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은 없다
얼마 전 네 번째 퇴사를 했다. 10년이 넘는 동안 총 4번의 회사에서 일했으니, 평균 2년 반 정도 근무를 한 셈이다. (기자 직종에서의 이직은 원체 흔한 일이라 이 정도 수치면 자주 옮긴 축에도 감히 끼질 못한다.) 사람이란 존재가 아주 간사해서, 회사에 있으면 나가고 싶고 나오면 들어가고 싶어진다. 그리고 퇴사 多경험자로서 말하자면, '퇴사'라는 것은 몇 번을 해봐도 영 익숙해지지 않는다.
앞선 전반부의 2회의 퇴사는 디졸브 이직을 하느라 사실상 바깥공기를 마셔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번 퇴사를 포함한 후반부 2회 퇴사는 후일을 전혀 도모하지 않고 바깥세상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연차가 낮았을 때는 디졸브 이직을 하지 않으면 평생 백수가 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었다면, 연차가 쌓인 후에는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앎과 동시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쉴 수 있는 타이밍을 도무지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이곳저곳에서 "퇴사 후 이직은 몸값을 떨어뜨리는 일이다"라고 소리치는 이들이 있으니,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퇴사를 하는 시기와 맞물려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해 드디어 꿈에 그리던 집사가 되었고, 아내에게 선물 받은 필름 카메라를 들고 취미 삼아 촬영도 시작했다. 또 있다. 여전히 <연예가중계> 코너 '긴급진단'을 비롯하여 방송 출연을 하고 있으며, 조금 여유로워진 탓에 미루고 미루던 강연도 시작했다. 앞서 강연 요청을 받았을 때는 시간도 없었거니와, '내가 해줄 말이 뭐가 있겠어' 라는 생각이 아무래도 컸다. 그런데 몇 차례 기회가 닿아 강연을 다녀왔더니 그 생각이 180도 뒤집혔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지망하는 취준생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충격이었다.
안쪽에서는 당연한 생각들을 바깥에서는 이렇게나 왜곡되어 공유되고 있었구나-하는 예상치 못한 놀라움이 나를 덮쳤다. 강연도 강연이지만, 그들의 질문에 집중하는 시간이 분명 의미가 있었다. 때문에 요즘은 요청이 들어오는 강연을 가능하면 소화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퇴사하고 '쫄리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 고양이 밥을 주고, 화장실을 치우고, 내 밥을 먹고, 설거지하고, 그리고 맥주를 한 캔 마시면서 넷플릭스를 보기를 무한 반복하다 보면, '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나?'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내가 봐왔던 어른의 삶은, 부지런히 직장에 다니고, 출퇴근이 있는, 그런 안정적인 삶이었다. 그렇게 확연하게 성층이 분리가 되어 워라밸에 대해 따지고 싶은 삶!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쓴다. 뭐든 일단 쓴다. 최근 브런치에 [씨-멘트]라는 데일리 연재를 시작했는데, 그래도 매일매일 뭔가를 한다는 것이 나름의 자극이 되었는지, 불안감이 다소 가라앉는 기분이 느껴지기도 했다.
휴식 시간이 길어져서 무료함에 이제껏 했던 인터뷰를 엑셀 파일로 정리했다. 10년간 인터뷰를 했던 이들의 수가 총합 1,000명을 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흩어져있던 외장하드 속 녹취록을 한데 모아 쌓아두고 하루에 하나씩 열어보고 데일리 연재를 이어가는 중이다. 글이 충분히 모이면 어떤 식으로든 출판을 하거나, 아니면 뭔가 다음의 것을 결정하게 하는데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긱 워커라고?
이렇게 빈둥대는 삶 속에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응?' 프리랜서 코리아라는 곳이었는데,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내가 '긱 워커(gig worker)'라고 했다. 필요에 따라 임시로 계약을 맺어 일을 맡기는 '긱 이코노미' 시대에 맞게 새로이 탄생한 노동자의 개념. 프리랜서, 사이드잡, N잡러 등 요즘의 핫한 단어들이 적당하게 얽혀있다.
인터뷰를 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내 삶은 아주 오래전부터 정말로 'N잡러'였다는 사실을. 사실상 매체에서 글을 쓰며 기자를 하면서 동시에 몇몇 TV방송 출연을 겸하고 있었고, 타 매체에서의 연재 등의 형태로 기고를 비롯해 특정 프로젝트를 위한 코디네이터 업무도 겸했다. 최근에는 단행본의 제작과 유통, 강연까지 동 시기에 여러 '직업'을 소화하고 있다.
평생직장은 없다. 앞으로는 그저 '일'과 '사람'만 남게 될 것이다. 안정이란 것은 좋으면서도, 인간을 나태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일을 아무리 많이 해도, 대충대충 해도, 동일한 임금을 받게 되는 구조라면 결국 능력 있는 사람은 모두 바깥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요즘 불고 있는 '퇴사 붐'은 그러한 것을 반영한 것이고, 곧 우리 앞에 펼쳐질 긱 이코노미 세상의 전조증상쯤이다.
내 삶을 진열해 모두에게 박수받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가끔 글을 쓰고, 방송을 하고, 강연을 하고, 그리고 책도 만들어 파는 지금의 내 삶이, 4대 보험도 없고 최소한의 복지도 보장받지 못하는 삶이더라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말해보고 싶다. 오히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내가 정당하게 일하고 그 대가를 비용으로 환산할 수 있다면, 거기에서 행복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게 오히려 '나의 맞춤형 직장'이 아닐까.
▼ 위에 언급한 프리랜서 코리아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