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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Jun 18. 2021

유학 간다니까, 갑자기 고백하더라

그때 그 직장인의 고백을 받아들이는 자세

회사도 취미로 다녔나 봐

첫 직장에서 입사 2년을 거의 채워가던 즈음, 호주 유학을 결정했다. (관련한 자세한 이야기는 '멀쩡히 다니던 대기업 퇴사 이유와 결심'을 참고하시길) 동기들 사이에서는 '돈 있는 집 딸이라 회사도 취미로 다녔나 봐', ' LG 구 씨라는 소문이 맞았던 거 아니야?(내 성이 구 씨다, LG 창업주 집안과 같은 본관은 맞다)' 등의 헛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나와 좀 친했던 직장 동료들은 알고 있었다. 그도 저도 아니라, 그저 자유로운 영혼이라 조직생활에 안 맞아 그렇게 떠나가는 거라는 것을. 그 소문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도 참 피곤한 일이라 대충 웃으며 얼버무리고 차근차근 유학 준비를 해나갔다. 그러고 보니, 그때 있었던 '사내 승급 시험'에도 나 홀로 응시하지 않았다.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 열심히 공부하는 동기들은 나를 보며 참 태평하다 생각했지만 그때 난 요즘 말로 계획이 다 있었다. 돌아보면 조직의 말을 아주 잘 듣는 성실하고 열심히인 동기들이었다. 애초에 그런 성향의 사람들을 뽑아놔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남자가 많은 회사라서

업의 특성상 남자 직원이 대다수였다. 대기업의 기수 문화와 끈끈한 동기애가 있어서 신입사원 시절에는 다 같이 어울릴 기회도 많았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어울릴 기회를 계속 만들어나갔다. 마치 대학의 MT를 연상시키는 도심 속 레지던트 1박 2일 모임도 종종 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자꾸 보면 없던 정도 생기는 것이라 모두들 친해지고 소위 말하는 '썸'타는 일도 가끔 생기곤 했다. 동기들 사이에서 내 이미지는 '커피 좋아하는 차도녀'였고 별명도 '고주(고급 주둥아리)'였다. 어딜 가도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신다는 의미에서였다. 놀리지만 말고 좀 사주던가. 동기들 사이에서 막내였던 내가 그 당시 오빠였던 동기들 눈에는 귀여워 보이기도 했겠다. 그래서일까? 고백이란 걸 받아봤다. 그것도 두 번이나. 그것도 세상 안타깝게 지질한 방법으로. 당시 나는 유학을 생각하고 있기도 했고, 크리스천과의 교제를 위해 기도중(이에  관해서는 '배우자 기도를 아시나요?'를 참고하시길) 이어서 농담 식으로 받아쳐서 넘기기는 했다. 앗! 그러고 보니 한 명은 독실한 크리스천 형제였다. 그럼 그 사람이 마음이 안 들었던 걸로 하자. 나중에 들어보니 이 크리스천 남자 동기가 다른 동기들 앞에서 나에게 차이고(?) 울기까지 했단다. 그럼 나에게 더 당당하고 용기 있게 나오지 참으로 안타깝다. 참고로 그는, 내가 유학간지 얼마 안 되어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살고 있다. 아무튼 여중, 여고를 나온 내가 이렇게 남자들이 많은 조직에서 생활하며 대학 때도 누려보지 못했던 대접을 받았다.


너희들은 갑자기 왜?

대학시절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이 꽤 있는 편이었다. 상경계열 전공이라 과에 남자들이 많기도 했고, 감정싸움에 피곤한 여자들보다 오히려 편하기도 해서. 남사친의 단점이야 서로 짝이 생기면 나몰라라가 되는 것이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이해한다. 그런 남사친들이 내가 유학을 간다니까 갑자기 고백을 하기 시작했다. 생전 이런 경우를 처음 겪어서 적잖이 당황했었다. 평소에 티를 내던가, 내가 좀 알게 하지... 떠난다는 여사친 붙잡고 무슨 이런 경우가 있는지. 마음이 1도 안타깝지 않게 말이다. 그 친구들이 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난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둔할 수도 있겠다. 20대 중반이던 나에게 연애와 결혼은 아직 멀게만 느껴질 시기였으니까. 그래서 더더욱 나를 위해 유학을 결정했는지도 모르겠다. 장래를 약속할 남자 친구가 있었다면 유학이라는 카드는 생각지도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진심으로, 나는 유학 가서 괜찮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 남자들은 다 한국에 있더라.


내 인생에 할당된 이성으로서의 인기가 다 이 시기에 몰렸던 것 같다. 한 친구는 나를 공항에 데려다 주기도 했고 또 각각 다른 항공사에 근무했던 A와 B는 호주 가는 비행기 좌석  3개를 연달아 붙여줘서 아주 편하게 10시간이 넘는 동안 비행기에서 편하게 쉴 수 있었다. 그 후에 그 친구들은 모두 어떻게 되었냐고? 각자도생이다. 건너 건너 아주 가끔 소식을 전해 듣는 정도라고나 할까.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멀쩡하고 멋진 청년들이었는데 그 당시 내가 눈이 아주 조금 많이 높았었나 보다. 그리고 연애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단 한 명이랑도 썸을 타지 않았었으니까. 도대체 왜 그랬어...


하루 걸러 고백받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당시엔, 그렇게 고백받던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 사실들을 즐기고 이용할 그릇도 못되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니 20대 중반의 여자, 누가 봐도 매력이 넘치는 그 시기라서 가능했던 일인 듯하다. 만약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내 선택이 달라졌을까? 글쎄, 재밌는 상상을 해보지만 결국 지금의 남편을 좀 더 일찍 찾아갈 것 같다. 당시 남편은 서로 데면데면하게 인사만 나누던 대학원생 교회 동생이었다. (7년간 인사만 나누던 교회누나와 동생 이야기는 나중에 풀어보겠다) 우리가 그때 사귀었으면 지금 뭐가 달라졌을까? 왠지 궁금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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