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를 부탁해
야생 수퇘지는 무리 생활을 하지 않고 단독 생활을 한다. 암컷과 새끼 돼지들만 무리 생활을 한다. 이곳의 삼남매 돼지는 잠잘 때, 수영할 때를 빼곤 서로 살을 대지 않았다. 같이 살지만, 1돈 가구 생활. 배고픔과 '물욕(水)'이 해결된 뒤로, 곧 흘레를 시작했다. 돼지는 생후 5, 6개월부터 성적으로 활성화된다. 암퇘지는 발정기가 시작되며 생식기와 다른 샘을 통해 수퇘지를 끄는 암내를 풍긴다. 백일 돼지들이 이곳에 온 지 2개월이 흘렀다. 그러니까 한창 활발할 나이였다. 사춘기 아이를 둔 부모님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짝짓기는 서로를 향한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면서 시작되었다. 약간의 얼쩡거림과 집적거림의 시간. 잠시 후 수컷이 암컷의 등 위로 번쩍 올라탄다. 부끄러움은 내 몫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 보던 내가 되레 놀라기 일쑤다. 암퇘지와 수퇘지끼리가 보통의 관례였다. 하지만 가끔은 수컷과 수컷끼리도 교미를 했다. 어린 수퇘지끼리 올라타기도 한단다. 물론 거사가 성사되지는 않는다. 올라타기만 할 뿐이었다. 때론 앞, 뒤 거꾸로 올라타기도 한다. 발정기가 끝나니 암퇘지가 수퇘지를 더이상 받아주지 않았다. 수퇘지도 강요하지 않았다. 남겨진 수퇘지끼리의 교미가 빈번해졌다. 덕분에 갈 곳 잃은 수퇘지의 성기를 볼 수가 있었다. 수컷의 성기는 가는 꼬챙이처럼 생겼다. 20cm 길이에 새끼 손가락 굵기 정도,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뽑는 나선형이었다. 스크루처럼 뱅글뱅글 돌면서 나왔다. 암퇘지 자궁경관도 스크류 모양으로 생겼단다.
돼지에게 교미는 감정의 영역이 아닌 호르몬의 영역 같아 보인다. 홀레는 “꿀-, 꿀-, 꿀-” 스타카토의 짧고 조용한 소리를 내며 진행된다. 흥분의 음역대라기보단, 탐구의 음역. 복잡한 성기 모양 탓에 결합에 애를 먹는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위에 올라탄 돼지의 집중과 아래에 있는 돼지의 무심한 표정 속에 교미가 이루어진다. 마찰에 의한 인간의 사정과 다르게 돼지는 질 내에서 압박을 받으면 사정을 하게 된다.
목장에서 인공수정하는 모습을 여러차례 보았다. 동물 수정을 전문으로 하는 수정사가 출장을 온다. 수정사에 의한 인공수정은 산업스러운데 자연 교미는 어쩐지 신비하다. 오묘한 분위기 형성부터 교미 종료까지 다 하면 10분 정도. 속사정은 복잡하겠으나, 겉으로 보기엔 그저 올라타고만 있는 것 같다. 우와, 수퇘지 입에서 허연 거품도 나온다! “꿀- 꿀-.” 수퇘지는 평생 과업을 끝낸 듯 하얗게 타버린다. 거사 후, 다른 한켠으로 (몇걸음 못) 걸어가 뻗어버린다. 풀썩. 입에 묻은 거품을 뚫고 깊은 한숨이 나온다. 알고 보니, 그냥 거품이 아니라 암컷을 유혹하는 페로몬이 든 거품이라고 한다. 이 와중에 실속 있다. 아, 그런데 새끼가 태어나면 어쩌지.
돼지의 임신기간은 110일에서 124일 사이, 전통적으로는 3개월 3주 3일 후, 출산하는 것으로 예상한다. 축산업계에서는 같은 조에 속한 암퇘지의 출산과 발정을 같은 날로 조정한다. 정확한 관리를 위해 호르몬제가 쓰인다. 임신 중지(출산 유도제)와 임신 유지(발정) 호르몬제가 쓰인다. 같은 날 수정을 해야 작업 효율성이 좋고, 낳는 날도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출산 유도는 직원이 쉬는(없는) 날에 새끼를 낳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이틀 전에 주사한다. 인수공통 호르몬제이기 때문에 임신 중인 가족이 있는 직원은 만지지 못하도록 한다.
나는 돼지를 재-프로그래밍하고 조작할 기계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문화권에서는 그 구성원도 동일한 방식으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까지도 동일한 방식으로 바라보리라 생각한다. 우리 취향에 맞춰 조작하고 틀에 넣어 만들어 낼 수 있는 신神으로 말이다.
<돼지다운 돼지> 중, 조엘 샐러틴
목장에서 씨수소를 따로 키우면 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수소에게서 따로 정액을 채취해 캡슐을 만든다. 냉동 보관된 정액은 고유의 특성, 산유량, 건강, 크기 등에 맞춰 사용한다. 암소의 발정기에 맞춰 시술한다. 출산율은 축사 수익률에 연결된다. 발정기를 놓치면, 다음 발정기까지의 사료는 손실이 된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암퇘지는 도태된다. 제때 도태하지 않으면 농가가 도태될 수 있다.
