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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Oct 13. 2020

5. 집 나간 돼지

돼지를 부탁해

참으로 샌님 다운시간이었다. 나무 울타리로 할지, 전기 울타리로 할지, 전기는 태양 입자로 만들 것인지, 전봇대에서 끌어올 것인지, 여러 선택이 있었다. 현대인의 불행은 너무 많은 선택지에서 온다고 하더군. 신혼집 꾸미기도 아닌데, 선택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이 흘러버렸다. 사실은, 애초에 ‘두 손으로 들 수 있는 아기’ 돼지를 상상한 이상 무얼 하던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결과적으로 앙상한 전깃줄과 육중한 돼지의 만남이 펼쳐졌다. '전깃줄만으로 돼지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아', 모두 우려를 했다. 나는 전기를 믿었고, 사람들은 돼지를 믿었다.



#상상도_두 손으로 돼지


드디어 개소식 날. 돼지 입식을 위해 친구들이 왔다. 아니, 그런데 저 멀리서 툴툴이 형C도 나타났다. 심장이 굳는 게 느껴졌다. 툴툴이 형C는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고 했다. 생전 처음 들른 날이 하필 오늘일 수가 있나. 이것이 복선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다. 돼지를 키워 먹겠다니. 돈도 안 되는 일을, 애까지 써가며 하다니. 이런 기행을 곱게 봐줄 툴툴이 형C가 아니었다. 잘해도 본전이었다. 뒤틀리는 순간 끝이다. 동네방네 소문이 나는 것은 물론, 평생 놀림감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는 이미 (놀릴 생각에) 즐거워 보였다. 등이 따가웠다.  


 하지만 나도 믿는 구석은 있었다. 내 뒤엔 고라니 S가 있었다. 마치 군비 경쟁을 벌이듯, 농촌은 지금 농기계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고라니 S는 우리 동네 최고 등급의 트랙터를 탔다. 고급스런 무광 녹색의 트랙터에는 미국 사슴 그림이 박혀있었다. 무지막지하게 생겼는데 세련된 엔진 소리라니. 미제 사슴은 제값을 했다. 고라니S는 미국 사슴과 온 동네를 활개쳤다. 착하기로도 고라니S를 따를 이가 없었다. 하지만 모든 소문에는 거품이 끼어 있기 마련이었다. 그전의 고장난 목책기가 그의 창고에서 나왔다는 걸...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세 마리를 모두 내보내기보단 한 마리만 내보내서 문제가 없는지 보기로 했다. 한 마리만 밖으로 내보냈다. 100일 평생 축사에서 살아온 돼지가 처음 세상에 나오는 날이었다. 정적 속에 돼지가 경계심 가득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킁킁."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주변 냄새를 맡았다. “킁킁." 눈은 사방을 살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본다는 것을 알아챘다. 시선이 부담되는지, 눈길을 피해 구석으로 갔다. 점점 전기 울타리에 가까워졌다. 곧 전기 울타리와 맞닥뜨렸다. 돼지는 처음 보는 전깃줄을 탐색했다. 내 마음속 전깃줄은  UFC(격투기) 경기장 줄이었는데, 현실은 고무줄이었다. 줄은 너무도 가냘파 보였다. 어깨에 걸릴 높이지만 위협이 될 것 같아 보이진 않는군. 무시하기로 결정했는지. 울타리 밑으로 쓱 넘어가려했다. ‘꼴깍' 침이 넘어갔다. 


“딱!” 


전기가 튀는 소리였다. 돼지 뒤통수가 전깃줄에 닿은 것이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뀌이익!” 뒤통수를 맞고 놀란 돼지가 비명을 질렀다. '됐다!' 쾌재가 나왔다. 하지만 기쁨은 짧았다. 모래성에 공들였음이 밝혀졌다. 전깃줄만으로는 돼지를 막을 수 없었다. 돼지는 놀라면 뒷걸음친다고 들었는데… 뒤에는 사람들이 서있었다. 당황한 돼지는 사람이 없는 쪽으로 달렸다. 그러니까 울타리 바깥쪽을 향해 밀고 나갔다. “딱! 딱!” 전깃줄을 지나가는 동안 어깨, 엉덩이에서 전기가 착실히 튀었다. 목책기는 돼지를 채찍질했고, 채찍질은 돼지를 더 빨리 달리도록 재촉했다. 


