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 이발하다
텃밭의 사전적 의미는 집터에 딸리거나 집 가까이 있는 밭을 가리킵니다.
내 주변 가까이 작은 땅에서 채소들을 심어 스스로 거두어 먹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작년에 두 평 남짓 땅에 상추, 고추들을 심어 먹겠다고 텃밭을 일군 적이 있습니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던가요?
땅 고르기하고 비료도 주고 모종 심을 때까지만 해도 수확의 꿈에 의욕이 넘쳐 이것저것 종류도 가지가지 촘촘히도 심었어요. 4월의 햇살과 비에 하루가 다르게 자라라는 상추와 쌈채들이 신기하기만 했어요.
5월이 되자 날씨가 뜨거워지고 연휴에 가족 행사에 중간고사 등 바쁜 일상 때문에 소홀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심은 죄가 있어 매일은 못가도 하루건너 가서 물도 주고 잡초만 뽑아도 땀이 흥건해지고 얼굴은 빨갛게 되어 버렸습니다. 고작 두 평 땅을 관리하는 것도 이리 힘든데 시골 어머니는 그 넓은 땅을 어찌하는지 가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갸륵한 생각도 그때뿐이고 다시 일상에 물들어 지내다 보면 사흘에 한 번 들여다보기도 쉽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갈 때마다 상추는 엊그제 그 상추가 맞나 싶을 정도로 훌쩍 자라 있었고 더불어 잡초는 더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습니다. 농부가 부지런하지 못한 자신의 탓은 안 하고 무성한 잡초를 뽑아대며 불평불만도 쌓여갔습니다. 자신을 미련하다고 자책하며, 마트에 가면 한 묶음에 천 원인 것을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퇴근하고 와서 물주고 잡초 뽑으며 고생을 사서 하는지, 잡초가 이리 쑥쑥 자라니까 농부들이 왜 농약을 치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느니, 감사함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해 농사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결말이 짐작이 갈 것입니다.
6월이 되면서 너무 더워서,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약속이 있어서 발걸음은 점점 더 뜸해졌습니다.
텃밭을 일구고 난 교훈은 땅은 참 정직하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잘 가꾼 땅은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주인이 신경 안 쓰는 땅은 잡초가 무성하고 땅은 메말라 있죠. 하늘 보기 민망해서 다시는 텃밭은 가꾸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제오늘 비가 오고 거리의 벚꽃도 다 떨어져 어느새 꽃잎이 있던 자리에는 푸릇푸릇 잎새가 제법 돋아났습니다. 겨우내 텃밭이 궁금해져 퇴근해서 둘러보러 갔는데 그냥 황량해 보였습니다. 왠지 비어있는 땅들이 처량하기도 하고 허전해 보이기도 했죠.
이것저것 널려있는 작년의 잔재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한쪽에 풀 같은 것들이 무성하게 자라있는 것이었습니다. 잡초려니 하고 가보니 부추였어요. 작년에도 씨뿌린 적 없었는데 부추가 자라나서 여러 번 잘라다가 생채로 무쳐 먹고 전도 부쳐 먹었죠. 다시 보니 신기했습니다. 손이 근질근질하더니 가위를 가져다가 싹둑싹둑 잘라 비닐 팩에 담았습니다. 한 손은 부추를 잡고 다른 한 손은 가위를 잡고 한주먹씩 서걱서걱 자르면서 코까지 올라오는 부추 향이 너무 상큼했습니다. 부추는 머리처럼 잘라도 그 자리에서 언제 잘랐느냐고 하면서 쑥쑥 올라옵니다. 기대도 안 한 부추를 만나 반가워하면서 ‘이번 주말에 상추 모종 조금만 사야겠어. 마트에서 사서 먹는 거 비할 수가 있나?’ 혼잣말하며 머릿속에서 이미 다 심었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 병이 도집니다.
이를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