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호호동호 Oct 25. 2020

13. 눈을 마주쳐선 안 돼

돼지를 부탁해

매일 한두 시간, 돼지 주변에 머무른다. 집을 손보고, 밥을 줘야 한다. 밖에 나와도 돼지 생각 뿐. 돼지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잘 간다. 돼지가 궁금하다. 텃밭에 있다가도 쉴 때는 돼지 옆으로 가서 쉰다. 돼지들은 땅을 파고 목욕을 하고 낮잠을 잔다. 뽕나무, 환삼덩굴, 찔레나무 가지가 많이 나온다. 밭을 정리하며 나온 부산물은 모두 돼지에게 간다. 이건 어떻게 반응할까, 호기심을 자극해보고 싶다. 돼지들은 달려와 냄새 맡고 씹어본다. 진흙에 드러누워 몸을 비비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 어딘가의 응어리도 녹는 기분이 들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면 집으로 갔다.


송아지 눈은 정말 크다. 뽀송뽀송한 털이 눈을 더 돋보이게 한다. 티 없는 순수한 흑색. 돼지와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다. 까맣고 촉촉한 눈! 사람 눈과 닮은 눈이 나를 또렷이 쳐다보고 있었다. 돼지에겐 흰자위가 적다. 흰자위가 보이는 포유류는 인간뿐이다. 인간은 다른 이가 어느 곳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진화했다. 돼지는 검은자위 밖에 없어서인지 어느 곳에 서서도 나를 쳐다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 눈과 마주치면 거울 뉴런들이 작동한다. 내 거울 신경은 돼지를 의인화시킨다. 돼지는 자아를 가진 동물이 되고, 내게 말을 거는 대상이 된다. 말이 통하고 이해 가능한 개별의 존재가 된다. 살인 대상과 친해지면 안 된다는 킬러의 수칙이랄까. 우리 이야기의 결말은 도축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 아직 순조롭게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나는 너를 먹는다. 그렇지만... 돼지의 눈은 묘한 매력이 있었다. 나는 울타리 너머에서 돼지들의 눈을 몰래 훔쳐보곤한다. 


돼지를 잡는 날, 내 마음은 어떨까. 측은함이나 가책을 느낄까. 주저하게 될까. 혹시 눈물이 날까, 못 먹는 건 아닐까. 나는 돼지의 이름을 짓지 않는다. 아무리 무심하고, 못난 이름을 짓더라도 그때부턴 관계가 달라질 것 같다. 유일의 존재가 되고, 애정을 갖게 될 것 같다. 나는 돼지를 따로 부르지도, 대화를 하지 않았다. 나는 사육자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아니다.


의인화는 약한 마음의 발현일까, 감수성의 다른 이름일까. 돼지가 개만큼 똑똑하다는 사실이 거북하다. 돼지를 보고 있으면 눈치빠른 돼지도 나를 빤히 쳐다봤다. 빤-히. 돼지의 모든 부위가 거칠게 생겼지만 유독(하필!) 눈이 착하게 생겼다. 퍼뜩, 정신을 차린다. 돼지 옆에서 홀로 북 치고 장구를 치는 사물놀이를 해댔다. 우린 거래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먹이를 주고, 먹이를 먹는다. 보살피고, 잡아먹는다. 인간과 가축이 만 년 넘게 이어온 계약 관계다. 

사랑하는 것과 먹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돼지는 동물의 왕국에서 제일 영리한 동물에 속한다. 지식과 학습능력 판단에 적용하는 기준이 너무 많은 탓에 순위를 매기는 건 불가능한 일로 보이지만, 과학자들이 그런 일을 시도하면 돼지는 10위 안에 드는 동물이다. 돼지를 능가하는 유일한 네발짐승은 코끼리 딱 한 종뿐이다. 이건 당연히 돼지가 - 적어도 거기에 사용된 기준을 바탕으로 보면 - 인간의 제일 친한 친구인 개보다 영리하다는 뜻이다.
<돼지 그 생태와 문화의 역사> 중


이전 14화 12. 어디까지 먹을 거니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돼지를 부탁해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