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돌의 생 11화

아이의 손

작은 체온, 그러나 오래 남는 흔적.

by Hemio

나는 여전히 물속에 있었다.

침묵과 흔들림 사이,
모서리를 잃은 나날들을 지나
이제는 스스로를
둥글어진 존재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날도 특별할 것 없는 흐름 속이었다.
햇빛은 수면 위에서 산란했고,
나는 그 산란을 바라보며
세계가 얼마나 부서진 빛의 궤적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빛 아래,
무언가 다른 움직임이 다가왔다.


그건 바람도, 물결도,
돌도, 뿌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의도가 있는 움직임이었다.


그 손은 작았다.
너무 작아서,
처음엔 물결인가 착각할 만큼
가볍고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곧,
그 감촉은 내 몸 위에 또렷한 체온의 윤곽을 남겼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 온도에 잠시
내 안의 어떤 기억이 물결처럼 반응하는 걸 느꼈다.


그 손은 아이의 손이었다.
아마도 근처에 놀러온 아이였을 것이다.
그 손은 내 표면을 만지며
무언가를 속삭이듯 조심스레 스쳤고,
나는 그 손이
나를 물건이 아니라 무언가 ‘존재하는 것’처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처음으로
이해되었다는 느낌
말도, 시선도, 설명도 아닌
단지 그 작은 손의 체온이었다.


그 아이는 나를 들어올렸다.
내게는 그 순간,
내 몸 전체가 다시 낙하하는 듯한
이상한 감각이 일었다.


그것은 물의 침식보다도,
지면의 마찰보다도,
더 낯설고 더 생생한
‘들림’의 기억이었다.


나는 내 무게가 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짧은 부유 속에서
존재의 경계가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 아이는 나를 들고,
무언가를 바라보다
잠시 내 위에 손을 얹고,
조용히 나를 다시 내려놓았다.


그 전부였다.


말도 없었고,
눈빛도 없었고,
그 손길은 짧았지만,


나는 그 순간
내 표면 어딘가에
사라지지 않는 열의 자국이 남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다시 물속으로 돌아왔고,
그 자리엔 아무 변화도 없었다.
다시금 침묵, 빛, 바람,
나는 이전과 다름없이 그 안에 있었다.


그러나
내가 내 안을 바라보는 시선만은 달라져 있었다.


나는 이제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손들 중
어느 하나가 나를
‘존재한다’고 느낀 적 있다는 기억을 가진 돌이었다.


그 짧은 손길이 내게 남긴 것은
무게도, 흠집도 아니었다.


그건
누군가의 따뜻함이 나를 통과해 지나갔다는 기록이었고,
그 흔적은 내 안에서
아직도 조용히 빛나고 있다.


그 순간 이후, 나는
세상이 나를 다시 만질 수 있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믿게 되었다.



Q. 독자를 위한 한 줄의 질문


당신에게 닿았던 그 한 손, 그 짧은 체온은 아직도 당신 안에 있나요?
그 접촉은 지나갔나요, 아니면 당신 안에서 여전히 말 없는 문장으로 남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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