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새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조금만 시간을 내서 생각해 본다면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미 거의 완성단계에 있는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당연한 것들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당연한 것들에는 함정이 있다. 도달함에 있어서 과정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성취에 대한 감흥을 묻어 버린다는 것이다. 살면서 지속적으로 과정은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달으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더욱 주목받는 것은 결과라는 것에서 오는 아쉬움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한 것 같다.
평행선을 달리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당연한 것들에 대한 심심한 고마움을 느끼려 하고, 과정에 대한 디테일을 들여다보려 할 때 우리 삶은 더 충만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된다는 것도 아마 그런 이치가 아닐까 싶다.
물론 경제적 독립이나 결혼과 육아에 대한 경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부분을 가지고 어른의 기준을 삼는 이 시대 통념들도 존재하는데, 그런 것들도 결국 결과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본래 진행형의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달하는 과정을 충분히 스스로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특히나 이 경우에는 말이다.
덧붙이자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제 누군가가 당신을 쫓는다는 것이다. 그 관찰자를 자녀로 한정지어서는 안 된다. 아들, 딸은 당신을 쫒는 것을 넘어서 당신이 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존재이다. 자녀를 제외한 당신을 쫓는 누군가는 숨어서 당신을 관찰하며 채점하거나 과오를 지적하지는 않지만 당신을 응시하고, 때론 응시할 뿐만 아니라 보고 느낀 대로 성장한다. 당신 곁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럴 때 우리는 책임이라는 다소 무거운 표현을 쓰곤 한다.
글을 쓰면서 몇 번이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나는 어른의 과정을 잘 살아내고 있는가.
그 의미와 무게를 온전히 받아내고 나아가려 하고 있는가.
혹시나 회피하려 하거나 모른척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누군가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한 목적으로 매일 정진해 나가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엇나가지는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긴 하다.
쓰고 나니, 스스로 ‘꼰대’ 임을 인증하는 글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부 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고, 그것을 노잼의 포인트라 지적해도 별수 없을 것 같다.
관심과 오지랖의 경계가 애매하고, 충고와 조언의 차이가 모호하듯이 꼰대와 어른의 긍정적인 의미도 결국 한 끗 차이인 듯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힘들여 나아가는 것이다. - 어른 이후의 어른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