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으로 만드는 사랑
공연을 보러 홀로 서울에 다녀왔다. 육아는 잠시 내려놓고 부모의 집을 잠깐 스치는 여행이었다. 요즘의 시골 풍경이 도시의 일상과 아무리 비슷해도 화려한 공연들은 여전히 대도시에만 있다. 가는 길이 힘들긴 하지만 가끔씩 문화 나들이 한다고 생각하면 아주 버겁지도 않았다.
보고 싶었던 이들을 만나고 공연도 본다니 물씬한 연말 분위기에 조금 들떴다. 부모님과의 식사를 계획하며 애틋한 마음도 들었다. 차로 5시간 넘게 달려야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살아서 더 그렇기도 했다.
하지만 좁아진 거리만큼, 우리 사이의 조심스러움은 빠르게 사라졌다. 특히 육아 경력자이자 나의 양육자였던 엄마는 손주들에 대한 애정을 잔소리로 풀었다. 아이들에게 호응을 잘해줘라, 다양한 곳에 데리고 가라... 식사를 하러 가는 길 위에서도 열띤 강연을 이어지자, 슬며시 딴생각을 하기도 했다.
횡단보도의 흰색 줄을 셋까지 세었을 때였다. 어머니의 말이 멈춰서 앞을 보니 어떤 아주머니가 우리를 돌아보고 있었다. 정적이 흐르고 그가 지나가자 엄마가 작게 말했다.
"저 사람, 왜 우리를 쳐다보지?"
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오은영 박사가 온 줄 안 거 아닐까. 너무 훌륭한 말을 많이 하셔서."
딸의 소심한 반항을 알아들은 엄마는 크게 웃었다. 그리고 기꺼이 화제를 돌렸다. 잠시 후 미리 예약해 둔 식당에 도착했다.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꾸며진 이태리 음식점이었다.
와인잔을 부딪히는 부모님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보기 좋았다. 고기나 회에 소주를 기울이는 모습이 내가 아는 부모님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물론 그 모습도 좋았지만 격식 차린 장소에서 서로 와인잔을 부딪히는 것은 뭐랄까, 편한 대로 소주잔을 잡는 것과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적당한 거리감 덕분인지 우리는 좋은 말만 했다.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다시 시골로 돌아가는 길, 엄마는 문 앞까지 배웅하며 말했다.
"너, 지금 잘하고 있어! 다 잘하고 있어!"
'방금까지 열심히 잔소리해놓고 뭘 다 잘하고 있대...'
하지만 구구절절 따져 묻기엔 얼굴이 시린 날씨였으므로 나는 말없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동안 엄마의 말을 곱씹었다. 응원한다, 사랑한다. 그런 마음이었으리라고 짐작했다.
'저는 집에 잘 도착했어요. 걱정 마세요.'
'고생 많았어. 푹 쉬어~'
메시지를 보내자 바로 답장이 왔다. 마치 연락을 기다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렇게나 애틋한 관계가 있었던가. 아, 예전에 남편과 연애할 땐 그랬구나... 전 남자친구, 현재 남편을 잠깐 생각하며 현관문을 열었더니 우릴 닮은 아이들이 크게 소리 지르며 달려와 안겼다.
"엄마!"
포근한 아이들의 냄새를 맡자 정말 내 집에 온 듯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보통 관계는 끌어당겨야 애틋해지는데 가족만은 예외다. 조금 밀어내야 오히려 특별해진다. 아마도 평소에 너무 가깝게 지내기 때문인 것 같다. 좀 더 쉽게 선을 넘고 배려하지 못한다. 부모와도, 남편과도, 아이와도 거리 조절이 쉽지 않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남편이 집안 정리를 대대적으로 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깔끔했고, 바뀐 환경에 적응하면 오히려 삶이 편해질 변화였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물건을 말없이 옮겼다는 이유로 화가 났다. 손 닿는 곳에 있었던 익숙한 것들이 사라져 자주 불편했기 때문이다. 결국 큰소리를 냈고 우린 한동안 냉랭한 관계를 이어갔다.
지금도 말없이 이뤄진 대청소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아예 남이었다면 나의 태도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상대의 선의를 우선 고려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 사랑하는 가족에게는 이토록 너그럽기가 힘든지. 시간이 한참 지나야 서로 미안하다고 할 마음이 생기는지 참 모를 일이다.
한편 절대로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없는 관계도 떠올랐는데, 바로 자식과의 관계다. 특히 아이들이 실패를 겪기 직전에는, 비록 그게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지라도 못 견디겠다. 결국 아이가 성장할 기회를 주지 못하고 자주 강하게 개입하고 만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과 세수를 하러 화장실에 간다. 그런데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옷이 다 젖는다. 앞섶이 젖지 않을 만큼 노하우가 쌓이려면 손이 서툴든 말든 혼자 하게 둬야 한다. 수건을 두르면 옷이 덜 젖으므로 그렇게 기다리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 수건 두르는 걸 엄청 싫어한다는 것이다. 손과 손이 엉키며 시작된 실랑이는 꼭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끝난다.
"이렇게 하면 안 젖어. 한번 해보라니까? 너 옷이 물에 다 젖으면 얼마나 차갑겠어! 엄마 말 들어~!"
다급하게 부탁해 봤자 아이들에겐 들리지 않는다. 결국 아이들이 실패할 경험을 건너뛰고 직접 다 해주는 걸 택한다. 아이가 가만히 손이나 깨작 깨작 닦고 있으면 내가 나서서 얼굴을 닦이고 귀 뒤와 목에 물을 묻혀주는 식이다.
나중에 알아서 잘하겠지.... 아이를 위하는 마음 반, 스스로 당장 편해지려는 마음 반이 섞여서 아이들의 영역을 자주 침범해 버린다. 새벽마다 이불을 덮어주느라 잠 못 이루는 건 또 어떤가. 이래서 엄마는 평생 잔소리 담당, 걱정 담당이 될 수밖에 없다.
아, 방금 전 문장을 쓰고 나니 새삼 뭔가 깨달았다. 30년 넘게 이어온 부모님의 잔소리가 갑자기 이해된 것이다. 고작 3년 육아로 지난날 내게 쏟아졌던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다니, 앞으로 얼마나 많은 순간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올릴지 아득해졌다. 30년 뒤 길거리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육아 방식에 대해 강연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아..!
가족 간의 관계를 돌아보며 떠올린 이미지가 있다. 수많은 자석들이다. 부모 자석이 끌어당기는 힘을 피해 극을 돌려 새 가정을 이뤘더니 어느새 내가 남편과 아이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새로 꾸린 가정을 끌어안고 보니 멀리 부모의 모습이 이제야 온전히 보인다. 버둥거리는 내게, 잘하고 있다고 손을 흔든다.
아이들이 크면 또 나처럼 몸을 빙글 돌려 달아나려 하겠지. 지금부터도 벌써 "이리 와!" 하면 어깨를 돌려 달아나니 말이다. 아이들이 더 멀어지고 싶어 할 때가 되면 너무 서운해하지 않고, 우리 부모처럼 응원만 하자고 마음먹는다. 적당한 거리에서 밀고 당기며 유유히, 빙글빙글 즐겁게 살아가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