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하신가영 Feb 24. 2024

불행도 유전이 되나요?

학습된 불행 따위에 지지 않을 용기

조금 오래되었지만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던 'Twinsters'라는 다큐 영화가 있다.

사만다와 아나이스라는 입양된 일란성쌍둥이가 다른 나라에서 서로의 존재를 모르며 살다가

sns를 통해 우연히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놀라운 건 이 둘은 정말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취향이나 지능  많은 부분에서 비슷했다.

우여곡절 끝에 처음 만난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색깔 매니큐어를 칠하고, 살라미 소시지를 좋아하는 식성도 똑같았다. 옷 고르는 취향마저 비슷해서 상대방의 사진에서 같은 청바지를 입은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동일한 DNA가 만들어낸 놀라운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를 보였던 것이 있는데, 미국으로 입양 가서 오빠들과 함께 시끌벅적한 환경에서 자란 사만다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자랐지만, 인종차별로 어려움을 겪었던 아나이스는 사만다에 비해 다소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라게 되었다. 환경이 만들어 놓은 성격의 변화였다.


그렇다면, 행복과 불행은 어떨까? 


얼굴만 봐도 찾을 수 있는 내 새꾸는 나의 유전자를 딱 닮았지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 보면 행복유전자 연구결과들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마이클 민코브 불가리아 바르나대 교수팀은 단일염기다형성(SNP) 중 하나인 ‘rs324420’ 속 특정 유전자가 행복감을 느끼는 정도를 가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이 SNP를 가진 사람은 행복감에 대한 수용 감각이 더 민감해지고 고통은 더 낮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여기서 단일염기 다형성이란 대다수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모양새와 다른 특징을 갖게 만드는 작은 돌연변이다.


최근에는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명우재 교수팀이 한국인 11만 명의 유전체 데이터에서 주관적 행복도와 연관된 3개 유전변이를 규명하고, 유럽인 56만 명의 유전체 데이터를 함께 분석해 12개 유전 변이를 추가로 규명했다. 발굴된 유전변이는 FOXP1, UNC5C와 같은 유전자와 가까이 위치했고, 이들 유전자는 정신장애 및 인지기능과 연관이 있었다.


또 내가 너무 좋아하는 책 '행복의 기원'을 쓴 연세대학교 서은국교수의 인터뷰에 따르면 행복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유전(DNA)이었다. 특히 평소에 다른 사람들보다 행복을 유발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특성 중 제일 중요한 것이 ‘외향성’이다. 외향성의 자극추구 성향이 사람이 만나게 촉발하고, 또 그것이 행복과 연결된다는 메시지다.



이렇듯 수많은 결과들이 행복과 불행이 유전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오해는 말자.

이 연구들이 행복과 불행이 100% 유전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긍정심리학자 소냐 류보머스키는 행복을 결정하는 것들에 유전뿐 아니라 개인의 노력과 환경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유전이 만약 행복의 유일한 결정요소라면 우리는 부모의 행복과 불행을 있는 그대로 닮아가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나만 봐도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만약 유전을 어쩔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우리는 습관과 환경만이라도 답습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유전처럼 환경도, 습관도 우리는 부모의 모습을 닮기 쉽다. 정말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왔고, 성장을 해가는 어린 시절에 부모를 보면서 자라왔으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유전과 달리 환경과 습관은 변화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 지금까지 불행 속에서 살아왔다면, 우리는 그 불행에 학습되지 않아야 한다. 벗어날 줄 알아야 한다.








나의 엄마는 참 힘들게 세상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아빠는 가정적이지 않았다.

아빠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자면 이것보다 나은 문장은 없을 것 같다.


밖에서 호인이었던 아빠는

술을 사랑했고

친구를 좋아했고

노름을 좋아했고

여자문제로 엄마를 힘들게 했다.


공장에서 일하며 세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전전긍긍했던 엄마에게

아빠는 화병의 근원이었다.

엄마는 노름의 현장에 자식들을 데려가 아빠를 불러내게 했고, 그 현장을 보게 했으며, 

아빠의 미행에 동행하게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빠가 싫기도 했지만, 엄마가 너무 불쌍했다. 

그렇게 엄마는 평생 내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라기보다는, 성인이 되면서 늘 내가 지켜줘야 할 것만 같은 가엾은 그런 사람이었다.


예전에 한 외부 워크숍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중 질문하나 가 '과거에 돌아가면 뭘 하고 싶냐'는 것이었다.

그때 나의 대답은 어릴 적 시절로 돌아가 엄마를 안아주고 싶다고 했다.

너무 힘들어 보였던 엄마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하지만, 엄마는 늘 힘든 삶을 살아내느라 

가난 속에 아이들을 키워내느라 고단해 보였다.


그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아이에게 그런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고

그래도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온 멋진 엄마였다고 기억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그럼에도 엄마는 그러기 원할 거라 생각한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

나는 행복하고 싶다. 멋진 엄마이고 싶다. 내 삶에서 그래도 썩 괜찮은 궤적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마음이 오늘도 나를 움직이게 한다.

그런 마음이 내일 내가 더 열심히 강의를 준비하게 하는 바탕이 될 것이다.

그런 마음이 나를 더 긍정의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 갈 것이다.


불행의 흔적들 속에서도 나를 가둬두지 않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를 자꾸만 옮겨두는 것

'학습된 불행'에 나는 멈춰있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를 가스라이팅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대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나를 상처 주는 사람들 속에서 나를 객관화해서는 안된다.

나를 힘들게 하는 환경 속에서 매일 똑같이 살아서는 안된다.


그 학습된 불행에서 벗어날 용기가 필요하다.

 



#참고자료: https://jmagazine.joins.com/monthly/view/3314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