암소의 젖이 우리가 마시는 우유다. 포유류는 젖을 먹여 새끼를 기른다. 새끼를 낳지 않고도 젖이 나오는 동물은 없다. 우유가 나오려면 젖소도 새끼를 낳아야 한다. 젖소는 우유를 위해 평생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다. 암송아지는 12개월령에 임신을 하게 되고, 10개월 후에 새끼를 낳는다. 이때부터 젖짜기가 시작된다(착유). 어미소의 젖 양은 점차 많아지다가 줄어든다. 송아지가 크는 속도에 맞게 상승, 하강한다. 새끼를 낳고 4개월 뒤에 다시 임신을 한다. 젖이 줄어들 때 다시 새끼가 태어나도록 시기를 맞춘다. 새끼를 낳자마자 나오는 젖이 초유다. 진하며 조금 붉다. 포유류의 젖은 어미의 혈액이라고도 할 수 있다. 피를 나눠주는 것이기 때문에 수유를 하는 동안 어미는 피로, 면역력 저하 등을 겪는다.
젖소는 출산 1개월 전부터 젖짜기를 쉰다(건유). 건유 기간 동안 뱃속의 새끼에게, 산우에게 영양을 비축한다. 새끼를 낳으면서 다시 착유로 복귀한다. 다시 임신 후, 9개월 착유 뒤 한달 건유를 하고 출산을 한다. 갓 태어난 송아지는 젖어 있다. 어미소는 새끼를 계속 핥는다. 만 번쯤 핥으면 털이 뽀송뽀송해진다. 다리가 아직 후들거리지만 송아지는 선다. 어미 젖에서 우유가 조금 새어 나오고, 송아지는 그 냄새를 따라간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다리는 따로 논다. 어미소는 새끼 옆에 가만히 선다. 수없이 넘어져가며 젖을 찾는다. 드디어 만난다. 송아지는 어미젖을 힘차게 빨아먹는다. 4개 젖꼭지는 서로 분리된 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송아지는 코로 눌러가면서 젖을 먹고, 4개 젖을 돌아가면서 먹는다.
목장에서의 송아지와 어미소는 곧 분리된다. 초유도 따로 받아서 젖병으로 먹어야 한다. 송아지 이빨에 어미소의 젖꼭지가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젖꼭지 건강은 목장의 중요한 재산이다. 새끼를 잃은 어미소는 며칠을 운다.
양돈 업계에서는 암퇘지가 1년에 2.5번 출산하는 것을 이상적 분만으로 본다. 한번에 십여마리의 새끼를 낳고, 1년에 25마리를 낳지 못하면 도태된다. 모돈으로 선택된 암퇘지는 8개월령이 되었을 때 첫 임신을 한다. 이때부터 약 7, 8번 출산을 거듭하다가 새끼 수가 떨어지면 도태된다. 모돈이 고기용 돼지보다는 조금 더 살지만, 평생 임신-분만을 반복한다. 반복해서 배란촉진을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한다. 살아남은 돼지의 슬픔이랄까. 수퇘지라고 더 나은 생을 보내지는 않는다. 태어난 지 일주일이 되기 전, 고환을 적출한다. 수컷 냄새(웅취)를 없애기 위해, 빠른 성장율을 위해서라고 한다. 마취 없는 외과수술의 고통에 새끼돼지는 하루 이틀 밥을 먹지 못한단다.
소 한 마리로부터 우유를 짜는 하루 평균 양은 약 30kg(연 평균 9382kg, 2019년 기준). 약 500kg 체중의 6% 정도를 매일 내보내는 것이다. 사실 송아지가 필요로 하는 양 이상으로 우유가 나온다. 원래 소의 젖은 훨씬 적었지만, 더 많은 젖이 나오는 개체가 선택되어 육종되었다. 또 다른 이유는 옥수수 사료를 먹는 덕분이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는 것이 자연의 법칙. 필요 이상으로 젖을 만드는 소들의 건강이 좋을 리 없다. 소의 자연 수명은 30여년이다. 예전에는 평균 7~8년을 살았지만, 최근에는 3~4년으로 줄었다. 학계에서는 과도한 착유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소와 돼지의 생을 보면 씁쓸한 생각이 든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집집마다 돼지 한두마리를 키웠다고 한다. 집에서 잡아먹는 자급의 용도는 아니고, 새끼를 내서 가계 경제에 보태는 부업이었다. 경제수단이었지만, 한 울타리 안에 살던 식구이던 시절이다. 그때는 동네에 씨돼지를 키우는 이도 있었다. 연락을 하면 그 집에서 수퇘지를 끌고 집으로 왔다고 한다. 밧줄로 매지도 않고 십리 길을 지팡이로 수퇘지를 몰고 오는 풍경을 상상해본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경운기를 타고 오고, 트럭을 타고 왔다. 이젠 정자만 온다. 인공수정이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니까. 사랑이라거나 숭고한 행위는 아니라 하더라도 동물에게서 홀레를 빼앗은 인간성을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