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직업, 외식업에 종사하다.

갑과 을의 전쟁

by 퍼플슈룹

30대 시절 절반을 외식업체에서 근무했다. 지금은 없어진 프레스코에서 1년, 현재도 성업 중인 000 피자에서 4년. 힘들지 않은 직업이 없다지만 사람을 대하는 일, 감정 노동직은 극한직업이다. 나도 이 극한 직업에 5년 동안 몸담으면서 별난 일들을 경험했다. 이 중 프레스코에서 있었던 멋진 일을 풀어보려 한다.






그날이 정확하게 어떤 날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연휴였던 것은 확실하다. 매장 오픈 1시간 전부터 사람들은 줄을 섰다. 그 사람들을 보면서 난 속으로 말했다. '아니 왜 기다리면서 먹는 거야. 좋은 곳도 많은데. 제발 다른 곳으로 가버려랏!' 웨이팅이 '1시간'이라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손님 입장으로 보면 이해도 됐다. 프레스코는 서울 주요 지점에 위치했고, 가격 저렴하고, 맛 좋고, 분위기 괜찮고, 젊은 사람들이 다니기에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러나 종사자 입장에서 힘든 건 힘든 거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영업시간을 맞이했다. 사람들이 물밀듯 들어와서 테이블에 앉았다. 꽤 넓은 매장임에도 기다리던 사람들이 모두 앉지 못했고, 대기하는 줄은 더 길어졌다. 난 홀 담당이었다. 주문받고, 테이블에 음식을 전달하며 정신없이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야! 여기 점장 나오라 해!" 놀라서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봤다. 점장이 손님과 대치 중이었다.


"손님, 무슨 일이신가요?"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고 하는데, 왜 아무도 대응을 안 해 주는 거야?" 음식에 있는 머리카락을 직접 확인했지만, 직원들 머리카락이 아니었다. 내가 봤을 때 손님 머리카락 색과 같았다.

"손님, 저희 직원 중에 노란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건 저희 직원 것이 아니지만,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왔기 때문에 저희가 새로 음식을 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머리카락이 버젓이 나왔는데,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야? 지금 장난해?"

"그런 의미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방에서 위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내가 우기고 있다는 거네. 야! 점장 나오라 해!"

"손님, 제가 점장이니 저에게 얘기하시지요"







한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은 언제나 을이고, 손님은 갑이다. 갑이 말하면 무조건 들어줘야 하고, 을이 부당함을 말하면 언제나 불리하다. 더군다나 목소리 크면 무조건 이기는 문화.


내 눈앞에서 갑이라는 작자가 말도 안 되게 계속 우기고 있다. 손님들이 많고, 매장 분위기가 험악해질 무렵 손님이 말했다. "너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너 당장 나와! 내 말을 무시해?" 이 말을 들은 점장님은 차분하게 겉에 걸치고 있던 옷을 벗고 이렇게 말했다. "네가 먼저 나오라고 했다. 나 이 옷 벗고 나가면 사표 쓰고 나가는 거니까 각오해!" 점장은 평상시 말 없고, 소극적이고 조용한 편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은 다반사였기 때문에 그동안 무사히 잘 처리했었는데, 오늘의 대응 방식에 직원들 모두 놀랐고,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오늘부로 그만둔다. 미안하다"라는 말만 남긴 채, 그 갑과 밖으로 나갔다.


퇴직을 불사하고 갑과 싸우러 나간 을의 용기에 난 큰 박수를 쳤다. 평상시 난, 갑의 횡포에 을은 무조건 당해야 한다는 점에 반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세상이 바뀌어서 감정노동자들에게 함부로 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문구, 멘트 등이 계속 노출되고 있다. 너무나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무차별한 갑의 횡포에 시달리는 감정노동자들이 많다. 물론 무례한 을이 있어서 화가 날 때도 있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훨씬 더 안전하고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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