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을 하고 변명하며 산다
10년 간 서울에서 광역시, 다시 군 단위 시골로 거주지를 옮기다 보니 사는 곳에 따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지는 걸 체감하게 된다. 주로 '살만 하냐, 다시 올라와야지.' 이런 류의 이야기다.
특히 시골에 오면서 주변인들의 걱정은 좀 더 노골적으로 바뀌었다. 도시 살던 사람이 시골에 살면 불편할 거란다. 재미있는 건 이 이야기들이 도시 간 이동, 그러니까 '특별시'에서 '광역시'로 갈 때도 들었던 말이라는 거다. 물론 생활의 편의를 따졌을 때 시골은 도시보다는 불편하니 잠자코 듣는다. 게다가 사실이 그렇다. 지금 사는 곳은 교통이 불편해 차 없이 다니기 어렵고, 밤 9시만 되어도 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걱정이 길어지며 잔소리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이쯤 되면 하는 수 없이, 이 시골 생활이 얼마나 좋은지 증명까지 해야 한다. 자연이 가까워 언제든 산과 바다, 들로 나아갈 수 있고 공기가 좋다고. 한창 얘기해도 분위기가 안 풀리면 마지막으로 쓰는 마법의 단어가 있다.
"애들 키우기가 참 좋아요. 지자체 지원도 많고요."
'아이'가 언급되는 순간, 걱정하던 사람들의 표정이 그제야 미묘하게 풀린다.
"그래, 시골이 애들 키우기는 나쁘지 않아. 그리고 거기 돈도 많이 준다고 하긴 하더라."
아줌마야 아이들을 핑계로 겨우 납득을 시킨다지만, 문득 미혼의 청년들은 시골 생활을 어떻게 설명할까 궁금했다. 이 시골에도, 물론 희귀하지만,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이 산다. 자신의 고향과 직업을 연결하려는 로컬 디자이너들과 크리에이터들, 수영 강사들, 카페 사장과 마트 아르바이트생들... 가업이 있지 않는 한 미혼의 청년들이 시골에 평생 머물 이유는 거의 없을 것이다. 짝이 될 다른 청년도, 더 많은 기회도 다 도시에 있어서다. 아마 그들은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나보다 더 많은 권유를 받을 것이다.
"더 넓은 세상으로 와야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말이야."
타인의 삶에 이렇게까지 마음이 가는 이유가 있다. 증명하는 삶이 얼마나 피곤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알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멀어지려 애쓰고 있으니 더 눈에 밟힌다. 시골에 오기 전까지 나는, 경쟁이 익숙한 도시에서 서로 비교하며 스스로를 증명하는 게 일상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아나운서 준비생 시절에는 외모가 카메라 앞에서 얼마나 매력적인지, 발음이 얼마나 선명하며, 상식은 얼마나 많은지를 드러내려 애썼다. 방송사 시험이라도 잡히면 고액의 방송용 메이크업을 받기 위해 새벽부터 강남으로 갔다가, 2시간 넘게 각 잡힌 정장 속에서 덜덜 떨며 대기하고, 30초 정도 카메라 앞에 서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힐과 정장을 계속 입고 있을 순 없으므로 양손에 짐을 바리바리 들고 다녔다. 혹시나 진한 화장이 지워지거나 옷에 묻을까 고개를 빳빳하게 들었다. 시험이 끝나 모든 게 상관없어지면, 긴 속눈썹을 처량하게 떼고 한강을 바라보았다. 그때 본 저녁 한강 불빛은 유독 수채화처럼 뭉개져 보였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도 그런 피곤함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경쟁력을 증명할 차례였다. 이 이야긴 이전에도 몇 번 한지라 더 자세히 하지 않겠다. 아무튼 시간을 10분 단위로 쪼개가면서 5년 간 일에 스스로를 갈아 넣었다. 그 와중에 또 어떤 이와 데이트 중인지 (여자 방송인들은 으레 안정적이고, 수입이 높은 상대와 결혼할 거라고 기대된다.), 새로 생기는 프로그램에 자신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여전히 얼마나 싱그러운지 등을 어필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결국 마음만 먹으면 벗어날 수 있는 류의 증명이다. '사는 곳'이라는, 쉽사리 바꿀 수 없는 환경을 매번 증명하는 것보다는 쉽기도 하고 말이다. 치열한 경쟁을 포기하면서 더 이상 스스로를 애써 매력적으로 드러낼 필요는 없어졌다. 대신 이제는 왜 시골에 살게 됐는지를 거듭 설명하고 있다. 고작 2년 남짓 촌동네에 살았을 뿐인데 벌써 지루하고 귀찮다. 그나마 나는 아이를 방패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혼자인 청년들은? ‘그냥 여기서 살고 싶어서요.’라는 말은 유독 무력하다.
새롭게 느끼는 귀찮음은 의외로, 그동안 누리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도 돌아보게 한다. 돌이켜보니 서울 출신이라는 이유로 가벼이 받아들여지던 실수들이 있었다. 기사를 쓰다 보면 작물의 수확 시기를 잘 몰라도, 다른 지역들의 위치를 헷갈려해도 '원래 서울 사람들은 그 외 지역에 관심 없어.', '도시 애들이 농촌은 잘 모르지.' 하며 관대하게 넘어가주곤 했다.
반대로 이곳에서도 서울에서 태어났고 도시에 직장이 있단 이유로 더 신뢰를 얻기도 한다. 능력으로 증명해 왔다고 믿는 시간들은 사실, 도시라는 배경이 조용히 보증해 준 덕분에 더 깊게 이어갔다. 적어도 도시에선 '왜 내가 지금 여기 살고 있는지' 큰 환경을 거듭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스스로의 욕망에만 집중해도 됐다.
아무튼 나는 여전히 증명하며 산다. 왜 시골에 오게 됐는지, 생활에 얼마나 만족하는지를 자주 말한다. 그리고 나처럼 생활하는 공간을 설명하는 사람들을 본다. 대학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이들, 서울에서 몇 년 버티다 돌아온 이들, 그리고 그냥 가족이 사는 곳에 머물기로 결정한 이들... 더 넓은 세상 대신 선택한 이곳, 익숙하고 편한 공간에서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기를 응원한다.
어떤 선택은 결단이 되고, 어떤 선택은 변명이 되는 세계. 결단을 하고 변명하며 산다. 위로 가지 않는 선택을 했다는 이유로 설명해야 한다면, 가끔은 기꺼이 설명하고 어쩔땐 그냥 웃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