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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아가는 일

by kirin

보통 몇 시에 자?

뭐 열두 시 넘어야 자. 한시정도?

아 늦게 자네.

괜찮아. 그래도 이젠 8시면 일어나.

너도 늙었네. 몇 살이지?

서른아홉.

마흔이네.

아직 아니지. 마흔은.


어쩌다 또 구직자가 되어서 매일을 주말같이 보내고 있다. 쉬는데도 왜인지 피로감에 뒤척이다 밖으로 나왔다. 아침부터 와플에 올라간 치킨이 먹고 싶어졌다. 예전에 한국에서 처음 먹어보고 너무 맛있던 기억 때문인지 갑자기 한 번씩 그게 너무 먹고 싶어진다. 와플을 파는 가게부터 찾아본다. 마침 괜찮아 보이는 가게가 있어 그 길로 카페로 향했다. 이젠 매일 남는 게 시간이라 뭘 할지 오늘도 고민해 본다.


전시를 보러 갈까? 시네마테크에 영화를 보러 갈까? 오늘 상영하는 영화가 뭐지? 아 시간이 너무 늦네. 왜 하루에 한편만 그것도 저녁시간에만 상영을 하지?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주문한 치킨이 올라간 와플을 먹었다. 내가 생각한 와플은 겉이 아주 바삭한 그런 와플이었는데 내 앞에 놓인 와플은 폭신한 부드러운 와플이다. 메이플 시럽을 뿌리고 나이프로 와플과 치킨을 조금 잘라 입에 넣어본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어떠냐고 물어보는 직원에게는 내색하지 않았다. 입에 와플을 넣고 씹으면서 창가 저 너 맞은편 나무를 바라봤다.

까마귀 한 마리가 나무에 앉았다. 공원을 오가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 보인다. 조용하던 핸드폰에 문자 알람이 쏟아진다. 여행 중인 친구가 미뤄둔 문자와 사진을 보낸 온다. 답장이 없어 문자를 또 보낼까 하다가 말았는데 용케 문자가 왔다. 나는 적당히 친해진 사이에서 이런 것들을 고민한다. 종종 나는 상대의 지나가는 표정이나 말투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곤 한다. 한국에서 지낼 때는 무시할 수 있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에는 마음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외국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무시하는 게 어려워졌다. 다른 언어를 쓰면서 살아야 하는 것은 늘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할 수 없었고 늘 한 박자 느릴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말에서 내가 놓치는 게 있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추측을 만들어낸다. 한국인에게 눈치라는 건 때론 유용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피로감을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며 의미 없이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다. 종종 사람의 심리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난 움직이던 손가락을 멈춰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영상에서는 감정 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외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그냥 외로움이 아닌 너무 많은 것을 알아차리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을 과민 감성의 고통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상대방의 작은 변화들을 알아채고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도 알아채는 것. 어떤 일이 벌어지기 전 결과를 예측하고 잘못된 결과의 이유를 알면서도 책임감을 느끼기도 한다. 생각이 많아서가 아닌 과각성이라 했다. 그리고 이것은 트라우마의 반응이며 어릴 적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감정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것들을 예측하는 일. 그것은 생존이라고 했다. 참 많은 것들이 어린 시절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걸 나는 한참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너무 많은 것들이 한국을 떠나 살면서 발현되는 거 같았다. 왜일까?

안정적인 마음으로 살았던 적도 없었고 늘 부유하는 느낌으로 살았는데. 생각해 보니 나는 늘 내가 무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의 외적인 변화를 잘 알아채지 못한다. 액세서리를 바꾸었다던가 머리를 다듬었다던가 그런 것들을 늘 알아채지 못했다. 난 참 무딘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무시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그렇지도 않았던 거 같다. 살이 쪘다는 이야기에 살을 빼고 내가 만든 결과물을 평가하는 친구에게 어떤 말도 못 했었다. 나를 보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들에 무던히도 예민했었던 시간이 있었다.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 연락을 해오지 않으면 괜한 걱정을 하기도 했다. 나와 가깝게 연결된 사람일수록 마음을 쓸수록 나는 모든 것을 예측하고 불안해했다. 그저 생각이 많은 사람이기에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만 여겨왔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어떤 특정 소리들에 민감하게 반응했었다. 그 소리들은 학습된 것 마냥 들려오는 순간 심장이 빨리 뛰고 불안해졌다. 그 소리들이 가져오는 상황들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해피엔딩은 없었다. 몸은 불안을 기억한다. 그리고 마치 어떤 신호처럼 그 소리에 몸은 반응한다. 행복한 일은 간혹 기억이 흐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들다가도 불안의 기억은 너무 선명하게 몸은 잊지 않았을 때 나는 너무 슬펐다. 어른들의 방임과 내가 피해자라는 걸 인식하게 되면서 나는 화가 났었다. 어른들을 탓하고 한 번씩 올라오는 분노는 사라지지도 않고 나를 쫓아왔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아주 오래전 지나간 일인 듯 아무도 나에게 그 일들을 말하지 않았다. 가장 오래된 나의 친구들에게도 난 한 번도 얘기하지 않았다. 그저 묻어두고 살았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닳고 닳듯이 나와 같은 기억 속에 살았던 사람. 그 불행의 기억을 나와 함께 가진 유일한 사람. 나의 할머니가 떠나고서야 막이 내렸다. 소리가 공간을 바꾸고 지배했다.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예측과 그 예측을 한 번도 빗나가지 않았던 시간들이다. 불안을 야기하는 것들과 함께 오랫동안 살았었다. 한국을 벗어나서 나는 그것들을 멀리하고 지낼 수 있었다. 몇 년 동안 불쑥 찾아오는 죄책감은 분노에서 바뀌었을 뿐 여전히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영상 마지막에선 혼자 있어서 느끼는 외로움이 아니라 온전히 안전하다는 감각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리 고통부터 생각하는 버릇이 기쁨조차 위험하게 느낀다고 말이다. 사실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정보들을 보자면 참으로 단순하다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정리된 정의에서 안정감을 느끼기도 하고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님에 안도하기도 한다. 나는 이것이 이러한 것이랍니다 라는 명확함을 좋아한다.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왜 그런 것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알아야만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실 그게 명확한 어떠한 이유가 있는 것일 수도 끊임없이 되뇌다 다다른 합리화 일지도 모르겠다. 이사를 하면서 짐을 나르다 아주 살짝 무리가 갔던 발목이 부어올라 한의원을 갔을 때 선생님은 그런 말을 했다. 늘 몸이 긴장되어 있는 사람이라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무리가 오는 거라고. 난 참 나를 모르고 살았던 거 같다. 과연 나는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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