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와 부채감 사이
얼마 전부터 눈꺼풀 위로 무언가 볼록한 게 생겼다. 비립종 같기도 하고 여드름 같기도 한 게,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은 채 눈 위에 계속 있었다. 아프게 하는 건 아니지만 신경 쓰이게 하니 그 자체로 잘못을 저지르는 놈이었다. 결국 피부과를 방문했다. 의사를 만나기 전, 상담 실장이라는 분과 한쪽 벽이 투명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송인 시절, 관리라는 이름 하에 피부과와 각종 의원을 많이 다녔다. 그래서 곧 생길 일에 대해 쉽게 예상하고 있었다. 아마 실장님은 내 얼굴을 뜯어보며 원래 하려고 했던 것 외에도 '더 하면 좋을' 시술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꿋꿋하게 '아니요. 이 눈 위에 두 개, 볼록한 것만 제거할게요.' 해야지. 그런 마음으로 있는데 그분이 대뜸 그랬다. 얼굴에 사마귀가 보인다고. 사마귀는 그냥 두면 번지고 다른 사람한테 옮기기도 하니 당장 치료가 필요하다고.
굳게 먹은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스킨십이 많은 가족들에게 옮길 수 있다는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떠올랐다. 있는 줄도 몰랐던 사마귀의 존재가 갑자기 제일 큰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분은 그마저도 지금은 예약이 밀려 할 수 없으니, 최대한 빨리 예약을 잡아 다시 오라고 했다. 진짜 치료를 해야 하나? 한다면 언제? 망설이다 보니 차례가 됐고, 의사를 만나러 갔다.
"선생님, 제가 사마귀가 있대요. 근데 저는 정말 몰랐거든요. 이게.... 당장 치료해야 할 만큼 시급한가요?"
의사는, 처음엔 병원의 이익과 의학적 소견 사이에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휴, 이렇게 조그만 사마귀 없는 사람도 별로 없죠. 심하진 않은데? 근데 물론 치료를 하긴 해야 돼요. 그냥 없어지진 않고 얼굴이랑 몸에 다 번지거든요. 좀 더 지켜봐도 될 정도예요. 통증 있거나 심해지면, 그때 해도 되고."
의사의 결정을 바꾼 건 한숨처럼 나온 나의 대답이었다.
"네. 집에 어린아이들이 있으니까 걱정되어서요. 혹시나 옮길까 봐. 전염성이 높지는 않은가 보네요."
의사는 잠시 멈칫하더니 아이들이 몇 살이냐고 물었다. 그러고는 치료대에 나를 눕게 하고 말했다.
"아이들 있으면 신경 쓰이죠. 제가 그럼 얼굴이랑 목 쪽은 그냥 지금 서비스로 해 드릴게요."
'날짜를 따로 안 잡아도, 심지어 돈을 내지 않아도 치료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어리둥절하는 사이 레이저가 파박 튀었고 순식간에 35개가량의 작은 상처들이 생겼다. 어안이 벙벙한 마음으로 접수대를 나오니 직원이 그랬다. "원장님이 두 개 제외하고, 나머지 서비스로 해주셨어요. 총 ㅇㅇ원입니다."
하나당 만 얼마씩, 십만 원 단위의 '서비스'를 받고 나오니 기분이 묘했다. 좋기도 한데 이래도 되나 싶었다. '아이들 이야기가 원장님의 마음을 울렸나? 근데 만약에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레이저 치료 접수를 했으면?' 치료가 정해진 대로 이뤄지지 않아 마음이 불편했지만, 한편으론 또 그 수혜를 받은 셈이니 마냥 불평할 수 없었다. 의료 서비스의 가격이 감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는 사실이 묘한 부채감과 불신을 남겼던 것 같다. 기쁘지만 애매한 마음으로 피부과를 나섰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기억도 있다. 그날은 자주 가는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고르는데, 앞서 계산하던 분들이 사장님의 손맛을 칭찬했다.
"여기 계란말이가 진짜 맛있더라니까! 나 그동안 계란말이를 무슨 돈 내고 사 먹나, 하면서 안 샀었는데 진짜 돈 낼 만 했어."
"그날 여기 언니 손맛이 진짜 히트였어. 다 맛있었어!"
엄지를 치켜들던 손님들 사이로 주인 아주머니는 앞치마에 손을 닦고,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계산을 마친 손님들이 우르르 나가고 내가 조용히 반찬을 올려두자 아직 상기된 주인 아주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이거 얼마예요?"
"어, 다 해서 1만 5천 원."
"네? 아... 저는 만원인 줄 알았네요. 이게 비싼 반찬이구나."
혼잣말로 중얼거렸더니 그분이 말했다.
"에이, 기분이다! 1만 2천 원에 가져가요. 그 밑으론 좀 어렵고."
너무 당황하고 죄송스러워서 거절했더니 주인아주머니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날도 있어야지! 나도 기분 좀 내게!"
거듭 감사인사를 하면서 반찬가게를 나왔다. 가격의 차이일까. 아니면 여러 환경의 차이일까. 그래도 피부과에서 나설 때만큼 기분이 묘하지는 않았다. 사실 날아갈 듯이 좋았다.
결국 경제활동도 사람이 하는 거구나. 최근에 여러 덤을 받으면서 마지막으로 남은 생각이다. 보너스, 서비스, 덤... 이름은 달라도 물건이 더 오거나, 청구서 금액이 조금 더 저렴해지거나 하는 것은 같은 일이다. 그 자체는 어떤 온기도 없지만, 판매자로 하여금 그 일을 기꺼이 하도록 하는 것은 사람들 간의 온기다. 그리고 그 온도를 높이는 건 상대의 서비스를 당연시 여기지 않는 태도다.
사실 태도나 상황에 구애받지 않는, 균일한 서비스를 선호하는 편이다. 예약 안 되는 맛집보다 예약 수월한 프랜차이즈 집이 더 좋다. 그럼에도 기대하지 않은, 규칙 사이의 균열로 쏟아지는 온기가 따뜻한 건 부정할 수 없다.
정찰제와 가격 명시가 익숙한 세상에서 덤을 생각한다. 서비스 역시 명확하게 정해진 세상은 편하고 공정해 보인다.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뭔가 내어주게 만드는 힘은 눈에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메뉴판에도, 할인 쿠폰에도 없는 그 감정 교류가 '당연한 서비스 과정'을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며 내가 들고 온 것은 돈이 아니라 기억이었으니까.
결국 좋은 기억을 안겨준 그 분들의 호의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호의와 부채감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판단을 포기했지만 그게 기분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