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헬로쿠쌤 Aug 03. 2023

평창 막국수, 예기치 못한 곳에서 만나는 즐거움

축제 대신 맛집_시골살이 일주일 프로젝트 3

더위사냥 축제를 가보자


'더위사냥 축제'. 이름만 들어도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숙소 주변의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다 우연히 발견했다. 숙소의 위치가 평창에서도 워낙 외진 곳에 있어서 평창의 주요 관광지인 대관령, 봉평, 진부 등을 아이들과 같이 가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어른들끼리였으면 강릉바다도 그다지 큰 모험이 아니었을 테지만, 여름의 푸르른 동해바다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대신 시골살이 하는 동안, 극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피서 인파 구경은 하지 못했다. 굳이 숙소위치의 장점을 찾자면 말이다.


축제에 가기 위해 숙소에서 약 25킬로미터 북쪽으로 이동해야 하는 점이 운전 쫄보인 나에겐 큰 과제였지만, 궁하면 통하리라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싣고 운전대를 잡았다. 물놀이 축제이기에 아이들은 들뜬 마음으로 숙소에서부터 수영복을 입고 차에 올랐다. 읍내 이후 우리의 첫 행선지라 어른도 아이도 설레긴 마찬가지였다.


평창 올림픽의 영향 때문일까? 평창의 국도는 필요 이상으로 좋아 보였다. 피서철인데 통행량도 많지 않았고 도로는 넓고 잘 정비되어 있으니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지만 말이다. 30여분을 신나게 달리다 보니 서늘한 바람이 불며 산세가 더 험해진다. 연중 10도 정도의 냉천수가 흐르는 동네라 하더니 명성대로인가 보다. 변화무쌍한 구름과 하늘, 그리고 산의 조화에 감탄하며 축제가 열리는 곳에 도착했다.

다리건너 보이는 축제현장

지역의 이름 있는 축제답게 형형색색의 풍선과 플래카드가 이곳이 바로 축제장임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곳곳에 배치된 안전요원의 안내에 따라 축제장으로 걸어갔다. 하필 가장 멀리 떨어진 주차장이라 몇백미터는 족히 걸어야 했다. 중간에 계곡 다리를 따라 건너는 순간, 갑자기 천둥소리가 나더니 비가 후드득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원두막에서만 보게 된 축제 현장


비상용으로 챙겨 온 우산을 급히 펴서 쓰고 축제장에 들어서니 거대한 규모의 풀장과 송어잡이장, 큰 공연 무대 그리고 각종 먹거리 장터가 펼쳐졌다. 흔하게 볼 수 없는 광경에 아이들도 나도 잠시 넋을 잃었다. 그러나 이를 어쩌나.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하늘은 어두컴컴해진다. 분명 오는 길엔 찬란한 햇살이 우리를 맞아주었는데, 변화무쌍한 산간 날씨에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우산으로도 빗줄기를 잘 막아낼 수 없었기에 급한 대로 행사장 한편에 있던 원두막에 들어갔다. '비가 곧 그치겠지.'라는 안일한 마음과 함께. 초등학생이상의 아이들은 비가 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워터축제를 즐겼고, 중앙무대에서는 예정대로 아리랑 공연이 계속되었다. 빗속의 아리랑 노랫가락이 그렇게 처량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원두막 안에 있어도 바람이 불어 옷이 다 젖어갔다. 말 그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 20분쯤 흘렀을까?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지 사람들이 하나 눌 축제 현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빗속에서 워터축제를 즐기기에는 아이들이 어렸고, 감기라도 걸릴까 염려가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아쉬운 발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터벅터벅 다시 돌아왔다. 여전히 거센 빗줄기가 원망스러울 틈도 없이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투덜거리기도 했다. 이해한다. 나도 많이 속상했으니까.


당황스러울 땐 커피한잔의 여유를 찾아보자


예기치 못한 순간에 만나는 즐거움, 평창 막국수


이 비를 뚫고 다시 돌아갈 길이 구만리처럼 느껴지는 순간, 주차장 옆에 한 막국수집이 보였다. 아이들과 하는 시골살이라 지역 향토음식을 먹어볼 수 있을거란 기대는 하지 못했다. 마침 출출하기도 하고, 이 비가 좀 그치길 기다려 볼 요량으로 아이들과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식당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평소 같으면 철저한 사전검색과 리뷰 분석을 통해 가볼 만한 지역 맛집을 알아보는 나지만, 이번엔 그럴새가 없었다. 과연 괜찮을까 싶었지만 깔끔한 식당 분위기, 메뉴판, 방송출연 사진 등을 보니 마음이 살짝 놓였다.

물막국수, 비빔막국수 그리고 수육. 소박한 비주얼이지만 깊은 맛이 우러나는 맛이다. 심심한 간을 좋아하는 나에겐 안성맞춤이었다. 부모님도 만족하신 눈치라 다행이었다. 다만, 아이들이 즐겨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아니라 아이들은 대신 챙겨 온 간식으로 허기를 채웠다. 너무나 흔한 메뉴이기에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그윽하면서 풍성한 맛을 이 소박한 그릇에 낼 수 있다니. 막국수 전문가나 마니아는 아니지만 충분히 극찬받아 마땅한 식사였다. 이후에 찾아보니, 굉장한 맛집이었다. 참, 식사 후에도 길게 이어진 비는 숙소에 오는 길에도, 그 밤에도 계속되었다.


인생도 여행도 늘 계획대로만은 되지 않는다. MBTI의 극 T형인 나에게 인생의 변수가 찾아오는 순간 비교적 강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특히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예상치 못한 일들 속에서도 여유를 찾는 법을 서서히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 그 속에서 즐거움까지 느끼게 되었다.


본래 목적으로 했던 축제는 즐기지 못했지만, 평창 막국수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었으니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아무 기념일도 아닌 날에 친구에게 선물을 받은 느낌이랄까. 평창 대화면에서 맛본 막국수의 맛은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들과 일주일간 시골에 살아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