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블 Apr 30. 2021

올빼미형 인간과의 동거

나는 아침형 인간(새 종류로 따지면 종달새형이란다)으로 분류되지만, 법적으로 성인이 된 후 나와 생활한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전형적인 올빼미형 인간들이 많았다. 최근 한 연구결과에서 평균 취침시간이 오후 11시30분 정도라고 하는데 내 주변인들은 하나같이 새벽에, 그것도 해뜨기 직전에 잤다. 직장인 생활을 하는 만큼 평소엔 강제로 아침형 인간이 되려고 노력했지만 '불금'만 되면 어김없이 밤늦게까지 술과 영화, 유튜브를 함께 했고 매주 월요병과 함께 출근하는 패턴이었다. 저 정도의 잠만 자고 회사생활이 가능한 게 신기할 정도로.


종달새형 가족들과 살아온 난 올빼미들을 들어만 봤지 실제로 겪어본 적은 없었다. 전설 속 동물이랄까. 평일은 물론이고 주일에도 늘 엄마와 함께 8시 예배를 드리러 교회를 가야 했기 때문에 늦잠을 잘 시간이 없었다. (나이를 엄청 많이 먹은 것 같은데) 내가 학교를 다녔을 땐 토요일에도 수업을 했기 때문에 금요일에도 일찍 자야 했다.


방학이라도 되면 늘어지게 자고 싶었지만, 우리집에서는 엄마 아빠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아빠 출근길에는 인사를 하는 게 일종의 룰이었다. 방학에도 아침 7시 전에 일어나 밥을 먹고 아빠에게 인사까지 하고 나면 그 이후에는 자고 싶어도 이미 잠은 도망간 뒤였다.


그러던 내가 대학교를 가고부터 슬금슬금 생활패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술을 동틀 때까지 마시고 들어온 적은 없었지만, 일단 술을 무식하게 들이붓다 보니 숙취 탓에 일찍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마저도 눈만 떴지 점심까지는 반송장이나 다름없었다.


졸업을 앞두고 6개월 정도 싱가포르 해외인턴을 갔을 때는 4인1실을 썼는데 나를 제외한 3명이 모두 올빼미였다. 밤늦게 들어오는 룸메는 없었는데 문제는 이층침대에서 오르내릴 때마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이들은 날 위해 나름 조용히 움직였겠지만 원룸에서 화장실을 가거나 채팅을 하고 전화하는 소리를 모두 막을 순 없었다. 해뜨기 전부터 일어나서는 겨우 잠든 애들이 깰까봐 나도 모르게 아무것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있는 날이 많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손해라고 생각했는지) 나도 이들과 같이 자고 일어나는 습관이 들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는 동생과 자취를 했는데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집에서 나고 자란 동생과 나는 (남들이 보기엔 거기서 거기라고 하지만 우리가 보기엔) 생긴 것도, 성격도, 생활패턴도 달랐다. 나는 뭐든 빨리빨리 급하게 하는 성격이라면 동생은 느긋~하게 천천히 곱씹는 쪽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우리 집에서 동생은 가장 늦게 자고(그래도 12시 전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걸 힘들어하는 편이었다.(그렇다고 안 일어나는 건 아니다)


처음에는 소리를 꽥꽥 지르며 조용히 하라고 했지만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자취는 너무 달콤한 '독'이었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주로 내 인생에서는 술이 문제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 회사에 가는 날이 반복됐다. 보통 7시20분에 꾸역꾸역 눈을 뜨고 7시45분에 재킷과 가방을 들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으로 나가기 일쑤였다.


결혼하고 나니 남편이 올빼미였다. 긴 연애기간에도 그는 분명히 올빼미였는데 그땐 왜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까. 보통 내가 오전 4시에 일어났고, 남편은 4시에 안방에 들어왔다. 잠에서 깨고 있을 때 들어오기도 하고, 들어오는 소리에 깨기도 했다. 그리고 남편은 정오가 지나 느지막이 일어났다. 간단한 집안일을 하고 마트에 다녀오면 어느새 저녁이었다. 그러면 나는 저녁을 먹고 다시 침대에 들어가는.... 신혼이라기엔 같이 있는 시간이 굉장히 짧은 날이 많았다.


내가 일찍 일어나다보니 무슨 일을 하든 손해인 것 같았다. 설거지거리며 빨래통에 가득 쌓인 빨랫거리를 보면 해야하는 걸 알면서도 고약한 심보로 남편이 일어날 때까지 미루고 미뤘다. 외출이라도 하려치면 나는 일찌감치 씻고 모든 준비를 끝냈는데 남편은 그제야 일어나 눈을 반만 뜬 채로 화장실에 들어갔다.


지금은 넌 니 길을 가라, 난 내길을 간다, 하는 여유(!)가 있지만 신혼 때는 이런 작은 것도 불화의 씨앗이 된다. 자기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느니, 게으름은 만병의 근원이라느니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하며 싸워댔다. 20대의 젊은 청춘은 사랑만큼 싸움도 격정적이다. TV 액정만 깨지지 않았을 뿐이다. 만 5년이 지난 지금은, 더이상 이런 문제로 싸우지 않는다. 그를 포기했다거나 애정이 식어서는 아니다. 그저 그와 내가 다른 걸 알고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침형 인간이니, 야행성 인간이니 하는 건 개인의 생활패턴이다. 그러니 맞고 틀린 것도 없다. 이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중요한 건 다른 라이프스타일의 사람과 살아갈 때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지다. 크고 작은 갈등 속에서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만이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열쇠니까.


오히려 아침형 인간과 야행성 인간의 문제는 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멀리스트의 동거와 비교하면 간단한 문제일 수도 있다. 우린 침대를 넓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전 05화 올빼미가 뭐 어때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