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좋은 유준은 오며 가며 자주 눈에 띄었다. 그는 때때로 내게 말을 걸었다. “누나, 된장이 없댔나요? 이모한테 알아볼께요.” 혹은 자판기 앞에선 자주, “누나, 커피 한 잔?”이러거나, 방과 후 마주치면 “술 한 잔 할래요?”를 거듭했다.
그는 내 앞에선 귀여운 척했지만 학교 밖에서는 이 좁은 도시 바닥을 휘젓고 다니며 아주 무협지를 쓰다시피 하고 있었다. 당구 치러 갔다가 괜스레 집적대는 치들과 맞붙는가 하면 동성연애자의 표적이 될 때도 있었다. 급기야 그는 차례차례 그들을 굴복시켜 이 도시의 불한당 떨거지 모두를 꿇어앉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프랑스어조차 아직 시원찮은 유준 앞에(그래서 유준은 영어를 많이 썼다)프랑스 건달들이 꿇어앉아 양주잔을 바치며 형님 대접을 했다고 한다. 더불어 그는 모국에서의 혁혁한 무협지도 자주 들려주었다. 그의 삶은 통째로 나의 상상 바깥에 있었다.
그러나 지존인 그에게도 천적이 있었으니, 그는 앙골라에서 온 제코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앙골라라고 하면 영화 <호텔 르완다>로 기억되는 열악한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이런 나라 이미지와는 딴판으로 제코는 우리들 중 단연코 베스트 드레서였다. 컬러풀하고 스포티한 세미힙합 스타일은 그의 피부색하고 잘 맞아 떨어졌다. 유준은 제코가, 유준이 아는 비싼 브랜드의 모자를 색깔별로 다 가지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가 꽤 부유한 아이일 거라 짐작하였다. 제코는 사람들 속에서도 마치 혼자 떠다니는 섬처럼 굴었다. 늘 헤드폰을 꽂고 아무 데나 그럴듯하게 걸터앉아 베세렐(동사 변화책)을 보거나 했다. 그는 열심히 공부했고 조용하고 쿨했다.
누구에게도 영향받지 않을 듯한 이 소년의 눈빛과 태도는 낱낱이 유준을 거슬리게 했다. 유준은 제코의 모든 태도가 자기에게 도발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툭하면 “그 XX, 한 번 콱 밟아주고 싶어.”라고 뇌까리곤 했다. 그런데 우리들 눈에 정작 제코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나는 유준과 제코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가 그들에게만 감지되는 무엇이든가 이도 아니라면 유준의 반감은 자기도 모르게 품고 있는 제코에 대한‘관심’의 다른 표현일 거라 여겼다.
그런가 하면 성진 씨는 귀국하기 전 몸에 있는 대로 탈이 나 있었다. 하기는 그의 방처럼 침침한 데 살면서 몸이 멀쩡하다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었다. 급기야 크리스마스 파티 땐 그의 담임 마리 폴린느가 우리 한국인들 무리에 다가와, 그가 결석 중이며 안 그래도 깡마른 사람이 요새 부쩍 아픈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이맘때 배앓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종종 우리 방에 놀러와, 아파도 동지 팥죽은 먹어야겠다며 팥을 저어댔다. 가뜩 힘이 없어 보였다.
마침 나는 여행을 떠나오기 전 아는 한의사 분에게서 받은 꽤 잘 듣는 환약이 있어서 측은지심에 이걸 일부 주기도 했는데 성진은 그 약이 무척 잘 들었다며 좀 더 달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주고 싶지 않아졌다. 이미 내가 가진 것도 소량이었던 데다가 앞으로 두 학기는 더 머물러야 했고 포를 떠나 귀국하기 전에도 여행 계획들이 잡혀 있어 이 비상약은 언제 요긴해질지 몰랐다. 돌아갈 날이 코앞임에도 내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필요한 것만 달라고 하니 문득 그에게서 정나미가 떨어졌다. 그러나 사실은 그가 정말 내 마음에 들었다면 이 토끼 간 같은 약을 빼서 주었을 것이다. 프랑스적인 세련된 토론을 한답시고 자기주장을 집요하게 관철시키는 스타일에 물려, 그를 언젠가부터 버거워하던 참이었다. 종국에 나는 껄끄러운 마음을 카펫처럼 깔고 겉으로만 상냥하게 웃으며 그를 전송하기에 이른다.
그즈음 우리 기숙사에는 에리나가 이사를 왔다. 실은 그녀의 이사는 우리가 부추긴 것이다. 그녀는 이참에 더욱 가까운 이웃이 되어 이런저런 요리들을 나눠 먹으며 지냈다. 그녀는, 자연을 모티브로 고작 단풍잎 몇 개와 갈대 몇 가닥으로 연출된 한 내 방의 엉성하디 엉성한 인테리어를 좋아했고 나는 나대로 나무랄 데 없는 그녀 방에 탄복했다. 그녀는 인터폰에도 나풀거리는 리본을 묶어 장식했다. 건축과 미술 일을 해서인지 감각이 돋보였다.
