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를 부탁해
돼지와의 생활에 적응해가다보니 어느덧 여름이다. 매일이 어제보다 더 후덥지근해지고 있다. 날이 더워지니 벌레도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돼지우리에는 먹다 흘린 음식, 오줌, 똥도 있는 이유로 파리가 꼬이기 시작했다. ‘사람 집에도 파리가 있는데, 하물며 동물 집이야 당연히 있겠지’ 정도로 생각했다. 파리 문제는 강 건너 불구경인 줄 알았다. 그런데 파리가 늘어나는 속도는 대단했다. 찾아보니 암컷 파리 한마리가 평생 알을 900개까지 낳는데, 알은 빠르면 한나절이면 깬다고 한다. 한번 퍼지기 시작한 파리는 역병이 퍼지듯 늘어난다. 하루하루가 다르다. 어느 저물녘, 돼지우리를 치우다 본 석양 그림자.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일어나 땀을 닦는다. 꼬물꼬물. 아니, 그림자가 아니었다. 파리 떼였다! 이렇게 많은 군집은 태어나 처음이다. 눈 닿는 곳, 발길 가는 곳마다 파리의 군무가 시작된다. 백만쌍의 공동 짝짓기가 이루어진다. 유전자 보존을 향한 백만 파리들의 단일한 목표. 그 노력은 곱절의 자손으로 결실을 맺는다. 애벌레들이 빠글빠글 꿈틀거렸다.
10년이다. 관료조직에서의 특수훈련을 나는 성공적으로 체화해냈다. 숱한 위기와 부침이 있었다. 선배들은 내게 위기에 맞서는 비기를 전수해주었다. 비급은 세 단계로 나뉜다. 하나는 현실 부정. “내가 잘못 본 거야”라는 말을 되뇌어본다. 두번째는 책임 회피. “분명 산 넘어 오는 애들이야”라며 남 탓하기. 마지막은 정신 승리. 지금 속도로 파리가 번창한다면 식량 부족 사태가 올 것이고, 결국 대기근이 오리라. “파리는 수명이 짧으니까 곧 사라질 거야.” 하지만 현실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만했다. 대기근은 오지 않았다. 파리의 식량은 충분했다. 여름은 이제 시작됐고, 파리들이 할 일은 종족 번식밖에 없었다. 구덕, 구덕. 소름 돋는 이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전기 파리채를 샀다. 파리채는 테니스 라켓과 배드민턴 라켓의 중간쯤의 모양이었다. 파리채를 휘둘러 전기가 흐르는 철망에 벌레가 닿으면 감전돼서 죽는다. 파리가 앉아 있을 때만 잡을 수 있는 고전 파리채와 달리 날아다니는 중에도 잡을 수가 있다. 비행시간이 긴 모기나 날벌레에 특히 효과가 좋은 것으로 후기가 달려 있었다.
전기 파리채가 도착한 날, 포장을 뜯으며 나는 조금 흥분을 느낀다. ‘딸깍' 전기를 켜는 소리에 전율이 돈다. 그대로 돼지 집으로 달려간다.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파리들은 햇볕에서 파라다이스를 즐기고 있다. 돼지 밥을 챙겨주며 저들의 동태를 살핀다. 마음이 급하다. ‘이 생활도 이제 끝이다.’ 해가 저물어간다. 파리들이 밤을 보낼 곳을 찾아 모여들고 있다. ‘딸깍‘ 스위치를 올린다. 돌격! 전기 파리채를 휘두른다. 휘이휘이. 철망에 파리가 부딪친다. “파지직, 파지직” 전형적인 감전 소리가 들린다. “탁, 탁” 전기에 튀겨진 파리가 후둑후둑 떨어진다. 파리가 타 죽으며 연기가 난다. 파리채와 한몸이 되어 빙글빙글 돈다. 멈추지 않는 죽음의 춤. 아버지의 원수 앞에서 칼춤을 추었다던 어느 딸의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이쯤 되면 내가 나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광기가 나를 춤추게 했다. 죽음의 냄새가 석양에 가득하다.
