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일상은 계속된다.
금요일 저녁부터 조짐은 있었다. 괜찮겠거니 은근슬쩍 넘어가 버린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어깨가 뻐근하더니 연이어 머리가 살살 아프더니 토요일 아침에는 눈알이 빠질 듯이 아프고 머리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아프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로 약을 먹고, 자고 일어나서 요기하고 약 먹고 다시 자기를 토요일 내내 종일 반복했다.
약 때문인지, 잠을 계속 자서인지, 아니면 푹 쉬어서 그런지 일요일 아침에는 정신이 맑았다. 날씨가 맑은 것보다 머리가 맑으니 살 거 같았다. 맑아진 상태로 한 달에 한 번 산행 가는 남편 도시락으로 김밥도 싸주었다. 오래간만에 살뜰한 아내 노릇에 스스로 대견해하면서도 어제 종일 아팠던 것이 생각나 ‘무리하면 안 되지. 두통이 또 오면 어쩌려고’ 혼잣말하면서 다시 침대를 향해 잠을 청한다.
정오가 다되어 일어나 거실 창밖에 다가서 맑은 햇살을 쳐다보며 조용한 일요일 오전의 고요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일요일 낮 12시 나는 나의 현실을 인식한다.
나에게 금, 토, 일 삼일은 또 다른 일주일을 의미한다. 밀린 집안일을 처리해야 하고 대학원 과제에 집중해서 윤곽을 잡아가며 수행해야 한다. 그래야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들을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다. 아팠다는 이유가 있었음에도 해 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현실이다. 이왕 이리된 거 거실 창으로 말고 피부로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남은 두통도 모두 날려버리라 마음먹고 집을 나섰다. 걸어서 아주 좋은 공원이 있다. 이곳에 이사 온 이유가 이 공원 때문이었는데 정작 이사 오고 한 번도 제대로 산책을 해본 적이 없다.
가방에 노트북이랑 필기구 챙겨서 텀블러에 내린 커피랑 같이 편한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이틀 동안 내린 비에 벚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푸릇푸릇 잎이 돋아나고 있다. 길가에는 하얀색 조팝나무가 죽 늘어서 있고 군데군데 영산홍이 피기 시작해 울긋불긋하다.
운 좋게 지붕 있는 테이블 하나가 비어 자리를 차지했다. 테이블에 신문지를 깔고 노트북과 필기구 꺼내고 블루투스에 연결하여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음악 소리와 자작나무를 흔들리는 바람과 피부에 닿는 햇볕만으로 행복해지는 오후다. 온 동네 사람들 모두 공원에 나온 거 같다. 강아지 산책시키는 사람들, 연을 날리고 공차기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운동기구로 운동하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사람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코로나가 다시 확산한다고 변종 바이러스가 더 위험하다고 언제 백신은 맞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대에서도 우리는 전에 했던 일상의 부스러기들을 붙잡고 있었다.
햇볕 따스한 어느 일요일 봄날의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