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크리스천의 영적 싸움은 현재진행 중
지난 1년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개인적으로, 영적으로, 국가적으로, 그리고 국제 정세적으로도 마치 판이 요동치는 듯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언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내가 살아온 그 어떤 1년의 시간보다 각성된 크리스천으로 지난 1년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6.3 조기대선이 끝나고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약 6개월이 되었다. 어마어마한 진통과 갈등 속에 출범한 새 정부는 그야말로 격변의 시기에 나라를 이끌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강화되고,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방은 기로에 서있으며, 그 와중에 무역에 큰 의존을 하는 우리나라는 환율과 물가상승 등의 악재로 그야말로 어려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단순히 대한민국이 처한 현재 상황만을 놓고 본다면 그다지 밝은 미래를 그리기 힘들 정도다.
계엄. 탄핵 정국은 그야말로 국가적 소용돌이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 주제로 뜨거운 논쟁을 벌이는가 하면, 불안한 형국에, 나라를 위한 각자의 신념과 마음에 따라 행동하는 시민들도 늘어났다.
각성, 혹은 계몽된 탓일까? 나의 관심사도, 내가 쓰는 글의 주제도 조금은 아니 굉장히 내 중심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관심사가 오롯이 나와 내 가족의 안위와 행복을 위했었더라면, 최근 1년은 소위 신명기에 나온 하나님의 명령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초점이 더 맞춰졌다. 즉, 그동안은 내 일에만 집중하며 나라나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큰 관심 없이 살았다면, 지금은 도저히 그렇게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따지고 보면 내 일에 집중하며 그저 행복을 추구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던 것도 자유민주주의라는 성경에 기반한 체제의 선물인데 말이다.
내가 광장으로 나온 첫 번째 시기는 작년 '10.27 한국교회 연합예배'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교회누나가 말하는, 10.27 한국교회 연합예배'를 참고하시길. 그전에는 기독교인이라면 응당 선한 마음으로 조용히 기도하는 것이 최선의 미덕이라 여기던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10.27을 경험하며 예상보다 훨씬 큰 감동과 기쁨이 있었기에, 한편으로는 내 평생 또 언제 이렇게 광장에 나와 마음껏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인생은 모르는 일이더라. 그 어느 때보다 애통한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대한민국을 위해 간절한 기도를 시작한 이후, '세이브 코리아'라는 기독교 집회에 온 가족이 참여하는 기회를 가졌다. 칼바람을 뚫고 간이 방석과 핫팩을 챙겨서 아이들과 함께 토요일 낮마다 가곤 했던 여의도 국회의사당역은 이제는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곳이 되었다. 6월에는 이른 더위속에서도 퀴어축제에 맞서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반대를 위한 거룩한 방파제 '홀리 코리아' 집회에 참여하여, 서울 시청역에서 여름 날씨보다 더 뜨거운 눈물로 기도했던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이 밖에도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공부하며 큰 충격에 빠져 그동안 무지했던 나를 반성하기도 하며 각종 세미나와 교육에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기세몰이를 하며 배워나갔다. 진작 이렇게 공부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세계관이 바뀌는 엄청난 일이 있었지만, 두 아이의 엄마이자 크리스천인 내가 당장 눈에 띄게 큰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내가 깨어나니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회와 나라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내 자녀, 다음 세대가 살아갈 이 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아이들에게 알려주며, 작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곳에 글을 쓰는 일도 그 일 중 하나다.
아이들이 휴대폰을 입에 물고 태어난다는 디지털화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빨리 변화하며 트렌드가 바뀌고 사람들은 도파민 터지는 뉴스나 숏폼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그러나 크리스천으로서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하며 복음 전파를 위해 온라인을 똑똑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시대다.
크리스천인 나는 이 기술의 이기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까 고민했다. 이렇게 글로 전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지만, 트렌드에 맞춰 성경적인 가치관을 사회통찰적 시각으로 온라인으로 전하는 일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요즘 세대에 맞게 영어로 된 숏폼 영상을 번역해서 자막을 달고 간단한 편집을 통해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스레드에 포스팅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영어번역과 영상편집을 통해서 사역의 저변을 확대한다고 생각하니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예전의 나라면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절대로 이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았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렇게 빚어가고 계신다고 믿는다.
옳은 일이라 생각해서 온라인으로 메시지를 전하지만, 예상외로 악플이 달렸기에 계정을 새로 만드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진리를 말하고 전하는 일에 언제나 방해와 어려움이 따른 다는 것을.
정치는 가장 높은 수준의 이웃 사랑이라는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레 그 국가나 사회의 법과 규정 그리고 정치에 큰 관심과 참여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단순히 정교분리라는 한국교회의 편견으로 무조건 정치를 치부할 일이 아닌 것이다. 조용히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믿음이 있다면 그에 따른 행동이 기반되는 것이 진정한 크리스천의 자세가 아닐까?
예레미아 29장의 말씀은 이런 맥락에서 되짚어 볼만하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But seek the welfare of the city where I have sent you into exile, and pray to the Lord on its behalf, for in its welfare you will find your welfare.
예레미야 29:7
2025년 12월, 대한민국은 위기의 순간을 통과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근 100여 년 간의 역사를 돌아볼 때 이 땅에는 자주 찾아왔고,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약한 나라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위기 때마다 선각자들이 일어났고, 국민들은 힘을 합쳤으며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해 처절하게 싸우고 지켜온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이 바로 이 나라 대한민국이다.
특별히 크리스천으로서, 이 땅을 위해 기도하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이 나라가 성경에 기반한 자유의 가치를 끝까지 지키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전 세계의 제사장 나라로 우뚝 설 그날을 기대한다. 그 사명을 다할 때까지 나의 기도와 영적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을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