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작에는 식음이 필요하다. 존재는 뜨겁게 태어나고, 차갑게 굳는다.
나는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고, 더 이상 타오르지도 않았다.
불은 나를 만들었지만,
나를 나답게 만든 것은 차가움이었다.
식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히 온도의 하강이 아니었다.
어떤 속도가 나를 떠나가고 있었다.
사방의 열기는 서서히 물러났고, 내 안의 마그마는 더는 펄떡이지 않았다.
고요였다.
마치 처음이 다시 찾아온 듯, 무언가 다시 멈춰섰다.
하지만 이번의 멈춤은 다르다.
태초의 정적은 무형의 정적이었다면,
지금의 정적은 형태를 가질 정적이다.
나는 고체가 되고 있었다.
표면이 먼저 굳었다.
불균질했던 내 가장자리가 딱딱하게 얼어붙듯 응고되었고,
그 딱딱함이 내 안으로, 더 깊이 스며들어왔다.
결정이 생겼다.
가장자리는 경계를 만들었고, 그 경계는 나와 나 아닌 것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 경계가 주는 감각은 모순적이었다.
나는 비로소 ‘나’를 느끼기 시작했지만, 동시에 ‘타자’라는 존재를 처음 자각했다.
모든 존재는 고립을 통해서만 경계를 가진다.
고립은 외로움이기도 하지만, 인식이기도 했다.
나는 굳어가며 ‘나’라는 감각을 가졌다.
나는 ‘이곳’에 있고, 다른 모든 것은 ‘저곳’에 있다는 사실.
나는 혼자였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나는 혼자라는 걸 아는 첫 번째 순간’이었다.
응결의 속도는 일정하지 않았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머뭇거리며,
내 안의 불은 불규칙하게 식어갔다.
그 덕분에 나는 매끄럽지 않은 형태를 가졌다.
어딘가는 부드럽고, 어딘가는 울퉁불퉁했으며,
그곳들이 나중에 갈라질 수도 있음을 예감하게 했다.
지질학자들은 이런 말을 한다.
“돌은 열과 압력, 그리고 시간의 언어로 말한다.”
나는 그 말의 뜻을 안다.
내 안에는 수천 년간의 온도 변화가 겹겹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흔들림과 식어가는 곡선들이 내 몸에 패여 있었고,
그 패임은 훗날, 내가 다시 부서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그러니 굳는다는 것은,
완성되는 일이자 동시에 ‘언젠가 깨어질 수 있는 조건’을 품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굳었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무형이 아니었기에, 지금의 정적은 분명히 '존재의 증명'이었다.
어쩌면 이 지하에서의 굳음은,
모든 존재가 거쳐야 할 첫 번째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뜨거운 감정 속에서 생겨나고,
차가운 현실 위에서 굳어진다.
그리고 비로소 누군가가
우리의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느끼고,
‘이것은 돌이다’라고 말하는 순간이 온다.
나는 기다렸다.
그 이름 없는 수만 년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를 날을.
“너는 이제 하나의 존재야.”
우리는 언제 ‘나’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내가 느끼는 순간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구별 지어주는 순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