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화창

좋다.

by 유연구지

괜찮다.

빛을 머금은 단풍이 짙어 색을 토해내는 가을의 한가운데서

나는 불면의 이름으로 잠을 설치며 밤을 헤매고 다니고

속쌍꺼풀이 발광하듯 겉으로 도드라져 기어 나와

지난밤의 판타지를 고하려 하지만

괜찮다.


나이 들어 좋은 점은 여유다.

마음이 여유로워 진다는 것이다.

가진 것은 줄어드는데 줄어들어서 가볍고

오히려 그 빈자리가 여유가 되더라.


덜 먹어도 체중은 늘고

좀비모양 동네 산책길을 뺑뺑이 돌며 운동이랍시고 걸어도

심장은 버거우리만큼 방망이질당하는 이 혼란 속에서도

잊지 않고 여유로움이 자리를 깐다.


감사하다.

감귤빛 햇살이 고운 가을의 이름표를 달고 내 낡은 창문을 외면하지 않고 들러주어서 감사하다.

빈자리에서 빛나는 가을의 볕을 쬐며

구겨지고 낡은 육신의 위문을 마다하지 않은 자연의 따뜻한 우정이 감사하다.

대체로 화창한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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