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진담
'크리스마스 아침, 결국 산타는 오지 않았다.'
어느날 갑자기 이 문장이 떠올랐다.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되는 어떤 이야기를 막연히 그냥 쓰고 싶었는데,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아침에 아무런 선물도 받지 못한 아이가 이렇게 혼잣말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근데 이 아이는 왜 선물을 받지 못한걸까.' 이런저런 상상을 펼쳐봤지만 어쩐지 뻔하고 상투적인 이야기만 떠올라서 결국 어떤 다음 문장도 불러오지 못한채 첫문장만 덩그러니 남아버렸다.
생각해 보니 나와 동생은 꽤 오랫동안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받았다. 정확하진 않지만 초등학교 5~6학년 정도까진 선물을 받은 기억이 있는데, 물론 그걸 놓고간 게 산타가 아닌 부모님이란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생각보다 빨리.
여섯 아니면 일곱살 쯤? 유치원에 다닐 때였으니 아마 그정도 나이였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앞둔 어느 날, 엄마와 동네 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었다. 어떤 점포에서 한 아주머니가 장갑을 팔고 있었는데, 아무런 장식도 디자인도 없는 다소 촌스럽고 평범한 빨간색 털장갑이었다. 엄마가 그날 이 장갑이 어떻냐고 내게 물어봤던가... 사실 잘 기억은 안난다. 하지만 그 장갑 때문에 난 조금 빨리, 산타의 정체를 알게 됐다.
다음날 유치원에 갔더니 산타할아버지가 (실은 얼굴에 수염을 붙이고 산타 복장을 한 유치원 원장선생님이) 나타났다. 산타는 아이들을 한명씩 불러서 품에 안은 채 선물을 나눠줬는데 어느새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파란색 종이포장지에 담긴 작은 선물을 받았는데 다른 친구들처럼 큼지막한 선물은 아니라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포장지를 뜯어본 순간, 거기엔 며칠 전 시장에서 본 빨간색 털장갑이 들어있었다. 아마도 유치원에서 부모님한테 선물을 준비해서 보내라고 했던거였겠지.
그리하여 난데없이 알게 된 산타의 진실.
환상의 세계가 걷히고 현실의 세계가 열린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산타를 믿지않는 어린이'가 되었지만, 부모님 앞에서는 끝까지 산타를 믿는 척하며 오래오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아이들은 보통 언제쯤 산타의 존재를 알게될까?
어떤 부모는 아이들의 환상을
최대한 늦게까지 지켜주려고 애쓰는가 하면,
또 다른 쪽에선 일찌감치 비밀을 폭로해 버리기도 한다.
어느쪽이 좋다 나쁘다라고 할 수 없는 문제지만,
가능하다면 나는 어린이들에게 조금은 더 오래
그 환상의 세계의 문이 열려있었음 하는 쪽이다.
어차피 그 세계의 문은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닫힐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