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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유 Nov 26. 2022

무소유

2017. 11. 14.

2017. 11. 14. (BY 아내, IN 치앙라이)

태국에 온 지 보름이 지난다.

하루는 쏜살 같이 지나가고 한 달은 느리게 간다.

치앙마이와 치앙라이 가운데 어디가 더 살만한지 고민해 본다.

치앙마이는 놀기 놓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을 것 같고, 치앙라이는 자연친화적이고 부드럽게 살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한 지역 같다.

즉, 우리 부부에게는 치앙라이가 더 적합할 듯.  

결국 우리는 어디에서 살게 될까?


태국은 좋겠다. 땅이 넓어서....  우리도 이제 좀 통일이 되면 좋겠다.

제주 집이 팔리는 시기가 여름이라면 바로 태국으로 가는 건 무리다. 이곳 여름은 지옥이다.

그러면 일단 임시 거처를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이런 생각에 이르렀을 때 방목하여 기르는 소떼가 방울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한가로운 풍경에 압도되니 이런 나의 생각들이 너무나 보잘것없다고 느껴진다.   

아무튼 섣부른 판단은 하지 말자. 어제 내가 기도했듯이 우리 다섯이 모두 행복한 삶이어야 하니까.




2017. 11. 14. (BY 페이지 유, IN 제주도)

낮잠을 오래 잤다. 거의 8시간을 잔 것 같다.

며칠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잔 결과이다.

동네는 점점 사방에서 공사 소리로 압박을 가해온다. 커다란 덤프트럭이나 콘크리트를 실은 트럭, 포클레인, 자잘한 농사짓는 트럭까지 분주히 지나다닌다.

우리 집 앞을 지나가는 것도 아닌데 그 소리가 코앞에서 들린다. [예민해진 증거]

자연의 소리만 듣고 싶다.


방목의 삶


낮잠을 오래 자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상쾌한 잠은 아니었다.)

“이렇게 노인들이 치매에 걸리겠구나.”

머리가 둔하고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한 기분이다. 정말 이러다 침대에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을 때, 억지로 나의 등을 밀어준 건 어딘가를 향해 짖어대는 모로의 음성이었다.   


라네와 라오는 엄마가 짖으면 같은 방향으로 따라 짖는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얼마 전 잠시라도, 저 아이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너무 창피했다.

지금 같으면 똥을 트럭으로 싸놓아도 웃으면서 치울 자신이 생긴다.

역시 잠을 자야 하나?



2017. 11. 15. (BY 페이지 유, IN 제주도)

어제 D-15.

마더라는 영화의 예고편을 봤다.

성경의 줄거리에서 메타포를 가져온 영화였다.

‘아..... 내가 쓰려고 했던 스토리인데!’

저 원고는 버려야겠다.


글 쓰면서 신이 옆에 있다는 느낌을, 그런 느낌에 충만해질 때가 있다.

눈은 뜨고 있으나 눈앞의 세상은 사라지고, 귀는 열려 있으나 새와 바람소리만 들려온다.

오랜만에 아내에게서 페이스 톡이 이렇게 왔다.

“좀 재미있게 지내고 있어?”


그렇게 기다리던 연락인데 막상 다정하게 연락이 오니 그동안의 서운함이 몰려와 이렇게 말할 뻔했다.

"너 같으면 재밌겠니?"


권태


그러나 기특하게도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이제라도 재미있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

톡을 끊고 나서 바로 드로잉 수업 신청을 한다.


포항에 역대 두 번째 규모, 5.4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뉴스.

진원지가 가까워 경주 지진보다 피해는 더 크다고 한다.

대전에서도 느꼈다 하는데 제주는 작은 흔들림도 없었다.

그러나 제주도는 화산섬인데 과연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 할 수 있을까?


환경이나 기후, 자연재해에 대해 사람들은 말은 하지만 그게 나의 일이라 생각하고 행동으로 무언가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가장 먼저 무얼 해야 할까?

쓰레기를 적게 발생하는 작은 실천도 나름 권유할 만 하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소유 같다.

집부터 팔자.


소유의 삶과 거리를 두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건강해지는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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