도 그냥 실수로 되고, 성깔은 소신으로 바뀌는 곳이 친정이니까. 세상에 그런 곳이 또 있다면 알려주기를 바란다. 어떤 수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얻으려고 노력할 테니까. 딸도 결국 결혼하면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된다. 정도와 차이가 있을 뿐 나와 같은 것을 경험하고 느낀다는 사실은 생각 못 한다.     


남편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 어떤 감정을 가질까? 둘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이 틈도 없이 사이가 좋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현실은 그런 다행스러운 관계는 많지 않다. 둘은 시대를 달리하고 있는 한 몸이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모두 남편을 사랑하고 둘 다 자신의 편이 되어주길 바라는 상황에서 남편의 난처함과 피곤함은 인정받지 못한다. 상대적으로 며느리가 힘든 것에 비하면 적다고 치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려움이 적다고 하더라도 무시해도 되는 감정은 아니다. 무엇보다 남편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 자신의 역할은 아무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역효과만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될 때의 좌절감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실은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보다 뭘 해도 소용없다는 무능함이 주는 좌절은 더 클 것이다. 며느리로서 힘든 내가 남편과 아들에서 남편이 힘들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코가 석 자라서 그렇다.     


시댁에서 모두가 행복한 방법이란 과연 없는 것인가? 서로 안 만나야 평화롭고 자유로운 것인가? 정답이 그렇다. 하지만 거리를 두고 각자 마음대로 사는 삶이라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시댁 때문에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시댁 때문에 불행해진다는 결론은 너무 슬픈 고백 같다. 시련과 마음먹은 대로 잘 풀리더라도 불행해질 이유는 없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삶에서 어떻게든 행복해져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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