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호호동호 Oct 15. 2020

6.방 청소를 깨끗이

돼지를 부탁해


돼지와의 생활에 적응해가는 중, 어느덧 여름이 되었다. 매일이 어제보다 더 후덥해지고 있었다. 날이 더워지니 벌레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돼지우리에는 돼지가 먹다 흘린 음식도 있고 똥도 있는 이유로 파리가 꼬였다. 사람 집에도 파리가 있는데, 동물 집이야 당연히 있겠지, 라고 생각했다. 강 건너 불인 줄 알았다. 파리가 늘어나는 속도는 무서웠다. 암컷 파리 한 마리가 평생 알을 900개까지 낳는데, 알은 빠르면 한나절이면 깬다고 한다. 역병이 퍼지듯 파리가 늘어났다. 하루하루가 달랐다. 어느 해질녘, 돼지우리를 치우던 중 보았던 석양 그림자. 그림자가 아니었다. 파리 떼였다! 그렇게 많은 군집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눈 닿는 곳, 가는 곳마다 파리의 군무가 시작됐다. 백만 쌍의 공동 짝짓기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 사랑은 곱절의 자손을 만들었다. 빠글빠글 꿈틀거리는 애벌레들. 그건 차마 글로 쓰지 못한다.


10년이었다. 관료조직에서 받은 특수 훈련을 나는 성공적으로 체화해내었다. 숱한 위기와 부침이 있었다. 선배들은 위기에 맞서는 비기를 전수해주었다. 세 단계로 비급은 나뉘었다. 하나는 현실 부정. “내가 잘못 본 거야”라는 말을 되뇐다. 두 번째는 책임회피. “대체 어디서 날아오는 거야”라며 남 탓을 한다. 마지막은 정신승리. 지금 속도로 파리가 번창한다면 식량 부족 사태가 올 것이고, 결국 대멸종이 오리라. 맬서스의 인구론이 작동하는 것이다. “파리는 수명이 짧으니까 곧 사라질 거야”. 하지만 현실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을만 했다. 인구론과 다르게 파리의 식량은 충분했다. 구덕, 구덕. 소름 돋는 이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이름은 파리채지만 파리 잡기엔 전기가 약하다








전기 파리채를 샀다. 파리채는 테니스 라켓과 배드민턴 라켓의 중간쯤의 모양이었다. 파리채를 휘둘러 전기가 흐르는 철망에 벌레가 닿으면 벌레가 감전돼서 죽는다. 바닥에 앉아있을 때만 잡을 수 있는 고전 파리채와 달리 날아다니는 중에도 잡을 수가 있다. 비행시간이 긴 모기나 날벌레에 특히 효과가 좋은 것으로 호평이 나있었다.

 

전기 파리채가 도착한 날, 나는 조금 흥분을 느꼈다. ‘딸깍' 전기를 켜는 소리에 전율이 돌았다. 얼른 돼지 집으로 달려갔다. 평소와 다름 없는 날이었다. 파리들은 햇볕에서 파라다이스를 즐기고 있었다. ‘이 생활도 이제 끝이다.’ 돼지 밥을 챙겨주며 저들의 동태를 살폈다. 해가 저물어갔다. 파리들이 밤을 보낼 곳을 찾아 모여들었다. 스위치를 올리고, 전기 파리채를 휘둘렀다. 휘이휘이. 철망에 파리가 부딪쳤다. “파지직, 파지직” 파리가 감전되는 소리. “탁, 탁” 전기에 튀겨진 파리가 후둑후둑 떨어졌다. 파리가 타 죽으며 연기가 났다. 멈추지 않는 죽음의 춤. 아버지의 원수 앞에서 칼춤을 추었다던 여인을 떠올려 본다. 이쯤되면 내 의지가 나를 돌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 힘은 광기였다. 죽음의 냄새가 석양에 가득했다.


일장춘몽이었다. 워낙 많은 마릿수 앞에서 전기 파리채는 무력했다. 철망은 파리 한마리가 딱 들어가는 크기였다. 철망에 파리가 너무 잘 끼었다. 감전된 파리는 전선에 그대로 들러붙었다. 여러 마리가 낀 파리채는 분배의 법칙(1/n)이 적용 되어 화력이 약해졌다. 잠깐 멈추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파리를 하나하나 떼어가며 하니 속도가 느렸다. 이 순간에도 파리떼는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파리채를 정비하는 내 주변을 맴돈다. 침착해야한다. 총알을 장전하듯, 파리 사채를 하나씩 떼내고 다시 도륙을 시작했다.


전기 파리채가 처음 나왔을 때, 그 자체로 신선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진화는 계속 되었다. 건전지로 작동했던 초기 모델에 충전기능이 더해졌고, 콘센트에 바로 꽂아 충전할 수 있는 모델이 나왔다. 전기 살상력을 국가에서도 인정했다. 안전 기능이 강화되었다. 철망이 생긴 이유도 안전때문이었다. 온/오프만 있던 스위치가 3단계로 바뀌었다. 손잡이 좌우에 있는 버튼을 동시에 눌러야 전기가 흘렀다. 손잡이를 얇게 만들면 좋았을걸… 손잡이는 충전지가 있는 탓에 굵었다. 손잡이를 잡으면서 양쪽 버튼을 동시에 누르면 쥐가 날 것 같았다. 한 손 파리채 춤은 점점 두 손으로 휘두르는 방망이질이 되었다. 


이쯤 되면 파리약을 뿌리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사냥에 대한 본능이랄까.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약이 묻은 파리 사체와 살충제가 돼지가 뒹구는 땅에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밥을 잘 흘리고, 땅 파는 걸 좋아하는 돼지들이 먹을 수도 있다. 땅파기는 돼지가 좋아하는 활동이었다. 배가 고파서라기보단, 땅을 파는 와중에 소소한 먹이를 발견하는 것을 즐겼다. 땅속 무언가가 돼지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새로운 구덩이를 파댔다. 더운 날에는 구멍에 몸을 뉘어 땅속 냉기를 즐겼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이후, 살충제의 생태계 잔류는 상식이 되었다. 살충제 DDT는 그 책을 계기로 금지되었다. 그렇지만 38년 전에 뿌린 DDT가 2019년에 한국에서 검출되었다. 생태계 축적은 결국 최종 섭식자에게 누적될 수 밖에 없다. 지금 파리를 가장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에*킬라'가 나를 유혹했다. 하지만 이것은 누워서 살충제 뿌리기와 다름없는 것이었다.


생각은 가상하지만, 그대로 사는 건 고생이 필요한 일이었다. 여느날 처럼 파리들에게 조롱을 당하던 때였다. 굴욕을 참아가며 돼지똥을 치우고 있었다. 어떤 생각 하나가 불현듯 스쳐갔다. 마치 신의 계시와 같았다. 그래, 닭이다. 흙이고 벌레고 뭐든 쪼아 먹는 닭, 공룡의 후손이 나를 구원해 줄 것이다. 농사 부산물을 먹는 돼지들. 돼지 부산물에 꼬이는 벌레들. 벌레를 처리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벌레를 좋아하는 것은 닭! 계시와 같은 번쩍임에 닭살이 돋았다. 소름. (그냥 청소를 깨끗이 해주면 될 것을, 정답을 두고 나는 고집을 부렸다.)

이전 06화 5. 집 나간 돼지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돼지를 부탁해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