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버린 커피, 아직 오지 않은 아침
오늘 아침,
커피잔을 쥔 채 나는 다음 주를 살고 있었다.
김이 피어오르는 잔을 들고 창가에 앉았지만,
내 안의 일부는 이미 며칠 후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아직 열리지 않은 문 앞에 서서 말을 골랐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표정들을 미리 읽으려 애썼다.
다가오지 않은 무게를 혼자 먼저 짊어지고.
그러는 사이 커피는 식었고,
아침 빛은 창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어디에도 없었다.
이런 일이 낯설지 않다.
나는 자주 지금 이 자리를 비워둔다.
세네카는 죽어가는 친구에게 썼다.
“삶이 짧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너무 많이 흘려보낸다.”
그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을 향해 지금을 내던지는 행위를 지적했다.
우리가 잃는 시간의 대부분이,
존재하지도 않는 시간을 손에 쥐려는 오래된 버릇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기묘한 습성이다.
지금 손에 있는 것을 내려놓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을 잡으려 한다.
미래를 걱정하는 이는 책임감 있다고 여기고,
미래를 꿈꾸는 이는 희망적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 걱정과 꿈이 지금 이 자리를 지워버릴 때,
그것은 미덕이 아니다.
현재를 담보로 삼아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먼저 살아버리는 일이다.
불안으로 미래를 사는 것과 기대로 미래를 사는 것.
서로 반대처럼 보이지만, 같은 몸짓이다.
불안은 어둠을 앞당기고,
기대는 빛을 앞당긴다.
그러면 현재는 무언가가 도착하기 전의 대기실로 전락한다.
나는 그 대기실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결과를 기다리며 결과 이후의 삶을 먼저 살았고,
이별 이후의 고독을 미리 앓았다.
꿈이 이루어지면 비로소 온전해질 거라 믿으며
지금의 매일을 유예했다.
현재는 늘 미래의 발판이었고,
행복은 지평선처럼 다가가도 물러섰다.
파스칼은 말했다.
“인간은 현재 속에 사는 법이 없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거나 미래를 향해 몸을 기울인다.”
인간은 현재에 머무는 데 서툴다.
지금 이 순간은 너무 조용하고 완전해서,
우리는 자꾸 그것을 떠나 어딘가로 향한다.
가을날 낙엽이 지는 것을 보며 생각한다.
저 잎은 떨어지는 동안 다음 봄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 순간만큼은 낙엽이 부러웠다.
완전히 현재에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우리는 의식을 가진 덕분에 시간을 가로지를 수 있지만,
바로 그 능력 때문에 지금 이 자리를 가장 쉽게 잃어버린다.
하이데거는 이것을 존재의 문제로 보았다.
미래를 막연한 불안이나 기대로만 대할 때,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진다.
그것이 비본래적 삶이다.
알람이 울리는 순간부터 오늘보다 이번 주가 먼저 떠오르고,
잠들기 전에 내일의 걱정들을 미리 줄 세운다.
그 사이 오늘은 살아지지 않은 채 지나간다.
그렇다고 미래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매일 아침 그날의 어려움을 먼저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현재를 더 또렷하게 살게 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 작지만 결정적인 구분이 있다.
미래에 대한 생각이 지금 이 순간을 더 선명하게 만들 때,
그것은 지혜다.
그러나 그 생각이 지금을 희미하게 만들 때,
그것은 낭비다.
문제는 미래를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그 생각이 현재와 어떤 관계에 있느냐이다.
무상(無常)이라는 말을 체념으로만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무상하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 이 빛은 오늘의 이 각도로 다시 들어오지 않는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은,
지금의 이 표정으로 다시 이 자리에 있지 않는다.
그것을 놓친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이 아니다.
두 번 다시없을 구체적이고 유일한 순간을,
아직 오지도 않은 다른 순간을 위해 소비해 버리는 일이다.
나는 얼마나 자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낭비하는가.
매우 자주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끝난 후를 먼저 생각하는 내가 있다.
누군가의 말을 들으며 다음 말을 고르느라
목소리의 결을 놓치는 내가 있다.
아름다운 것 앞에서 그것을 어떻게 간직할 지를 먼저 생각하다가
온전히 보지 못하는 내가 있다.
자책으로 끝내는 것도 또 하나의 낭비다.
필요한 것은 조용히 알아차리는 것.
내가 지금 어디에 가 있는지를 판단 없이 그냥 알아차리고,
여기로 돌아오는 것.
돌아오는 일은 소박하다.
지금 발이 닿은 바닥을 느끼는 것.
숨이 들고 나는 것을 따라가는 것.
창밖에 있는 것을 처음 보듯 바라보는 것.
반복만이 필요하다.
어제 잘 돌아왔다고 오늘 저절로 여기 있게 되지는 않는다.
시간은 오직 지금만 존재한다.
과거는 기억으로,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있다.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이 순간뿐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자꾸 잊고,
잊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돌아오는 것.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이 반복 속에 있다.
완전히 깨어 있는 삶은 없지만,
조금 더 자주 지금 여기에 있으려는 노력이 쌓여 삶이 된다.
오늘 아침,
커피잔을 쥔 채 다음 주를 살았다.
그러다 잔이 식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차가운 도자기의 감촉이 나를 다시 이 아침으로 데려왔다.
늦었지만,
그래도 돌아왔다.
지금 이 순간도 머지않아 과거가 된다.
그것이 과거가 되기 전에,
나는 여기 있는가.
이 질문을 오늘 하루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건넬 수 있느냐가,
결국 내가 얼마나 내 삶을 살았느냐와 같은 말일 것이다.
식어버린 커피도 마셔야 커피다.
흘려보낸 아침도 살아야 아침이다.
Hen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