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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싸맨 Jun 08. 2020

프로직장러 졸업 후 개인사업을 시작하자 생긴 변화

개인사업자 신고 후 5개월의 이야기(상)

2020년 1월 3일.


세무서에서 나의 이름으로 된 사업자 등록증을 받는 순간.

그때의 설렘과 걱정, 자신감과 불안은 종이 한 장 차이도 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작년 가을, 마흔 나이에 15년 동안 다니던 외식 프랜차이즈 본부의 생활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프랜차이즈와 소자본 자영업자 사장님들, 예비창업자분들을 위한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였죠.



저에게는 여덟 살 아들, 다섯 살 딸이 있습니다.


한창 열심히 회사에서 일하고 월급을 받아서 가족을 부양해야 할 나이.

저는 어떻게 될지 모를 도전을 선택했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루 이틀 한 상황이 아니었고,

또 '직장인'에 너무나 익숙해있었으며

먼지 같은 실력이었지만 나이보다 빠르게 조직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너무나 좋은 동료와 대표님을 모신 행운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익숙한 회사라는 프레임을 깨고 홀로 이 세상에 선다는 것.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5개월이 흘렀습니다.


어떤 변화가 저에게 일어났을까요?

지난 5개월 동안의 기억을 빠르게 되짚어 보고자 합니다.


오늘 글은 힘든 사회생활과 현실 속에서 매일 같이 도전을 꿈꾸고 그러한 글들을 검색해보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워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의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도전을 통한 변화 (이미지 출처 : Pixabay)




'82년생 김지영'속 공유가 떠오를법한 역할 변화


강남구에 있는 회사를 다니던 때, 용인이 집이었던 저는 늘 6시에 출근을 했습니다.


또 차 막힘과 업무, 업무를 안주 삼은 식사 자리 등으로 밤 9시 이전에 귀가하기 어려운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내는 개인의 삶과 일에 대한 도전을 꿈꾸기조차 어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한 이후 아내는 집 근처의 대형 아파트 단지에서 계약직 사원으로 사회적 역할에 다시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아들의 사업 도전에 대해 기대보다 걱정이 많으셨던 저의 아버지는 '아들 때문에 일을 하게 했다'며 며느리에게 미안해하셨습니다.


하지만 평소 일에 대한 도전을 생각했던 아내를 옆에서 봐온 저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아르바이트, 혹은 정규직과 같은 조건적 측면을 떠나서 다시금 활발해지는 아내를 보며 무척 반길 수 있었음에 행복했습니다.


이는 제가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일어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아내가 이른 시간에 출근을 하다 보니 두 아이의 등원과 등교는 제가 맡기로 하였습니다.

10년 넘게 늘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 일찍 출근하는 습관이 잡혀있던 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아이들 케어 자체보다는 그 단단해져 있는 루틴을 바꾼다는 것 때문이었죠.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남들보다 빠르게 하루를 시작하고, 새벽의 업무 집중을 통한 높은 효율에 자부심을 느껴왔던 저였지만, 그 시간에 아이들의 밥을 챙기고 옷을 고르고 양치를 하며 등원/등교를 위한 '밀당'을 하다 보니 처음에는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몸이 힘들고 아이들 케어가 힘들 줄 알았는데 정작 해보니 그러한 습관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오는 다른 형태의 고민과 길어지는 생각들이 저를 괴롭혔죠.

 

물론 그 와중에 조금씩 조금씩 적응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저의 이런 번뇌를 안타깝게 본 아내 덕분에 매주 3일은 장모님의 도움을 받아 다시 새벽부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많아진 아이들과의 시간


아이들과의 시간 또한 부쩍 많아졌습니다.


사업자를 내면서 사무실을 구하는 과정에 있어 가장 우선순위로 두었던 것은 '집 근처'였습니다.

서울에 월 40~50만 원 공유 오피스라도 들어가면 명함 주소도 더 빛날(?) 수 있고 미팅들이 편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장은 미팅보다 사업을 만들어가는 구조를 설계하고 디테일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저의 사업에 대한 무기도 확실하게 없는데 미팅만 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너무나 무의미했기 때문이지요.



회사원 시절 출퇴근으로만 2~3시간 정도를 할애하다 보니 꼭 한번 집 근처에서 일을 했던 로망을 현실로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 결과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곳에 작업실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났죠.



"여보 나 이제 퇴근할게. 오늘은 같이 밥 먹자"

"좋아요. 예상 도착시간은?"

"응 10분 뒤."



물론 사업을 위해 구입한 레이 흰둥이로 주 2~3회는 서울을 왔다 갔다 합니다.

하지만 온전히 작업실에서 일을 볼 때면 '이래도 되나'싶을 정도의 꿈같은 순간들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외식 가맹점 창업은 꼭 집 근처에서 해야 체력적으로 장기전에서 용이할 수 있다'며 강조했던 저였는데, 형태는 다르지만 그래도 실천을 하는 것을 보니 참 신기했습니다.



스트레스의 형태 또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스트레스의 변화


저는 조직에 대한 책임감이 필요 이상으로 강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이상적 직원으로서의 장점이 있었고, 저 개인적으로도 강점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껍질 더 들여다보면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은 것들을 신경 쓰려했고 또 안으려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건 회사에도 부담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직급과 직책이 높아져갈수록 '뒷머리를 잡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운동을 챙기지 못한 저의 불찰도 있었지만, 신체적 조건이 커버할 수 없는 영역에서 많이 어려움을 겪었었던 것이지요.


사업을 시작한 이후 거짓말같이
이러한 부분들이 사라졌습니다.


사업의 안착과 고도화, 활성화를 위한 고민과 스트레스는 있었습니다.


초반의 매출에 대한, 성공에 대한 고민은 늘 따라다녔지만 이러한 부분에 있어 직접 경험을 통해 느낀 퇴치 솔루션은 '굳이 이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지요.

그때마다 메모해 놓은 해야 할 일들에 집중했고 그렇게 몰두하며 사업을 위한 형태를 하나하나 만들어가면서 불안함을 떨쳤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당연히 해야 할 부분에서 생긴 것이고 제가 판단하고 제가 행동하면 풀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회사를 다니며 겪는 스트레스의 '결'과 많은 부분이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몸이 반응을 하는 모습을 보며 환경의 중요성을 느꼈습니다.


물론 어느 한쪽이 좋다 할 수 없는 것이고, 각각의 장단점이 있는 것이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적어도 사업을 시작하기 이전에 동일한 스트레스를 걱정했던 제 자신이 '그랬었나?'하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말이지요.

 




5개월 동안 '개인 사업자'로서 사업을 만들어가며 '개인 사업가'가 되기 위해 중요한 3가지를 몸소 깨달았습니다.

또 이와 함께 도전하기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깨달음도 있었습니다.


(하) 편에서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합니다.

진정한 사업가가 되기 위해 겪었던 과정, 그리도 얻은 것에 대해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도 성공하실 것입니다. 그 성공의 의미만 잘 정의하신다면 오늘, 바로 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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