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일기21-밥의 의미

2021.5.19.-사진일기21-밥의 의미

by 제대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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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밥의 의미

2020년 3월 23일 자궁의 혹을 수술하기 위해 서울의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코로나로 인해 환자와 보호자 한 명만 허용되고 입원 후에는 면회, 외출도 허용되지 않았다. 전국 각지에서 오는 환자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비던 병원은 코로나로 인해 과거 메르스 경험 때문인지 병원은 한산했다. 예약을 받아놓았던 수술, 응급수술만 진행하면서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입원환자들만으로 최소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평소라면 입원비가 비싼 1인실, 2인실을 선택해야 할 확률이 높은데 코로나로 인해 한 층에 2개밖에 없는 6인실에 자리가 남아 있다고 했다. 우리는 ‘입원비가 엄청 줄겠는데, 퇴원하면 소고기도 먹을 수도 있겠다.’ 며 6인실 병실에 입원 수속을 마쳤다. 감사하게도 46년 살아오면서 병원에 입원해 본 경험이 두 아이 출산 때가 전부이다. 산모는 병원에서 환자가 아니다. 따라서 환자로서의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다. 3박 4일 입원이 여행이랑 다르지 않다고 되새기며 병가로 인한 공백과 급한 업무들만 처리하고 아무 준비도 없이 남편과 나는 입원했다.


간호사가 들어와 이것저것 문진과 검사에 필요한 채혈을 하고 지금부터는 금식이고 물도 마시면 안 된다고 주의사항을 일러주면서 오른쪽 팔에 수액을 하나 놓고 나갔다. 그제야 나는 내일 당장 수술이니까 금식한다고 쳐도 남편을 위한 음식을 준비해온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은 대놓고 투정하지 않지만 남도가 고향이라 맛에는 일가견이 있다. 솔직히 20년 결혼생활이 ‘남편 입맛 맞추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편은 저녁식사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병원 지하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 사발면을 사와 배선실 전자레인지에 돌려 앉을 자리도 없어 서서 먹었다. 준비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에 남편은 “지금 여행 왔어? 내 걱정 하지 말고 내일 수술만 잘 받고 나오면 돼” 그 말에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평상시라면 대낮 같은 저녁 9시에 나는 환자용 침대, 남편은 보호자 침대에 누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술 전날 밤을 보냈다. 눈만 감은 채로 아침을 맞이하고 긴장하는 마음으로 수술실에 들어갔다. 회복실에서 흔들어 깨우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고 아랫배의 묵직한 통증과 함께 정신이 돌아왔고 양쪽 팔에 주렁주렁 주사와 기계들을 달고서 병실로 올라왔다. 살이 찢어지는 고통은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돌아가신 엄마 얼굴이 떠올라 신음과 함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안쓰럽게 쳐다보는 남편의 얼굴이 아른거리더니 남아있는 마취 기운과 진통제로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뜨고 주변이 어둑어둑한 게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듯 했다.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남편이 일어나 앉아 나를 쳐다보며 수고했다며 좀 전에 의사가 다녀갔는데 수술 깨끗하게 잘 되었다고 전해주고 갔다며 이제부터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자고 한다. 내가 남편에게 수술 후 처음 건넨 말은 “밥은?” 그 한마디였다.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안 먹었지. 입맛도 없고” 그렇게 말하는 남편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웃는 이유를 묻는 남편에게 나는 “있잖아, 20년 살면서 나는 제일 힘들었던 게 밥하는 거였어. 퇴근하면서 오늘 저녁은 뭐먹지? 이번 주말은 뭘 먹어야하나? 그런 걱정을 하며 하루하루 사는 내 자신이 가엽고 짜증나기도 했거든. 그런데 오늘 저녁은 뭐라도 자기에게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 웃음 나왔어.


하고 싶지 않았던 ‘밥해주는 것’이 지금은 제일 해주고 싶은 내 마음이 너무 웃겨서.” 다음날 가스가 나오자마자 곧바로 식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물처럼 맑은 미음이 나오더니 점심에는 진밥과 간이 밍밍한 반찬들이 나왔다. 저녁에는 흰쌀밥과 미역국과 생선, 요구르트까지 갖추어서 나왔다. 아침 7시, 낮 12시 저녁 5시에 칼같이 배식되는 밥이 신기했다.


입원하고 수술 당일은 경황이 없어서 몰랐는데 6인용 병실에서 유일하게 밥이 나오는 환자는 나 혼자였다. 수술 후 장기들이 제자리를 잡으려면 많이 걸어야 한다는 말에 밥 먹고 병동을 돌면서 남편은 전해주었다. 실은 내가 입원한 6인용 병실에서 나를 제외하고 모두 말기 암환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회복하고 있는 나만 식사가 나왔던 것이다.


남편은 나를 붙잡고 걸으며 그동안 돈 주고는 못 먹을 밥이 ‘병원밥’이라고 생각했는데 병원에서 밥이 나온다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밥 이상을 의미하는 거라는 것을 알았다며, 당신을 위해 꼬박꼬박 밥이 나오고 그리고 아까 저녁에 당신이 미역국에 밥 말아 먹는데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남편의 말이 밥처럼 따뜻하고 든든했다.


병원에서는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에게만 밥이 나온다. 즉 병원에서 ‘밥’은 건강해져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 갈 수 있는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고 밥을 먹는다는 것은 삶의 회복을 의미한다. 그동안 과한 욕심과 헛된 욕망으로 몸이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살기 위해 먹는 건지 먹기 위해서 사는 건지 구별도 못하고 덧없는 것으로 삶을 채우려고 했다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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