돼지가 탈출했다. 눈앞이 깜깜해지기 좋은 날이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게 진국이라더니. 일어날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나는 끝났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뉴스에 나가게 되다니. 체념을 하려던 순간이다. 다행인 것은, 돼지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갈 것 같았는데, 멀지 않은 수풀 속에 몸을 숨는 것이이었다. 얼떨떨 쳐다보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다. 부랴부랴 제각각의 방향에서 돼지를 쫓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방법은 있었다. 여기 모인 사람 모두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었다. 돼지를 포위했다. 하지만 솟아날 구멍이 있기는 돼지도 마찬가지였다. 절묘한 구멍이 있었으니, 막기는 하지만 몸 바쳐 막고 싶지는 않은 한 사람, 그건 바로 나였다. 돼지는 신통하리만치 그 틈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궁지에 몰렸다 싶으면 포위망을 한바퀴 슥 둘러보았다. 꼭 내쪽으로 달렸다. 어쩌면 지난날을 기억하고 있는 걸지 모르겠다. '지난 번 그 껌딱지?' 


샌님 탓에 번번이 뚫리는 포위망. 도망가는 돼지와 다시 막아보는 사람들. 하늘은 맑고 보리밭은 푸르렀다. 가을에 뿌린 보리는 새싹으로 겨울을 났고, 어느새 허리춤까지 자라 있었다. 봄날의 보리는 푸르렀다. 보리밭에 돼지 집을 놓으면 좋을 것 같았다. 보리가 심긴 그대로 돼지 밥으로 줄 생각이었다. 보리에 가려 돼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돼지가 지나는 곳은 보리가 흔들렸다. "사사삭." 사람들은 파란 출렁임을 따라 돼지를 쫓았다.  


토끼몰이 이야기를 가끔 들었다. 동네 아저씨의 어릴 적 추억담. 눈 내린 산에서 토끼를 쫓았지. 콩 속에 청산가리(!)를 넣어 꿩을 잡기도 했어, 아마 나도 그 청산가리를 조금 먹었을지도 몰라. 참새를 숯불에 꼬슬려 먹었는데, 살도 없는데 진짜 맛있는거여. 아,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오늘의 이야기는 돼지 몰이, 아니 돼지의 사람 몰이였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사람들은 달렸다. 전기 울타리도 제 몫을 다했다. “딱! 딱!” 돼지가 울타리로 들어올라치면 예의 그 채찍질을 해댔다. 돼지를 안으로 몰아야 한다는 걸 울타리가 모르는 게 분명했다.  


“아, 전기 좀 꺼!" 착하기로 소문난 고라니 S조차 짜증을 낼 만했다. 전깃줄을 얼른 해체했다. 이틀 걸려 설치한 울타리가 10분 만에 해체되었다. 전기마저 꺼지자 돼지는 더 넓게 뛰어다녔다. 이곳이 UFC경기장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밝혀졌다. 보리밭에선 재미를 다 봤는지 돼지는 밭을 빠져나갔다. 뒤쪽은 야산이었다. 협곡을 건너는가 싶더니 산으로 달렸다. 이렇게 산돼지가 탄생하는 것인가... 앗, 산 위에는 2년근 인삼밭이 있었다. 


