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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ping Hands Jan 24. 2022

영화 리뷰- 미싱 타는 여자들

권리를 위해 투쟁했던 이들의 이야기-상처받은 이들의 연대와 연결에 관해

며칠 전 개봉한 영화 ‘미싱 타는 여자들’의 시사회에 다녀왔다.


1970년대 평화시장을 중심으로 한 청계피복 노동조합 구성원들, 그중 특히 제2의 여성 전태일이라 할 수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과 그 후의 이야기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청계피복 노동조합원이었던 세 명의 다큐멘터리 주인공들이 그들의 젊음과 열정을 다 바쳐 지키고자 했던 노동교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었지만 그들이 남긴 발자취가 오늘의 노동현장이 만들어지기까지 존재했던 수많은 기초석 중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를 보며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세 주인공 중 한 분인 임미경 씨의 이야기였다. 당시 만16살로 소년원으로 보내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가기관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조작해 성인들이 가는 교도소로 보내져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살았던 그.


함께 농성에 참여했던 친구 중 하나가 주동자가 누구였냐고 다그치는 수사기관의 취조에 겁을 먹고 “미경이가 가자고 했어요.”라고 했다며 어느새 40여 년도 더 지난 과거 얘기지만 기억 속에선 마치 엊그제같이 생생할 그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놓았다.


그러면서 그 친구의 입장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고, 사실 자신이 가자고 한 것이니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라고, 그 친구가 지금까지도 미안해서 자신에게 연락을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럴 필요 없으니 꼭 그 친구를 다시 보고 싶다고.


충분히 원망이나 서운함, 미움 같은 감정들이 있을 수 있을 텐데 그는 친구를 이해했고, 미움이 아닌 그리움을 가슴에 안고 살아왔다.


그리고 영화 상영 후 이어진 감독 및 세 주인공과의 대화 시간에서 주인공분들은 이 영화를 통해 그 당시 함께 싸웠던 이들, 자신들이 잘 돌봐주지 못해 미안함을 느낀다는 그들과 다시 연결되고 만나게 되는 것이 현재로는 가장 큰 목표라고 했다.


이런 고백을 통해 문득 나의 지난 날이 떠올랐다. 어느새 5년이 다 되어가는 옛날 이야기지만, 2017년 봄 경험했던 내 사랑하는 공동체의 붕괴와 상실. 그 일을 겪으며 자의인 듯 타의인 듯 그곳을 떠났고, 그곳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이들과도 자연스레 단절되었다. 그들 중 누군가와는 반대편에 섰고, 아주 소수의 누군가와는 이따금 만나서 마음을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소심한 시도들을 한다고 했지만, 감히 투쟁이나 저항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투사로 싸우기보다는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하고 용기없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허무함과 무기력을 느끼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적극적으로 무엇을 하지는 못했을지라도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무거운 돌덩이가 내려앉은 듯 죄책감과 분노, 서글픔, 서운함, 원망 같은 것들이 복잡하게 뒤엉켜있었다.


그리고 그런 고뇌와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처방전으로, 참회록으로 글을 썼다. 내 안의 해소되지 않은 단단히 얹혀 도무지 내려가지 않을 체기 같은 그 무거운 돌덩이를 조금이나마 옮겨놓을 수 있을까, 아니 그건 모르겠지만 어딘가에, 누군가에게 이 마음과 생각을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강렬한 욕구에 의해. 그리고 세상을 향한 나의 작은 외침은 곧 책이 되어 새 생명을 얻을 예정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무엇을 이루고 싶었던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며 임미경 씨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본다.


나 역시 그를 비롯한 주인공들이 고백했던 것처럼, 이 책을 통해 공동체 붕괴와 상실의 현장에서 싸웠던 이들, 혹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더라도 많은 상처를 입은 이들과 다시 연결되고, 연대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상처 입은 사람들, 서로 돌봐주지 못했던 이들이 다시 연결되고 만날 수 있기를, 그래서 치유와 회복을 위해 서로에게 따뜻한 안전망과 사회적 지지를 제공할 수 있기를. 우리 안에 서로를 향한 미움과 원망, 서운함이 아닌 그리움과 이해, 용서와 화해가 더 크게 자리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기를.


p.s: 이 영화를 보며, 운동권 활동을 했던 이들, 그 중에서도 특히 그로 인해 일상과 인생이 파괴된 이들과 남겨진 이들의 부채감을 그려낸 공지영 작가의 ‘고등어’가 함께 떠올랐다.


그리고, 부당함을 이야기하고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웠던 청계피복 노동조합원들에게 ‘공산주의자, 빨갱이’라는 프레임과 누명을 씌워 탄압했던 국가의 폭력을 보며 우리 사회에서 ‘반공’이라는 절대 규율이 사회 내의 다양한 문제와 갈등을 덮기 위하 어떻게 활용되어왔는지, 분단 트라우마가 사회 전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쳐왔는지 확인한 것 같아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는 언제쯤 이런 이분법적 사고의 한계로부터 탈피할 수 있을까. 다양한 생각과 견해, 활동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 그에 대한 존중과 안전성이 확보되는 사회가 될 때 우리는 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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