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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Oct 21. 2020

12. 어디까지 먹을 거니

돼지를 부탁해

길었던 봄 가뭄, 그 끝에 단비가 내렸다. 심은 모가 말라죽어 다시 심기도 했다. 마을 어르신들도 ‘이때다!’의 아우라를 뿜으며 밭에 나와 콩이며, 참깨를 심었다. 나도 부랴부랴 돼지 집에 지붕을 설치했다. 진즉에 했으면 비 안 맞고 할 걸. 자연은 공평하다. 준비된 자에겐 기쁨의 비를, 게으른 자에겐 좌절의 비를 내렸다. 돼지 집을 만들어 한고비를 넘기며 마음의 긴장이 풀렸다. 벽은 있지만 지붕이 없는 상태로 지금껏 지냈다. 가뭄이 길었던 덕에 여유가 있었다. 습지를 좋아하는 돼지지만 잠자는 곳이 습하면 몸이 약해졌다. 급히 달려간 돼지 집. 돼지들은 비가 신기한지 가만히 비를 맞고 있었다. 처음 맞아보는 비는 시원할만 했다.


게으르다는 이미지와 달리, 돼지는 활동량이 많고 호기심이 강했다. 울타리에 들어가면 쫓아와 냄새를 맡아댔다. 장화 냄새를 맡고 내 다리도 툭툭 친다. 일에만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근거렸다. 큰 동물이 옆에 있다는 것이 흥미롭고도 낯설다. 오늘은 비 맞기에 심취해 있었다. 하나는 멀뚱히 서있고, 하나는 누워서, 하나는 목을 세우고 앉아 단비를 느꼈다. 덕분에 비가림 막을 빨리 설치할 수 있었다. 비가림 위에 열기를 막을 비닐 덮개를 덮었다. 맑은 날엔 그늘이 될 것이다. 


겨울부터 시작됐던 긴 가뭄이었다. 큰 눈이 오면 풍년이 든다 하였다. 눈이 겨울 바람을 막아, 땅 속 수분을 지켜주는 것이란다. 지난 겨울엔 비조차 오지 않았다. 단비를 기다린 것은 농부만이 아니었다. 나무도 벌레도 비를 기다려 왔다. 물 만난 세상은 일제히 생명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건 풀도 마찬가지였다. 뒤돌아 보면 풀이 자라있었다. 농부들에게는 바야흐로 풀의 시대(지옥문)가 열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차 하는 순간 전선은 무너졌다. 밭이 풀에 점령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시골에서 풀밭을 만드는 것은 범죄행위로 간주된다. 이것은 '예’ 또는 ‘아니오'로만 평가되는 근면성이라는 마을 멤버십에 중요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식물은 태양광 입자를 질량이 있는 식량으로 만들어 낸다. 생태계의 시작점에 식물이 있다. 시골에서 풀이 미움 받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잡초가 작물의 영양을 뺏어먹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빠르게 자라기 때문에 햇볕 경쟁도 유리하다. 풀은 해충을 부르고, 두더지를 부르고, 뱀을 부르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그래서 풀을 짧게(없이) 유지해야 한다고. 문제는 다른 사람의 밭도 관리 대상에 포함된다는 점이다. 이건 마을 멤버쉽에 관련된 것이다. 잡초의 주인은 마을 경관을 해치는 사람으로 간주 된다. 또 하나는 풀씨가 다른 밭으로 넘어올 것에 대한 우려인 듯하다. 불온 식물(?)의 슈퍼 전파자가 되는 것이다. 집집마다 가축이 있던 시절에는 풀이 남을 일이 없었다는데, 시대가 바뀌었다.

 

올해가 시작되자마자 예초기 교육을 받았다. 2행정 엔진 오일이 타는 매캐한 냄새와 소음과 진동은 역시 싫다. 하지만 예초기를 돌리면 마을 멤버십 지수가 늘어나는 기분이 든다. 마을 경관을 정리하는 이미지랄까. 일 좀 하는 사람 대우를 받는다. 농업기술원에서 기초 수리와 관리법을 교육 받았다. 사실, 올해 예초질이 기대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벤 풀을 돼지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예초기에 잘린 풀이 아까웠다. 썩어서 땅으로 돌아간다지만, 아쉬웠다. 이제 돼지 덕분에 한 차원 높은 쓸모가 생긴 것이다. 


돼지가 풀을 먹는다는 사실. 풀을 먹는 동물로 주로 소를 연상한다. 소는 진화과정에서 세상 풍부한 풀을 먹이로 선택했다. 소에게는 6개의 ‘위’가 있다. 각각 다른 역할을 한다. ‘반추’는 포유류 중 가장 진화된 형태의 소화기관인데, 섬유질을 에너지로 만들 수 있다.  인간처럼, 오늘 저녁에 뭘 먹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풀만 먹으면 된다. 그런 소도 풀을 직접 소화하지는 못한다. ‘반추’ 위에 서식하는 미생물이 복잡한 분자 구조인 셀룰로오스를 당분과 탄소로 분해한다. 미생물이 만들어주는 당분을 흡수하는, 공생관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최근 인간의 대장에도 ‘반추’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미생물이 발견됐다. 엄마 모유의 30퍼센트는 아기 대장에 있는 미생물을 위한 올리고당이라고 한다. 우울증이나 치매 같은 정신 건강과 뇌질환도 장내 미생물과 연관이 있단다. 자연 양계로 닭을 키우는 사람들도 갓 태어난 병아리에게 현미와 대나무 잎을 먹인다고 한다. 거친 먹이를 소화하기 위해 장 길이가 길어진다. 장이 긴 만큼 면역력과 소화력이 좋아진다고 한다. 


동물들은 부산물을 먹어왔지만, 이제는 농산물 자체를 먹는다. 콩깍지나 옥수수대 같이 인간이 먹고 남은 걸 먹었는데, 지금은 동물을 위해 콩과 옥수수를 키운다. 전세계 농지의 70%가 동물을 먹이기 위해서 쓰인다고 한다. 배꼽이 배보다 커져버렸다. 옥수수와 콩은 대표적인 사막화 작물이다. 땅을 소모하게 한다. 척박해지는 만큼 화학 비료와 농약에 의존한다. 비료는 빗물에 쓸려가 바다에 생물은 살 수 없는 데드존(dead zone)을 만든다. 옥수수 최대 생산국은 미국이다. 미국산 옥수수의 대부분은 유전자 변형 식품이다. 유전자 변형 식품은 제초제 영향을 받지 않는 유전자를 식물에 끼워 넣은 것이다. 제초제에 영향을 받지 않는 풀이라니. 변형된 유전자가 언제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안정성은 둘째치더라도, 제초제 글리포세이트는 세계보건기구에서 발암물질로 분류한 약품이다.


손수레를 가져와 몇 차례 풀을 옮겼다. 젖은 풀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예초기를 돌린 직후라 힘이 잘 안 들어갔다. 예초기의 진동이 근육을 피곤하게 했다. 수레를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뒤뚱뒤뚱 외발 수레를 밀고 가는 와중, "그려, 옛날엔 다 그렇게 키웠어~"라고 뒷집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셨다.


하루는 싹이난 감자를 줬다. 싹이 나서 버린다는 걸 얻어왔다. 돼지들은 감자를 맛있게 먹었다. 혹시 탈이 날까봐 두세 개씩만 주고 동태를 살폈다. 다음날 똥 상태도 문제 없었다. 감자 싹에는 솔라닌(solanine)이라는 독이 있다. 먹이의 범위는 넓고, 배탈이 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돼지는 침과 위액, 간과 신장의 기능을 진화시켜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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