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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Sep 24. 2021

여의도 빌딩 숲에 가면 가슴이 뛴다

나의 여의도 입성기

대학 시절의 나: 나 섬에서 일하고 싶어.
친구 A: 섬이라고? 어떤 섬?
대학시절의 나: 여의도


그렇다. '여의도'는 대학 시절 꿈 많던 나에게 선망의 장소였다.  장소만이 내게 주는 특별한 이미지와 설렘이 존재했다.



'여의도 오피스 레이디'에 대한 환상

어린 시절에는 63 빌딩과 한강, 그리고 방송국이 몰려있는 곳으로만 알고 있었던 여의도였다. 취업을 준비하던 대학 졸업반이 되자 우리나라 금융과 정치의 메카인 여의도와 직장인, 그리고 그곳의 빌딩 숲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트렌디하며 쾌적한 강남도, 전통과 역사 속에서 진짜 서울을 느끼며 근무할 수 있는 종로에도 오피스가 굉장히 많았지만 여의도만이 주는 느낌은 조금 달랐다고나 할까? 들리는 말로는 금융권의 연봉이 일반 회사들보다 높기 때문에 여의도 물가가 좀 높게 형성되었다고도 했다. 해서, 여의도 직장인들은 고작 밥값 차값에 그렇게 민감하지 않다는 소문도 있었다. 게다가 '여의도 증권가 뉴스'라는 말이 있듯이 정보에 빠르고 선도적인 지식인 집단이 모여있는 곳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언젠가 독일 출신 방송인 '다니엘 린덴만'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서울의 오피스 레이디들이 옷을 잘 입고 예뻐서 한국에 살아야겠다'라고 결심했다고 한다. 나도 여의도 직장인에 대해 린덴만이 가진 그런 이미지 혹은 환상을 갖고 있던 게 아닐까? 결과적으로는 종로 쪽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여의도 직장인이 되고 싶었지만...

상경계열을 전공했으나 도무지 숫자가 싫었다. 그러나 숫자를 빼고 금융을 논할 수는 없는 법. 물론 여의도에 금융회사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의도에 위치한 회사에만 지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학 졸업반인 나는 결국 여의도 근무와는 인연이 없나 보다 했다. 개인이 선호하는 지역에 있는 회사에만 지원하는 것도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하리만큼 황당하다. 요즘 같은 비대면 재택근무시대에는 그 '장소'마저도 의미가 퇴색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호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지원한 한 글로벌 기업이 여의도 한복판에 있긴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회사가 여의도에 위치해서 지원서를 냈던 이유도 상당 부분 차지했었다. 그런데 반전이다. 나를 너무나 잘 봐준 그 기업 인사팀에서 싱가포르에 있는 글로벌 본부에 나를 적극 추천했고,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만 합격해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내에 위치한 다른 회사에 가긴 했지만 '여의도 직장인'이 되고 싶던 꿈은 이룰 수 없었다.


그러다가 결혼 후 기업에 영어강의 출강을 잠시 한 적이 있다. 직장인들과 출근시간에 여의도 빌딩 숲을 걷고 있자니 또다시 가슴이 뛰었다.  나도 '멋진 커리어우먼처럼, 근사한 정장에 한 손엔 커피를 들고 또각또각 힐 구두를 신고 바쁜 걸음을 걸으며 이렇게 살고(?) 싶었었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해보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이 컸나 보다.




마침내 여의도에 입성하다

어쨌거나 정기적으로 여의도를 오고 갔으면 좋겠다는 나의 소원은 성취가 되었다. 여의도 직장인은 되지 못했지만, 결혼하며 여의도에 위치한 교회를 다니게 되고부터다. 지금은 시국이 비상이라 대면 예배는 가끔 나가지만, 아기띠를 하고 유모차를 끌며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여의도 한복판을 지나는 기분은 생경하지만 만족스러웠다. 비록 내가 꿈꾸던 정장에 하이힐 그녀, 오피스 레이디의 모습은 아니지만 한산한 여의도의 일요일을 가족과 함께 맞이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여의도를 누리기엔 더 좋은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여의도만 보면 가슴이 뛰던 20대의 나. 이제 그 가슴뜀은 추억이 되어가는 중이다. 참, 누군가 그러더라. 어떤 일에 계속 가슴이 뛴다면, 병이니 병원에 가보라고. 우스갯소리겠지만 날카로운 분석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즐겁게 하는 것은 긍정적이며 권장할 만 하지만, 때로는 현실을 고려하고 그 안에서 변화를 모색하는 것도 필요한 법이다.


며칠 전, 가족들과 여의도 한강공원에 갔다. 유람선을 타고 한강과 어우러진 여의도의 빌딩 숲을 감상했다. 한때나마 나를 설레게 하며 꿈꾸게 해 준 장소 여의도. 이제 나는 그곳을 보며 다른 꿈을 꿀 준비를 하고 있다. 혹시 아나? 언젠가 여의도에 당당하게 커리어로 입성하게 될 줄도 모를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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