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부터 <원티드 인살롱>의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는데요. 첫번째 아티클로 <조직에서의 상실과 애도>에 관한 내용을 나눴습니다. 많은 분들께 아직 낯선 주제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평소 많이 고민해온 주제라서 꼭 나누고 싶은 마음에 브런치에도 남겨봅니다.
상실과 애도라고 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아마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과의 영원한 이별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지 않을까 싶은데요. 사실 상실의 범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그 종류 역시 다양합니다. 이사로 인한 주거지 및 기존 대인관계의 변화, 헤어짐, 절교, 실직, 퇴직, 이혼, 질병, 재산상의 손실 등은 모두 주요한 상실에 해당합니다.
사람마다 살면서 경험하는 상실의 종류나 시기는 다를 수 있지만, 우리 삶에 있어서 상실은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와도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지가 우리가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칩니다.
'상실'과 '애도'는 하나의 세트와 같습니다. 상실을 겪은 개인은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 과정을 거칩니다. 이때 우리가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는 애도가 모든 사람에게 비슷한 형태와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성향이나 과거 경험에 따라 애도 방식은 사람마다 매우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상실에 관해 말하기보다는 혼자 깊이 간직하는 것을 더 편안하게 여길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가까운 사람들과 자신의 상실에 관해 나누면서 위로를 받고 싶어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말이나 글보다는 그림이나 다른 방식을 통해 표현하고 싶어할 수도 있겠죠.
애도 기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신의학 및 심리학계에서는 애도에 관한 연구를 통해 애도의 단계와 적절한 애도 기간에 관한 기준을 제시해왔습니다. 보통 6개월~1년 정도를 적절한 애도 기간으로 상정하고, 그 이상으로 애도가 길어지면 복합비애(Complicated Grief, CG)처럼 비정상적이고 병리적인 반응으로 간주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보다 최근에는 애도의 기간을 정해놓기보다는 애도를 '완결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move on)' 것이 아닌 삶에서 계속되는 여정, 과정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차츰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상실과 애도가 모든 사람의 삶에서 일어나는 경험인 데 반해, 조직에서는 아직까지 상실과 애도를 개인적인 영역의 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정신건강의 중요성에 관한 인식의 확산과 함께 국내에서는 조직 구성원의 심리적 안정과 생활 전반에 관한 지원을 위한 근로자지원서비스(Employee Assistance Program, EAP)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많이들 알고 계시고 활용하시기도 하는 사내외 심리상담 지원제도, 컨설팅, 코칭, 구성원들의 생활안정을 위한 재정, 법률상담, 의료서비스 등 근로자지원서비스는 생활의 전방위적 영역에서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도록 구성됩니다. 물론 조직 규모나 가용 예산에 따라 지원할 수 있는 서비스 범위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이런 노력을 통해 직무만족이나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를 최소화하고 안정적이고 건강한 생활환경 속에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된 취지입니다.
보다 최근에는 직접적으로 직무만족이나 생산성처럼 전통적으로 일과 연결된다고 생각되었던 영역만 아니라 구성원의 정서관리와 마음건강 같은 보다 근본적인 영역까지 도움을 제공하는 것으로 그 개념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회사 안에서의 역할이나 행복에 관한 것만 아니라 회사 밖에서의 행복, 전반적인 삶의 질이 궁극적으로는 성과와 생산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데 대한 이해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상실과 애도에 관한 조직 차원에서의 고민이나 접근은 찾아보기가 어려운데요. 예를 들어, 사별을 경험한 구성원에게는 일반적으로 5일간의 경조휴가와 함께 장례지원서비스가 제공됩니다. 심리상담 서비스가 제공되는 경우라면 애도를 위한 상담을 진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실과 애도 자체에 대한 조직 차원에서의 상시적 교육이나 심리적 접근은 아직까지 미비한 편입니다.
구성원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나 실무교육은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다양한 옵션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실과 애도에 관한 강의나 세미나 혹은 구성원들끼리 서로의 상실과 애도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장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비단 사별과 같은 무거운 주제가 아니더라도 생애주기에서 겪게 되는 이별이나 관계적 변화, 직무 이동이나 전직, 퇴직 시기를 앞두고 있는 구성원들을 위한 교육, 이들이 느끼는 정서적, 신체적, 물리적 변화 등을 나눌 소통과 교류, 교육 기회가 부족한 것입니다.
얼마 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같은 은행에서 근무하는 동료와 선후배 4명, 시청 직원 2명, 병원 직원 3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매일에 충실했을 희생자들의 삶을 안타까워하며 전국민이 추모하고 애도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사고를 보며 희생자들과 가장 가까이 지냈을 유족분들과 직장분들에 관한 생각이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매일 얼굴을 보며 함께 일했을 동료분들과, 비록 직접 알지는 못했을지라도 같은 조직으로서의 소속감과 슬픔을 공유할 많은 이들의 얼굴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리고 희생자들을 떠나보낸 조직에서는 이 분들을 어떻게 애도하고 기려야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직생활을 하며 우리는 수많은 상실과 애도를 경험합니다. 때로는 나 자신이 겪는 상실과 애도일 수도 있고, 가깝거나 먼 동료 누군가가 겪고 있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마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무언가를 상실하고, 애도하는 그 과정을 그저 마음으로 삼키며 애써 태연한 얼굴로 각자 할 일에만 몰두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상실과 애도는, 그저 각자가 해결해야할 개인적 영역의 일이라고 치부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상실과 애도는 개인만의 영역이 아닙니다. 조직에 속한 개인이 겪는 상실과 애도, 또 조직 전체로서 경험하는 상실과 애도 모두 궁극적으로는 조직에서 함께 공유되고 필요한 도움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문화와 제도가 자리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상실과 애도를 일상적이고 보다 가까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에 관련된 교육과 세미나, 구성원간 소통의 자리(온라인/오프라인 플랫폼) 등을 마련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또, 조직 차원의 추모나 상실에 대해서는 기념일이나 관련 행사 등을 통해 공식적인 기록과 기억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제안에 관해 혹자는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조직은 이익을 추구하는 곳이지, 구성원의 정신건강이나 케어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당장 산적한 이슈들을 해결하기에도 시간과 자원이 부족한데, 이런 것까지 챙겨야 하는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아직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혹은 시기상조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성원 각자가 경험하는 삶의 주기에 따른 다양한 상실과 그에 수반되는 몸과 마음, 환경의 변화가 궁극적으로 조직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실과 애도를 삶의 모든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개인과 조직은 여러 위기 상황에서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습니다. 개인과 조직 차원에서의 '위기관리 능력', '회복탄력성'이 모두 향상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죠.
조직 차원에서의 상실과 애도 다루기, 아직은 더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언젠가 조직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되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실행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봅니다.
*샌드버그셰릴, & 그랜트애덤. (2002). 옵션 B. 현대문학.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13795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