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의 소통법

by 이호성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학창 시절만 하더라도 집에 하나씩은 있는 가전제품이었다. 보통 카세트테이프를 하나 또는 두 개를 재생할 수 있는 기능과 같이 되어있었다. 여전히 라디오라는 매체의 힘은 건재하지만 요즘은 스마트폰으로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어 따로 기계 자체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가전제품 매장에서도 라디오가 사라진 지는 오래다.

참 많이 들었다.

각 방송국마다 주파수를 외우고, 시간대별 프로그램을 외우고, 진행자와 게스트까지 줄줄이 외우던 시절이 있었다. 더욱 깊어지면 방송의 선곡표를 미리보고 그 선곡표에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끼워 넣고 싶다는 갈망으로 어렵게 신청하여 나의 노래 한 줄을 추가하는 설렘을 만끽하기도 한다.


문득, 라디오의 장점이 뭘까? 무엇이 나를 이토록 감성적인 라디오 예찬론자로 만들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됐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끼어들 틈이 없어서 좋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되돌아보니 그런 끼어들 틈이 더욱더 없는 프로그램을 찾아 듣곤 했던 것 같다.

끼어들 틈이 없더라...


요즘시대에 중요시 생각하는 소통과 반대되는 개념이긴 하지만 나는 그런 라디오가 좋았다.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빽빽한 스케줄을 진행자의 멘트와 노래만으로 꽉 채운다. 그 순간 다른 감각들은 오로지 귀가 조금이라도 더 잘 듣고 온전한 감정을 느끼도록 온 정성을 쏟아준다. 입으로 대꾸할 필요도 없고, 눈으로 상대의 반응을 체크하지도 않는다. 긴장감으로 코를 벌렁벌렁 하지도 않으며 상대와 억지 시킨쉽으로 유대를 갈구하지도 않는다. 말하는 내용이 맞는지 확인받지도 않고,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는다. 그저 말하니까 듣고, 들려주니까 느낀다. 이 단순하면서도 수동적인 행위에 편안함과 안정감을 동시에 느꼈던 것 같다.


요즘은 나 역시도 시각적인 사치를 많이 부린다. ‘유튜브’라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신박한 서비스를 몸소 느끼고 있고 심지어 라디오조차도 ‘보이는 라디오’라는 콘셉트로 영상을 통해 진행자를 직접 보면서 동시에 듣는다.

세상이 변한 건지, 내가 변한 건지, 어디까지가 구식이고, 어디서부터 새롭다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할 겨를 없이 또 무엇인가 콘텐츠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것이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시각적인 사치는 쉴 틈 이 없다.


다른 한편으론 변하고 있는 세상에 누구보다 잘 적응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시원하게 나 자신을 칭찬할 수 없는 이유는 뭘까.


자기 자신은 본인이 제일 잘 안다. 그리고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리운 건 라디오에서 흐르는 노래뿐만이 아니었다. 라디오는 갖은 방법으로 나의 주변과 그 시대를 함께 떠올리게 해 준다.


나는 라디오를 통해 그 시대와 소통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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