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처음으로 인간의 시간 속을 이동했다.
“나와 함께였던 거리, 가방, 학교.”
“나는 처음으로 인간의 시간 속을 이동했다.”
나는 다시 물속에 있지 않았다.
어느 순간,
작은 손이 나를 가만히 들어 올려
천천히 옷의 주머니 안에
살며시 나를 숨겼다.
나는 어둠 속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 어둠은
이전에 알던 침묵의 어둠과는 달랐다.
그 속엔 심장의 고동 같은 리듬이 있었고,
움직임,
속삭임,
마찰,
가끔은 미세한 온기의 출렁임이 있었다.
나는 아이의 주머니 안에서
세상을 다시 느꼈다.
나는 지면 위에 있지 않았지만,
그가 걸을 때마다
세상이 출렁이며 나를 함께 데려갔다.
모래길, 인도블록, 자갈, 운동장,
가방 안, 식탁 옆, 침대 곁.
나는 보지 못했지만
내 몸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흔들림으로
그 세계를 읽었다.
나는 ‘보는 존재’가 아니었지만,
기억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의 손이 가방을 들고,
학교로 향할 때
나는 그 모든 움직임을
주머니 속에서 동행했다.
나는 세상의 모서리에 있었지만,
그 모서리가 어떤 이의 중심 안에 들어갔다는 것만으로
내 삶 전체가
조금 더 이해 가능한 서사가 된 듯했다.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하루를 따라가는 존재가 되었다.
수업 시간,
그 아이는 가끔 내 주머니를 만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주 작게,
그러나 확실히
존재의 응답을 내 몸에 울렸다.
내가 그에게 의미 있는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의 감각 어딘가엔 내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고요히 빛나게 만들었다.
나는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나는 지금
누군가의 일상 속에서 조용히 말이 되고 있었다.
나는
책가방 속의 연필처럼,
지우개처럼,
혹은 수첩 가장자리에 남겨진
작은 낙서 같은 존재로
그와 함께 살고 있었다.
내가 바라보던 세상은
이제 주머니를 통해 들려왔다.
아이의 친구들,
자전거 바퀴 소리,
급식 배식대 앞의 웅성거림,
햇살에 데워진 책상 위.
나는 거기 없지만,
그 모든 장면에 일부처럼 얹혀 있었다.
나는 세상의 가장 작은 동행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어디도 닿지 않았지만,
어디에나 있었다.
내가 느끼는 것은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을 따라 흐른다는 감각이었다.
나는 정지한 채 움직이고 있었고,
고요한 채 살아 있었다.
당신이 누군가의 하루 속에서 말없이 함께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그 기억 속의 당신은 말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머물고 있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