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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Jan 07. 2022

스마트폰 배터리가 10%만 닳아도 불안한 사람들의 함정

스마트폰 배터리 잔량 69%은 많은가, 적은가?

식당에 앉아 유튜브 영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트는 내 친구에게는 충분한 양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스마트폰을 펑펑 사용할 수 있지? 우리가 헤어지기까지 몇 시간이나 남았는데 벌써 앞자리가 6이라고!


사람마다 충전기로 스마트폰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숫자는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 배터리가 89% 정도 남았을 때부터 충전기에 꽂아두려고 하는 마음이 발동한다. 70% 대가 되면 슬슬 불안해진다. 절반 이하로 배터리가 남는다면? 상상만 해봤는데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휩싸였다.


현실적 조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보조배터리를 들고 다니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대안이 될 수 없다. 보조배터리는 무한 동력이 아니니 화학 법칙에 따라 배터리가 줄 것이고, 내 정신적 안녕함도 함께 깎여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잘 안다. 무선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세상 이치가 그러하듯 나의 성향은 장단점이 있다. 좋게 보자면 미래 대비가 확실하고 나쁜 측면에서는 매사에 걱정이 너무 많다. 생필품이 동나서 고생해본 적이 없다. 미리 쌓아둔 선크림의 유통기한이 지나있었던 적은 있다.



이런 '미래 대비자'들이 함께 가지는 특징 하나 있으니, 나중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아낀다. 다음의 문장들이 공감 간다면 당신 역시도 미래 대비자일 것이다.


- 가장 맛있는 초밥은 제일 마지막에 먹는다. 좋아하니까.

- 근사한 공책은 나중에 사용한다. 아까우니까.

- 아끼는 옷은 자주 입지 않는다. 소중하니까.


아끼면 똥 된다는 말이 있다. 무언가가 똥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으므로 나는 요즘에 들어서야 똥들을 발견하고 있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함부로 펴지도 못했던 공책이 어느 날 보니 누런 속지와 함께 너덜너덜해진 모습을 발견하는 식이다. 멋있고 싶은 날 신겠다며 모셔뒀던 구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면 어쨌든 앞으로 들어올 소들을 잘 지킬 수 있다. 나는 깨달음을 얻고 외양간에 철제 자물쇠를 달기로 했다.

올해 여행을 갈 때 아끼는 펜을 들고 간 것이 그 시작이었다. 먼저 다 써버리면 곤란하다는 이유로 몇 개월간 쓰지 않았던 검정 펜촉은 제주 해안 둘레길에 위치한 카페에서 드디어 자신의 소명을 행했다. 다 쓸까 봐 사용을 못하는 것과 이미 다 써서 사용을 못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같았는데 말이다. 2색 볼펜이 3색으로 변하니 좋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펜을 잃어버렸다. 표지 사진에 있는 돌담 사이에 빠뜨렸다. 돌 틈 사이를 뒤지며 집에 있는 리필심들을 떠올렸다. 아끼던 펜은 사라지고, 불안감과 비례하는 크기로 쌓여있던 리필심들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뭐든지 있을 때 잘해야 한다.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먹기 아깝다는 이유로 냉동실에 넣어둔 초콜릿을 뺐다. 다행히도 유통기한이 한 달 정도 남아있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마시멜로 1개의 유혹을 참으면 2개로 늘어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마시멜로를 손에 계속 움켜쥐고만 있으면 종국에 4개로 늘어날 수는 있으나 그 사이에 처음의 마시멜로는 썩고 마는 것이다.

나는 저녁 걱정에 불안해하기보다 당장 입 속의 점심식사에 집중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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