고라니S가 내 곁을 스쳐갔다. 아니 바람이 불었다고 해야 할까. 언덕을 오르는 돼지는 충분히 느렸다. “훅, 훅" 한 편의 초고속 카메라를 보고 있는 듯 했다. 용쓰는 돼지의 모습이 하나하나 보였다. 투실투실 엉덩이의 꼬리가 쭉 펴져있었다. 평소 뱅글뱅글 말려만 있던 꼬리도 오늘은 온 힘을 다해 주인을 돕고 있던 것이다. 고라니S가 꼬리를 잡았다. 놀란 돼지가 펄쩍 뛰었다. 돼지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아이고, 너는 평소처럼 가만 있지, 왜 나서서 내 앞길을 막는 것이냐”라고 하지는 않았다, 물론. “꾸에엑"  


제자리 뛰기가 이어졌다. 어깨 넓이로 땅을 딛고 자리를 잡은 고라니 S는 그대로 몸을 뒤로 젖혀 섰다. 가파른 절벽도 돼지 편이 아니었다. 돼지와 고라니 S의 힘싸움이 팽팽했다. 돼지가 잠시 힘을 푸는 순간, 고라니 S가 허리를 틀었다. 돼지가 땅에 내리꽂혔다. 내동댕이 쳐진 돼지도, 보는 이들도, 고라니 S 자신도 놀랐다. 천하장사 축포가 울렸다. 물론 상황은 그대로 였다. 


돼지는 보리밭으로 돌아와, 가시덤불에 몸을 숨겼다. “훅-훅-" 거친 숨을 골랐다. 보다 못한 후계자 J가 함석지붕 조각을 가져왔다. 후계자 J는 ‘진짜' 돼지를 키우고 있다. 그가 돼지를 잡지 말고 몰아야 한다고 외쳤다. 듣고 보니 그랬다. 굳이 잡을 필요 없었다. 집으로 다시 몰아넣으면 되었다. 들판을 달리는 돼지를 잡는다니, 원시적인 발상이었다. 작전이 통했다. 긴 벽을 마주한 듯, 철판 앞에서 돼지는 틈을 찾지 못했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우물쭈물거렸다. 사람들이 길게 서서 길을 만들었다. 천천히 원래의 집으로 몰았다. 집에서는 다른 돼지들이 꿀꿀거리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의 소리를 듣고 돼지가 문앞으로 왔다. 제빵D가 얼른 문을 열었다. 돼지가 안으로 들아갔다. 막혔던 숨이 탁 풀렸다. 돼지들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서로 꿀꿀거리며 이야기 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법칙


고라니S가 답답해 할만 했다. ‘곤포 사일리지’를 겹겹이 둘러 돼지 집을 짓기로 했다. 곤포 사일리지는 ‘공룡알’ 혹은 ‘마시멜로'라고도 불리는 목초 덩어리다. 가을 들녘 수확이 끝난 논을 보면 많이 볼 수 있다.보리, 목초, 볏짚, 옥수수 등의 소 먹이 풀을 저장하는 것을 ‘사일리지’라고 하고, 비닐로 감는 것을 ‘곤포'라고 한다. 유산균을 같이 넣어 풀이 썩지 않는다. 즉, 비닐로 포장한 풀 덩어리. 풀이라고 하지만 하나의 무게가 500킬로그램 이상이다. 무거워 밀 수도 없고, 워낙 단단하게 감기 때문에 돼지도 쉽게 뚫을 수 없을 것이었다. 농담처럼 나온 말이었는데, 쌓아놓고 보니 그럴듯한 울타리가 되었다. 하지만 야금야금 파내면 뚫리기 때문에 안으로 전기 울타리를 쳐서 2중 벽을 세웠다. 출입구가 없는 게 단점이었다. 두 손 짚고 온 힘 다해 뛰어야 나올 수 있는 높이였다. 수레가 다닐 수도 없었다. 울타리를 넘겨 밥을 줘야 했다. 아쉽지만 부족한 부분은 차차 채워나가기로 했다. 이제 겨우 ‘집’이었다. 무사히 키울 수 있을까...끝이 보이지 않았다. 


* 그날부터 고라니S의 일곱 살 아들이 돼지를 보러 왔다. 전망대를 만들어주었다. 친구들을 데려와 견학시켜주기도 했는데, 제법 점잖게 돼지들을 소개해주는 것이었다. 자기 마음대로 돼지 이름을 지어주었다. 콩이, 까망이, 팽이, 중이,,, 돼지 보다 이름이 많은 이유는 호칭이 매일 바꼈기 때문.


돼지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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