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현민 Apr 10. 2021

부부는 팀이다

김리더를 따르는 박팀원

친구로서 13년 차, 부부로서 3년 차가 됐다. 친구에서 부부가 되면서 바뀐 것들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겠지만, 가장 명확한 것이 있다면 휴대전화에 등록된 아내의 이름이 아닐까 싶다. 해당 공간에는 대부분 성+이름으로 정직하게 저장하는 편인데, 그래도 짝꿍만큼은 예외로 결혼을 전후해 수정됐다. 물론 말랑말랑한 '내 사랑' '자기♥' 뭐 이런 것과는 거리가 꽤 멀지만.


'김리더.'


아주 잠깐 '김대표'로 저장된 적도 있지만, 결혼을 즈음해 '김리더'로 바뀌었고, 이는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연인에서 부부로 넘어가는 길목에서는 많은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부분에서 합의점을 도출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우리는 함께, 각자의 길을 걷는다"라고 말하며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그 경우라면 굳이 결혼이 아닌 동거와 같은 다른 선택지를 택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무튼 대한민국에서 '결혼'이란 녀석은 법적 효력이 있고, 그걸 택한 이상 사회통념상 서로 노력하고 지켜야 할 요소들이 분명하게 발생하니 말이다.


이때 쌍방의 의견이 부딪히거나, 다툼이 유발되는 경우가 많다.

당연하다. 30년 이상을 각자 살아왔던 두 사람이, 모든 게 기적처럼 딱 들어맞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깐.


우리의 경우 그 첫 번째 영역이 '패션'이었다. 난 성인이 된 이후 줄곧 외향으로 튈 수 있는 모든 것을 부지런히 시도했고, 그러면서 쓸데없이 나름의 패션 부심이 생겼던 터다. 일단 머리를 땋고, 볶고, 색을 입혔다. 눈썹, 턱 등 얼굴에 피어싱을 뚫고, 일본에서 사 온 옷을 치렁치렁, 지나가는 사람들이 돌아서 쳐다볼 수밖에 없는 복장을 지향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는 나의 패션 흑역사가 되었다.)


아내의 업은 패.션. 쪽이다. 정확히는 고오오오오오급 패션지의 패션 디렉터다. 우리의 취향은, 그러니 엇갈렸다. 아내는  '선물'이라는 형태를 이용해 나를 자꾸 바꾸려 시도했는데, 당연히 심각한 마찰이 빚어졌다.


다퉜고, 속상했고, 고민됐다.

그때 어렵게 내린 결론이 이거다.


'부부는 팀이다.'


각자 살던 두 사람이 한 팀을 결성하는 것, 그것이 결혼이다. 경쟁이 아니고 협업. 각각 성장 배경이 다른 두 사람이 앞으로 더 나은 미래를 도출하기 위해 가능한 힘을 모으는 것. 그것을 합의하고, 팀을 짰다. 부러 영역별로 적절한 담당자를 배정하고, 적어도 해당 영역에서 만큼은 의견이 충돌했을 때 담당자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정하면 자잘한 충돌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그때부터 우리 팀의 패션은 아내의 영역이 됐다. 패션 외에도 수많은 분야들이 세분화돼 각 분야의 담당자가 나뉘었다. 추가로 우리 팀의 '리더'는 아내로, 나는 자연스럽게 '팀원'이 됐다. '박팀원.' 분야가 명확하지 않거나 중차대한 결정은 의견을 나누고, 리더가 최종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팀원은 그것을 따른다. 이게 우리 부부의 기본적인 팀룰이다. 헌법 1조 1항 같은 것. "우리 부부는 팀이다."


시간이 흘렀다.

늘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업인 나는, 패션에 대한 혹 칭찬을 듣게 될 경우 반사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감사합니다. 김리더가 우리 팀 패션 담당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