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

by kirin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나의 첫 글쓰기 선생님이었다. 미뤄두다 읽은 그의 시집을 읽으면서 너무 좋아 눈물이 났다. 몇 번을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었다. 상대방을 향한 너무나 솔직한 그 말들에 애정이 담겨있어 좋았다. 내가 말로 하지 못하는 것들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 표현될 때 너무나 반갑다. 마음들이 온전히 느껴지는 것들은 종종 슬프면서도 행복하게 만든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시인에게 연락을 하였다. 한국은 새벽일 텐데 금세 답이 돌아왔다. 나는 아직도 종종 솔직해지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서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 나는 더 솔직해지기 어렵다고 느꼈다. 모든 이야기들을 다 하고 싶다가도 어떤 것들은 너무 솔직하게 말해버리면 내가 싫어질 거 같아 넣어두기도 한다. 그러다 읽은 시인의 시는 정말로 솔직해지고 싶은 내 마음에 벅찰 만큼 좋았다. 나의 솔직해지지 못하는 마음에 대해 시인은 나에게 여행 이야기를 가장 벅차게 쓰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한국을 떠날 때는 긴 여행을 가는 거라고 생각했으면서도 지금은 몇 번이고 바뀐 공간과 일상에서 또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납작하게 보이던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나라에 대해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늘 언제고 떠날 수 있는 준비를 나도 모르게 하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 나는 여행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여행기를 읽는 것은 나의 시샘을 만드는 일이었는데 그걸 부정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 여행기를 담은 책들이 많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서점 책 진열대에서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의 여행기를 담은 책을 보았다. 부모님이 사주신 비행기 티켓이라는 문장을 읽고서 나는 바로 책을 덮어버렸다. 나도 누군가 여행을 가라고 비행기표를 사준다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비행기를 타 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 문장에 괜스레 짜증이 났었다. 타인의 여유는 나에게는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나는 그 부러움을 들키기 싫어 그 문장에 괜한 핀잔을 주곤 했다. 그렇게 20대를 보내고 서른이 가까워질 때 즈음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었다.


여행기를 좋아하는 않는 나는 유튜브에서도 여행 채널은 구독한 적이 없었다. 물론 지금도 수많은 구독 채널 중에 여행 콘텐츠를 다루는 채널은 5개뿐이다. 그나마 그 채널들도 최근 1-2년 사이에 구독을 시작했다. 요즘에는 꾸준님의 여행기를 가장 많이 봤다. 일을 관두고 자신이 가진 전재산을 털어 여행을 시작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리고 자신만의 템포로 여행을 한다는 게 보기에 편했다. 급할 거 없이 동네 골목길을 계속 걷는다. 초반에는 그의 여행들이 고행처럼 느껴졌다. 걷고 또 걷고 힘들게 여행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마음이 더 커져서 저런 고행 같은 여행을 계속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 머무르는 숙소가 다르고 그 숙소에 들어갈 때 오늘의 집이라고 말하는 게 생소하면서도 공감이 되었다. 가장 필요한 물건들만 담은 가방 하나를 가지고 다니는 그 고행 같은 여행기를 나는 요즘 제법 즐겨보게 되었다. 나는 방 한 칸을 옮겨 다니는 삶을 살게 되었다. 몸과 마음을 온전히 내맡길 수 있는 집이라는 공간은 아직 나에게 희미한 존재이다.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아직 여행 중인 사람인 걸까.. 생각했다. 삶의 변주가 많다는 건 그것으로도 여행이 될 수 있을까? 어느새 단조로워진 일상에서 할 말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을 때가 있다. 하지만 결국엔 짤막한 말들이 한가득 쌓여서 할 말이 많은 사람이 되어 버리곤 한다. 시인은 이런 말을 해주었다.

어디에 있든, 어디로도 가지 않든.. 언젠가는 여행 기억이 되고 그걸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그 어떤 얘기보다 솔직한 얘기일 거라고 믿어요.

그 메시지를 읽고 또 읽었다. 나는 아직도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을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를 말하려면 더 많은 설명을 해야 하는 일들이 지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다. 결국엔 다 말할 거면서 말이다. 좀 더 솔직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가진 마음들이 초라하다 느껴 자꾸만 숨기게 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울면서 쓰던 글들을 덤덤하게 읽어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덤덤함은 큰 위로이기도 했으며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일이기도 했다. 함께 글쓰기 수업을 하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내 이야기를 묶은 그 책은 본가에 남아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었던 비밀 같은 글이다. 종종 엄마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오래된 사진들을 보내주곤 한다. 내가 꽁꽁 숨겨둔 오래 전의 물건들을 엄마가 봤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면서 내 글을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숨어있어 다행이다. 텍스트만 가득한 제본된 그 책을 유심히 읽지는 않았을 거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내가 솔직하려면 내 마음들에게 내가 먼저 솔직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인의 말처럼 그저 들려주는 것 자체로도 난 솔직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키라라의 공연 영상 중에 햇살이 가득한 야외 공연장에서 WISH라는 곡에 맞춰서 흔들흔들 춤을 추던 사람들이 기억난다. 그 곡은 키라라가 가장 힘들었을 때 만든 곡이라고 들었다. 자신이 가장 힘들 때 만든 곡에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다며 올린 그 영상을 나는 좋아한다. 오히려 너무 무겁게 만들어버린 것들이 타인을 통해 별 거 아니라는 감각을 느낄 때 종종 그 무거움은 많이 가벼워지곤 한다. 방 한 칸에 담긴 내 일상은 물건들을 담을 때마다 너무 촘촘하게 느껴진다. 언제고 방 한 칸의 짐들을 모두 싣고 떠날 수 있는 여행도 끝나면 나도 내 집을 가지게 되는 날이 오겠지. 이곳의 겨울은 언제 끝날 생각인지 모르겠다. 새로 이사한 집의 큰 주방 창문에 푸르색이 가득한 여름날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또 내 방 한 칸의 짐들을 꾸려야 한다. 올해도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지 그런 마음으로 또 짐을 꾸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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