그러나 일장춘몽이었다. 워낙 많은 마릿수 앞에서 전기 파리채는 무력하다. 철망은 파리 한마리가 딱 들어가는 크기였다. 들어가긴 쉬워도 나가긴 어려웠다. 촘촘한 철망에 파리가 너무 잘 낀다. 감전된 파리가 철망에 그대로 들러붙는다. 여러 마리가 낀 파리채는 ’회식비 분배의 법칙(1/n)‘에 따라 화력이 약해진다. 잠깐 기절했던 파리는 다시 제 갈 길을 떠난다. 철망 정비를 위해 멈추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파리를 하나하나 떼어가며 하니 속도가 느리다. 이 순간에도 파리 떼는 도발을 멈추지 않는다. “웽" 피가 거꾸로 솟는다. 하지만 침착해야 한다. 총알을 장전하듯, 파리 사체를 하나씩 떼내고 다시 스위치를 올린다. 파직.
전기 파리채가 처음 나왔을 때, 그 자체로 신기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진화는 멈추지 않았다. 건전지 교체가 번거롭던 초기 모델에 충전기능이 더해졌다. 핸드폰 선으로 충전할 수 있는 모델이 나왔고, 이후에는 220V 콘센트에 바로 꽂아 충전할 수 있는 모델이 나왔다. 전기 살상력을 국가에서도 인정했는지 안전이 강화되었다. 전기 철망을 둘러싼 안전 철망이 생겼다. 사람이 전기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여기에 파리가 꼈다). 온&오프만 있던 스위치가 3단계 스위치로 바뀌었다. 손잡이 좌우에 있는 버튼을 동시에 눌러야 전기가 흘렀다. 이 모든 기능이 더해진 파리채는 더이상 파리채가 아니었다. 파리 방망이라고 해야 할까. 엄지와 검지가 버튼을 눌러야 했다. 주력이 빠진 손아귀 힘만으로 손잡이를 들려니 쥐가 날 것 같았다. 한 손 파리채 춤은 점점 두 손 방망이질이 되었다.
이쯤 되면 파리약을 뿌리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킬라‘ 본능이랄까. 하지만 그럴 순 없다. 약이 묻은 파리 사체와 살충제가 돼지가 뒹구는 땅에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밥을 잘 흘리고, 땅 파는 걸 좋아하는 돼지가 먹을 수도 있다. 땅파기는 돼지가 좋아하는 활동이다. 배가 고파서라기보단, 땅을 파는 와중에 소소한 먹이를 발견하는 것을 즐겼다. 땅속 무언가가 돼지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매일 새로운 구덩이를 파대는데, 더운 날에는 구멍에 몸을 뉘어 땅속 냉기를 즐기곤 했다. 적은 양이라고 해도 돼지가 먹을 수도 있는 흙에 살충제를 뿌리고 싶지 않았다.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이자 작가인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이후, 살충제의 생태계 축적은 상식이 되었다. 인류는 대지가 화학약품을 무한히 해독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뿌리면 그만인 줄 알았던 약품이 결국 인간에게 돌아왔다. 당시 문제가 되었던 살충제 DDT는 책이 나오면서 금지되었다. 역사 속에 남아 있을 줄 알았던 DDT가 2017년 한국에서 검출되었다. 무려 40년 전에 뿌린 살충제가 땅에 남아 있었다. 최근까지도 가습기 살균제 등 화학제품으로 인한 사건은 이어졌다. 기업들은 ’케미포비아‘를 비과학이라고 하지만, 화학제품에 대한 불신은 근거없이 생기지 않았다. 생태계에 유입되는 약품의 분해 속도와 누적 양을 인간은 예측할 수 없다. 돼지와 내 건강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살충제를 뿌리지 않겠다는 생각은 가상하지만, 그대로 사는 건 고생스러운 일이다. 여느 날처럼 파리들에게 조롱을 당하던 때다. 눈앞에서, 뒤통수에서 뱅글뱅글 날아댔다. 굴욕을 참아가며 돼지 똥을 치우고 있었다. 어떤 생각 하나가 불현듯 스쳐간다. 그래, 닭이다! 흙이고 벌레고 뭐든 쪼아 먹는 닭이 나를 구원해줄 것이다. 농사 부산물을 먹는 돼지들. 돼지 부산물에 꼬이는 벌레들. 벌레를 처리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공룡의 후손, 닭이 나의 오래된 미래였다. 신의 ’계’시였다. 번뜩이는 광명에 닭살이 돋았다. (그냥 청소를 깨끗이 해주면 될 것을, 샛길찾기 공인기능사인 나는 정답을 두고 샛길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