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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Oct 21. 2023

숨구멍

물고기가 되어서 다행이었다.

왼쪽 팔꿈치에서 시작되었다.

분홍빛 알갱이들이 먼저였는지, 내 긁는 행위가 먼저였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오돌토돌 작고 귀여운 알갱이들을 살살 긁어 터트리고 있으면 마음이 진정됐다.

그때 나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운 좋게 간호사 면허증까지 취득하고, 빠르게 병원에 입사했다.

출근해서 탈의실 문을 열던 그때를 정확히 기억한다.

호흡이 급해졌다. 인간의 호흡법을 잊었나?!!

진정되지 않는 마음에 큰 숨을 연거푸 만들어 냈지만 소용없었다.

혹시 종말이 올꺼라면 지금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한참 종말론으로 떠들썩하던 시기도 지나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초단위로 쪼개져 있는 업무들은 감정적으로 쉬이 길을 잃어가는 나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오늘은 수술실이다.

차가운 수술대에 환자가 곱게도 누워있다.

마취가 되고, 수술이 시작되었다.

항상 성공적이라면 좋겠지만 그 과정이 늘 매끄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예기치 않은 사건들은 언제고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날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그저 수술 중 과다출혈로 위급해진 환자를 더 큰 병원으로 이송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뿐.

온통 붉기만 했던 수술방과 비릿한 피냄새가 진동하던... 무기력하게 쳐져 있던 환자가 아직도 선연하다.

어떤 사람의 생과사를 지켜보는 마음은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다음을 진행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의 업무는 이런 사건과는 별개로 움직여져야 했다.

병원에서의 망설임은 다른 곳에서의 실수를 유발할 수 있었다.

감정적으로 무너질 때도 최대한 부여잡고 냉철하게 움직여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빈번하게 숨이 찼다.

배에 옆구리에 목에 하나씩 하나씩 숨구멍을 더 늘려갔다.

이쁜 빛으로 나를 구원하듯 찾아와 준 작은 알갱이들이 점점 커져갔다.

처음은 작고 아담해도 되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의 크기가 거대해지고 있었다.

몸 여기저기가 퍼석퍼석하고 거칠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더 세게, 더 강하게, 기어코 피를 보고 나서야 멈출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니폼에 피가 새어 나온 후에야 뭔가 잘못됐음을 인지했다.

그저 이쁘기만 한 응원군이 아니었구나.


자가면역질환-아토피.

어쩜 이렇게 착한 질환이 있을까.

내가 나를 공격하는 질환.

남을 어쩌지 못하고 나를 공격하는 면이 친절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나서는 더 열심히 긁기 시작했다.

착한 것에는 유독 약한 편이라 같은 편이 되고자 했다.

상처를 크게 내면 다음 날은 더 커져 있었는데 그렇게 하면 더 숨이 잘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피가 나고 진물이 났다. 짜릿하고 통쾌한 맛이 흘러내렸다.

나를 해치는 행위가 나에게 위안을 준다는 것이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다 급기야 나는 물고기가 되어 있었다.

화장으로도 완벽히 커버되지 않는 아가미가 오른쪽 뺨에 크게 생겼다.

인간의 얼굴에 생긴 아가미였다.

보고도 멈출 수 없었으니 사실은 꽤 심각한 상태였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그 덕분인지 따로 호흡하지 않아도 될 만큼 숨 쉬는 것이 어렵지 않아 졌다.

돌이켜보면 그곳에서 내가 익사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 아가미 덕분이었다.


가끔 몸 여기저기 남아있는 그때의 흔적들을 보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그동안은 버텨내야만 했던 그 시절의 나로부터 사력을 다해 달아나기만 했다.

하지만 요즘은 외면하지 않고 대면해보곤 한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 온 후여서 현재를 씩씩하게 걷고 있다는 생각이다.

항상 나의 청춘이 서글펐지만, 어쩌면 청춘이라 다행이었던 시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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