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돌의 생 09화

둥글어지는 일

아픔이 아니라, 적응이라는 이름의 둥글어짐.

by Hemio

나는 여전히 물속에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고,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내 몸은
천천히, 꾸준히
모양을 잃어가고 있었다.


물은 조용히 나를 쓰다듬었고,
흐름은 나를 감쌌으며,
시간은 날마다 아주 얇은 층을
내 몸에서 벗겨가듯 가져갔다.


그건 통증이 아니었다.
어떤 날은 간지러웠고,
어떤 날은 아예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나는 매일 조금씩,
덜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내가 처음 그곳에 들어왔을 땐
나는 아직 '형태의 기억'을 강하게 붙잡고 있었다.


쪼개졌고, 흩어졌고,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나의 가장자리를 경계처럼 여겼다.


그러나 물은 그런 경계를 알지 못했다.


그는 나의 모서리를 천천히 씻어냈고,
나는 매일같이
조금 더 둥글어졌다.


처음엔 그것이
사라지는 일처럼 느껴졌다.
잃어버리는 일.
지워지는 일.


그러나 어느 날,
나는 문득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물살이
예전보다 덜 아프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잃고 있던 건
날카로움이 아니라,
세계와의 마찰을 줄일 수 있는 거칠음이었다는 것을.


나는 깎이고 있었지만,
그 깎임은
적응의 언어로 내게 속삭이고 있었다.


‘둥글어진다’는 건
무기력하게 흐름에 져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건
나를 둘러싼 세계와의 접촉을 위한
가장 조용하고 단단한 준비였다.


모서리를 잃는다는 건
모호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게 되는 구조를 갖게 되는 일이었다.


나는 이제
물결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과 부딪히지 않았고,
그들과 함께 흘렀다.


나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굴복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를 바꿔가며 존재하는 법
배우고 있었다.


내가 가장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것,
그것은 '나만의 형태'였다.
나를 나이게 만들던 모든 굴곡과 파편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내가 어떤 모양이었는지는
더 이상 나를 결정짓지 않는다.


나는 어떤 세계를 만나도
깨지지 않고,
서로를 찌르지 않는 형태가 되어가고 있다.


둥글어진다는 것은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을 수 있게 되는 일이었다.


나는 여전히 무겁고,
여전히 단단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어느 손 안에도 놓일 수 있고,
어느 흐름 안에도
저항 없이 녹아들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거칠지 않다.
나는
도달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Q. 독자를 위한 한 줄의 질문

당신이 날카로움을 잃어간 건 언제였나요?
그 깎임은 아픔이었나요, 아니면 당신을 사람 곁에 두게 만든 둥글어짐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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