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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결 Sep 18. 2020

따듯한 말 한마디, 따뜻한 눈길 한번

매일글쓰기 D-18  with conceptzine

나에게 더없이 애틋한 아들, 첫째는 나의 첫사랑이다. 심각한 고민 없이 시댁에서 신혼을 시작했고, 시댁에 살았던 5년이 힘들었지만 내 아이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다는 마음이 버티게 한 시간이었다.


엄마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면 아이는 엄마의 불안한 마음을 그대로 흡수한다. 시어머니가 정말 정성을 다해 키웠지만 나를 닮아 예민한 기질을 타고 난 첫째는 나의 불안을 그대로 떠안았다. 매일 아침 떨어지기 싫다는 아이를 울리고 나가야 하는 일하는 엄마여서 미안했고, 집에 있는 시간이 행복하지 않아서 미안했다.



하지만 우리 첫째는 그런 불안과 예민함을 안고도 반듯하게 자라주었다. 어디에서나 반듯한 아이, 열심히 하는 아이, 잘하는 아이로.


많은 육아서를 읽으면서 아이를 내 생각에 가두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잘하는 아이이지만, 잘하는 아이라고 내게 각인시켜 아이가 못했을 때 실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이를 존재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하지만 역시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약한 엄마여서, 아이에 대한 환상을 몰래 키워왔었나 보다.


4학년이 되고, 자꾸 아이가 자기 할 일을 미루려고 했다. 원래 잘하는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더 울화통이 터지는 법이라, 한동안 아이를 보는 시선이 곱지 못했다. 그러다 영화 <사도>를 보게 되었다.


사도세자의 이야기. 아비가 아들을 죽인 이야기. 그 영화 안에는 사도세자가 아버지의 사랑을 얼마나 갈망했는지, 하지만 타고난 기질 탓에 아비가 하라는대로는 하지 못하는 번민이 묻어나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영조의 눈빛에서 말투에서, 나를 봤기 때문이다. 원래 영특했던 아이, 그래서 기대를 많이 했던 아이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아서 생기는 화를 영조는 그대로 사도에게 표현했다. 싸늘한 말투로. 너는 항상 왜 그러니,라고 사람들 앞에서 면박하면서.


그게 그렇게 마음이 아팠다. 내가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하고 있던 행동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버린 거다. 타고난 머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왜 더 노력 안 하니? 그럼 최고가 될 수 있는데 왜 안 하니? 마음속으로 질책하고 있던 나를, 영조를 통해서 보게 된 거다.


사도세자가 죽은 날, 영조와 사도세자가 나누는 말이 내레이션처럼 나온다. 영조는 그럴 수밖에 없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따뜻한 관심, 그거 하나를 원했다고 했다.


영화가 끝나고, 내 아이를 바라봤다. 일부러 내 말을 듣지 않는 게 아닐 거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 감정을 스스로 제어하기가 지금은 힘이 들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왕도 아니고, 우리 첫째는 세자도 아니니 지금 조금 자신이 할 일을 미룬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욕심을 조금 더 놓아볼까?


아이의 지금 상태를 인정하고, 좋은 방향으로 결정할 수 있게 천천히 바라봐줄 수 있게, 스스로 마음 수양을 더 해야 할 듯하다.

욱 하는 대신, 따뜻한 눈길로.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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