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 생활(2)
벌을 데려오던 날, 벌들의 아버지가 트럭으로 벌통 세 개를 직접 실어다 주셨다. 몸도 안 좋으시다면서 배송까지. 그것은 벌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벌을 데려가는 내가 어떤 녀석인가 보기 위함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일단 다행이었다. 트럭으로 옮긴다면 승용차 안에서 벌통이 열린다거나 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사라졌다. 다만, 벌통을 내려주고 떠나가는 선생님의 얼굴이 흙빛인 게 마음에 걸렸다. 그건 벌들의 아버지가 오랫동안 농업학교 농사 선생님이셨던 이유 때문이라고 꿀벌 무늬 옷을 입은 나는 생각했다.
선생님은 떠나는 길에 내 손에 배드민턴 채 하나를 꼬옥 쥐어주고 떠나셨다. 그래, 책에서 읽은 적 있다. 이것은 국민 스포츠 일원이 되기 위한 초대장이 아니었다. 양봉계에 내려오는, 말벌 마귀로부터 꿀벌을 지키는 최후의 기사에게 수여한다는 검이었다. “(꿀벌을) 죽이지만 말게” 선생님의 마지막 말은 인류 최후의 희망을 전하는 고귀한 임무처럼 내 가슴을 울렸다. 오늘 꿀벌 무늬 옷을 입기를 잘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마침 꿀벌이 우리 집 텃밭정원으로 이사 온 가을은 말벌의 세력이 늘어나는 때였다. 듣자 하니 말벌의 횡포는 깡패보다 더했다. 납치는 기본이고, 집으로 들어와 일족을 몰살시킨다는 소문도 있었다. 말벌이 무자비한 것은 꿀벌에게는 물론이고, 인간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상대 덩치가 크건 작건 눈에 거슬리면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또 자기 형제를 다치게 하면 형제들이 몰려온다고 했다. 한반도 말벌은 두 세력이 쟁쟁하다. 한 세력은 원래부터 이 땅에 터줏대감이었던 장수말벌파. 크기나 전투력이나 절대 강자인데, 이제는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며 다른 대륙으로 진출해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세력은 최근 중국에서 넘어온 등이 검은 흑등파. 등검은 말벌은 야생이든 도시든 자리를 가리지 않고 자리를 잡을 수 있어 급속도로 한반도를 장악했다.
과연 꿀벌 기사단의 검이었다. 평생 죽여온 말벌보다 많은 수를 겨우 하루 만에 처치했다. 모두 흑등파 누님들(말벌의 세계도 일벌은 모두 암컷이다)이었다. 꿀벌의 새로운 개척지를 깡패 놈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왔다. 벌통 문을 연지 하루도 안되어, 꿀벌들은 이곳이 어딘지 알지도 못했는데 흑등파 깡패들이 벌통 입구를 맴돌며 꿀벌을 채갔다. 소문 그대로였다. 꽃밭을 돌고 벌통으로 돌아오는 꿀벌들을 노렸다. 꿀로 배가 가득 찬 벌은 몸이 무거워 비행이 느렸다. 한 마리, 한 마리, 꿀벌 납치가 끝없이 계속되었다. 흑등파의 사냥은 너무도 쉽게 이루어졌다. (이제 1일 차지만) 작고 귀여운 나의 꿀벌과 나는 이미 한 몸이었다. 분노와 슬픔이 차올랐다. 귀여운 나의 딸들을! 나는 당장에 검, 그러니까 배드민턴 채를 뽑아 들었다. 비융(제다이 전사의 광선검 부름이 들리는 듯했다).
‘너를 잡아 닭에게 먹이리.’ 닭은 흉포한 공룡의 후예답게 어떤 곤충도 먹어치웠다. 그 한 꼬집만 한 주둥이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부처님 손바닥 손오공이었다. 말벌은 분명 좋은 먹이였다. 고대부터 살아남은 공룡의 육욕을 해결해 주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닭은 쌀알 같은 낱알을 먹고 있었지만 만족하고 있지 않았다. 만성적 굶주림에 땅을 파헤쳤고, 내게도 달려들 것만 같은 긴장이 유지됐다. 고대신들의 원귀를 달래줄 적당한 제물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분노한 상태로 광선 검(배드민턴 채)을 너무 세게 휘두른 나머지 말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배드민턴 채 특유의 고탄성 나일론 줄에 튕겨 지평선으로 날아가거나, 그물망 같이 세밀한 줄에 의해 말벌 몸이 산산조각 났다.
닭의 식욕을 위해 조금은 힘조절이 필요했다. 검을 살살 휘둘렀다. 통~. 힘 빠진 검에는 더 이상 제다이의 부름은 사라지고 동네 약수터로 돌아왔다. 피용하고 깡패 놈이 저쪽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다. 벌통에서 잠시 멀어지더니, 내가 왜 여기 있지?라고 말하는 듯 표정을 지으며 다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잠시 맴돌더니 ‘부웅'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날아가며 내 얼굴을 본 것 같다. 널 기억하겠다는 듯. 원래도 성난 얼굴인데, 더 성질이 난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