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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사진일기-5-2021.4.18.

그래도 일상은 계속된다.

by 제대로 삶


사진일기5-그래도 일상은 계속된다.


금요일 저녁부터 조짐은 있었다. 괜찮겠거니 은근슬쩍 넘어가 버린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어깨가 뻐근하더니 연이어 머리가 살살 아프더니 토요일 아침에는 눈알이 빠질 듯이 아프고 머리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아프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로 약을 먹고, 자고 일어나서 요기하고 약 먹고 다시 자기를 토요일 내내 종일 반복했다.


약 때문인지, 잠을 계속 자서인지, 아니면 푹 쉬어서 그런지 일요일 아침에는 정신이 맑았다. 날씨가 맑은 것보다 머리가 맑으니 살 거 같았다. 맑아진 상태로 한 달에 한 번 산행 가는 남편 도시락으로 김밥도 싸주었다. 오래간만에 살뜰한 아내 노릇에 스스로 대견해하면서도 어제 종일 아팠던 것이 생각나 ‘무리하면 안 되지. 두통이 또 오면 어쩌려고’ 혼잣말하면서 다시 침대를 향해 잠을 청한다.

정오가 다되어 일어나 거실 창밖에 다가서 맑은 햇살을 쳐다보며 조용한 일요일 오전의 고요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일요일 낮 12시 나는 나의 현실을 인식한다.


나에게 금, 토, 일 삼일은 또 다른 일주일을 의미한다. 밀린 집안일을 처리해야 하고 대학원 과제에 집중해서 윤곽을 잡아가며 수행해야 한다. 그래야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들을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다. 아팠다는 이유가 있었음에도 해 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현실이다. 이왕 이리된 거 거실 창으로 말고 피부로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남은 두통도 모두 날려버리라 마음먹고 집을 나섰다. 걸어서 아주 좋은 공원이 있다. 이곳에 이사 온 이유가 이 공원 때문이었는데 정작 이사 오고 한 번도 제대로 산책을 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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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에 노트북이랑 필기구 챙겨서 텀블러에 내린 커피랑 같이 편한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이틀 동안 내린 비에 벚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푸릇푸릇 잎이 돋아나고 있다. 길가에는 하얀색 조팝나무가 죽 늘어서 있고 군데군데 영산홍이 피기 시작해 울긋불긋하다.

운 좋게 지붕 있는 테이블 하나가 비어 자리를 차지했다. 테이블에 신문지를 깔고 노트북과 필기구 꺼내고 블루투스에 연결하여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음악 소리와 자작나무를 흔들리는 바람과 피부에 닿는 햇볕만으로 행복해지는 오후다. 온 동네 사람들 모두 공원에 나온 거 같다. 강아지 산책시키는 사람들, 연을 날리고 공차기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운동기구로 운동하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사람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코로나가 다시 확산한다고 변종 바이러스가 더 위험하다고 언제 백신은 맞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대에서도 우리는 전에 했던 일상의 부스러기들을 붙잡고 있었다.


햇볕 따스한 어느 일요일 봄날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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