에리나는 같은 반의, 남아공에서 온 비키와 친했다. 비키는 프랑스인 남자 친구의 집에 살고 있었는데 한 번은 주변의 친구들을 초대했다. 그 집은 꽤 모던하고 럭셔리했다. 장식이 심플한 대신 집기 하나하나는 모두 첨단미가 흘렀다. 인테리어는 회색과 은색, 검정과 갈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 집이 위치한 동네도 이 도시에서 가장 부유한 구역이라고 들었다.
제코, 누비아, 필립, 에리나 등 평소에도 늘 어울려 다니던 우리들은 거실과 정원을 오가며 수아레soirée(저녁 마실 파티)를 만끽했다. 레이디 가가의 노래를 춤추며 따라 부르는가 하면, 비키는 뉴질랜드 원주민 춤을 재현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음악이 바뀌었다. 누비아는 신이 나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아, 레게똥이다.” 그녀는 필립을 붙들고 리듬을 타며 스텝을 밟았다. 누비아와 필립이 춤추는 모습은 마치 조카와 삼촌 같았다. 누비아는 에콰도르에서 온 필립을 스페인식으로 필리페라고 불렀다. 뇌의학을 전공한 필립은 학기 시작 후 좀 늦게 도착했는데 눈썹과 머리숱은 검고 진한 데다 축축한 눈을 가진 연애지상주의자였다. 여자들이 쉬 반할만했다. 해가 한참 좋을 무렵의 교정에서 그가 벤치에 비스듬히 누워 스케치하는 모습은 어느새 우리들 사이에 낯익은 풍경이 되어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는 비키와 에리나가 걱정스레 토의를 하고 있었다. 주제는 에리나의 거취문제였다. 비키는 이 넓디넓은 집에 에리나가 들어와 같이 살기 원했는데 에리나는 썩 내키지 않아 하며 자신이 주저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포도주가 넘쳐나는 밤이었다. 요깃거리로는 파스타가 제공되었다. 비키가 면을 삶는 중에도 나는 이 집의 세련된 주방과 기구들에 감탄하고 있었다. 비키는 이따금 냄비 뚜껑을 열어 파스타의 익은 정도를 살폈는데 그 파스타 면발의 생김은 끝이 너덜너덜한 종처럼 생겨 맘에 쏙 들었다. 보들보들한 게 식감도 그만이었다. 이 파스타는 끝이 레이스같이 얇고 나풀나풀해서 쉽게 익고 소스가 고루 밴다. 하지만 첨단의 집 분위기에는 어딘가 회사 건물에 온 것 같이 차갑고 건조한 구석이 있어, 이 공기 때문에 나는 비키에게 왠지 모를 연민을 느꼈다.
우리는 파스타를 나눠 먹으며 시종 유쾌했다. 나이가 서른 넘은 비키는 누비아에게 엄마놀이를 했다. 베네수엘라 소녀들은 고교 시절에 아이 엄마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비키는 한 손에 국자를 들고는 “오 마 피으!"Oh ma fille!(오 내 딸아)라고 부르짖었다. 그녀는 누비아에게 절대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못박았다. 나는 파스타를 먹으며 제코와 거의 처음으로 길게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의 주된 고민은 불어가 생각만큼 금방 늘지 않는다는 거였다. 르완다는 포르투갈어를 쓰고 이 언어는 프랑스어와 언어학적으로 꽤 가까움에도, 어쨌든 외국어는 외국어였던 모양이다.
저녁이 깊어갈 즈음 비키 남친이 들어왔다. 이후 기류가 좀 이상해졌다. 비키 남친은 매끈하고 튼튼해보였다. 도회적 남성성을 내뿜고 있었는데 이는 까탈스러울만치 깨끗하고 현대적이어 보이는 집 인테리어와 아주 잘 어울렸다. 그가 연회색 금속성의 냉장고 문을 열고 내부를 살피다가 간단한 음료를 꺼내 마시는 모습에서 미세한 짜증이 느껴졌다. 대놓고 싫은 기색을 내는 것은 아니었으나 오히려 약간은 본심을 억누르는 듯한 태도 자체가 그의 불편함을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 그의 모든 기척은 마치, ‘이 저녁 돌아와 보니 손님들로 우글거리는 작은 난장이 이루어졌군. 내 소유의 집이지만 다시 적응해야만 하겠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비키가 이런 저런 다정한 시늉을 내려 했으나 그는 피곤해 보였다. 마침 시간도 늦고 해서 그가 우리들을 차로 데려다 주었다. 그는 적어도 끝까지 신사다움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런 느낌은, 여유 있어 보이려는 듯 구사하는 일련의 유머들과 또 외국인인 우리를 위해 일부러 느리게 또박또박 말하는 태도에서 두드러졌다. 그러는 새 기숙사에 도착했고 끝이 살짝 불편했던 이 저녁은 마감되었다.
이후 에리나를 통하여, 언젠가 그들이 크게 다투었고 이어 다시 화해하기를 반복하며 지내고 있다고 들었다. 비키는 두 학기를 마치고 오래지 않아 남자 친구의 비즈니스 관계상 함께 아프리카로 떠났다. 그리고 사랑싸움하는 둘 사이에 끼어 있기는 불편할 거라는 감을 일찍 잡은 에리나는 우리의 꼬드김대로 우리 쪽 기숙사에 합류했다. 에리나는 매일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우리 모두의 하루하루가 마치 시트콤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즈음의 삶은 딱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