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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민 Nov 01. 2020

큰집에 살고 싶어서

보통의 1인 가구가 불가능한 일

비혼을 고집한 시기에도 정기적으로 흔들리는 순간이 온다. 바로 '이사'를 할 때다.


성인이 돼 곧바로 독립을 했고, 쉼 없이, 어떨 때는 투잡 쓰리잡도 해가며 부지런히 일을 해서 돈을 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내 집'을 갖는다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 접근 불가능한 꿈과 같은 영역이 되어버렸다.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려도 도저히 서울에서 내 집을 구하는 일이 불가능한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잡힐 듯하다가도, 정신을 차려보면 오히려 훨씬 더 멀리 저만치 달아나있다.


집값이 오르는 속도가 내 월급이 오르는 속도보다 몇 배, 아니 수십 배는 더 빨랐다. 이대로 나는 영영 조그마한 방을 탈출하지 못할 것만 같아 이사를 하기 위해 집을 구하러 다닐 때마다 초조하고 불안함을 달고 다녔다. 언젠가 반드시 넓고 큰 내 집에서 살아보고 싶었건만, 그 '언젠가'는 죽기 직전까지도 '언젠가'인 상태로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서글펐다.


그러한 연유로 한때 결혼을 빙자한 '큰 집 살기 프로젝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요즘은 셰어하우스 등의 형태로 좀 세련된(!) 방식이 생겼지만, 당시 고민을 할 때는 그런 건 얄짤없이 '동거'라는 단어 하나로 통일된 시절이다. 어차피 결혼하지 않을 거라면, 적당히 마음이 맞는 누군가와 협의하여, 가진 돈을 합쳐 큰 집을 구해 사는 것. 물론 고민할수록 세부적인 변수와 조항이 속속 등장해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후 비슷한 소재의 드라마나 영화가 나오자,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구나!' 하고 크게 공감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당시 그때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던 이들이 내가 결혼을 했을 때, '너 혹시?' 하는 생각을 하거나 입 밖으로 내뱉기도 했다. 그리고 여전히 믿지 않는 이들이 존재한다.)


옥수동의 집들 ⓒ박현민


지금의 아내와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을 결심한 시기는 딱 이사 시즌이었다. 살던 집의 전세 계약이 종료돼 다시 새로운 집을 찾아 이사를 가야 할 시점이었다. 현재 연애를 한다? 그런데 이사를 해? 그 다음집의 예정된 계약기간 안에 상대방과의 '합가'(合家)가 포함되어 있는지 없는지를 고민하게 되는 시점, 그것은 연인들이 부부로 나아가느냐 마느냐의 중대 기로다.


그렇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다음집은 우리의 '신혼집'이 되었다.

물론, 그곳은 내가 서울에서 살아본 가장 '큰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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