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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연 Apr 04. 2024

생선 맛은 머리라던데?



 

    학기가 언제 시작했나 싶게 종강 즉 방학이 가까워온다. 

    학기 초에 김치와 건어물 등의 기본 먹거리를 택배로 받은 덕에 하루 한 끼 저녁 정도는 꼬박 한식으로 해 먹을 수 있었다. 맨 처음 우체국에서 택배를 찾을 때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우체국에 들어서자마자 얼굴이 확 붉어지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우체국 안에 가득 번진, 역력한 김치 냄새 때문이었다. 택배 상자를 찾아 주는 직원이 핀잔을 날린다. “그렇게 냄새가 고약한 거는 일찌감치 찾아가야지!” 

    상자가 젖어 그 안의 다른 물건들에까지 김치 국물이 번져 있었다. 안전한 배송을 위하여 비닐로 칭칭 감싼 것이 그만 팽창해 터져버린 것이다. 이때의 민망한 기분으로는 다시는 우체국에 가지 못할 것 같았다.



    이런 대가를 치른 후, 프랑스에서의 내 요리 전략은 이랬다. 우리나라에서 온 다시마와 멸치, 표고 등으로 국물을 만들고 여기에 현지 조달한 신선한 고기, 생선, 야채를 넣어 끓였다. 요리의 이름표는 된장을 푸느냐 맑은 국물을 만드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었다. 요리재료는 대부분 방과 후 르클레르에서 해결했지만 가깝게 동네 슈퍼에서 물, 음료, 과일이나 채소를 리필할 때도 있었다. 기숙사 바로 옆에는 레 카트르 세종LES 4 SAISONS(4계절)이라는 작은 가게가 있어 나는 여기를 ‘사계절 슈퍼’라 부르곤 했다.




4계절 슈퍼






    르클레르로 말하자면 거기는 내게 의식주에 관계된 수많은 어휘들이 진열된 곳이기도 했다. 그동안 어학 교재에서 그림으로만 그려져 있던 온갖 식료품과 물품들은 우리 문화와 달라 생소해서 뇌리에 박히지 않는 것들도 많았는데, 이런 문제란 현지에서 몇 번만 장을 보면 절로 입력되어 해결되는 것이었다. 


    특히 생선 구경을 좋아하는 나는 자주 생선 코너를 어슬렁거렸다. 나의 관찰에 의하면 매주 화요일은 이 코너에 생선들이 새로 들어오는 날이었다. 생선 코너는 눈과 비늘과 아가미에 윤기를 가득 머금은 생선들로 채워지고 해물들 또한 그들 최대한의 꿈틀거림을 담고 놓여진다. 생태, 대구, 오징어, 조개류를 비롯 우리나라에서 보는 웬만한 종류는 다 있다. 고등어는 말할 것도 없고 물컹물컹 흐드러지는 아구며, 은빛 껍질을 싹 벗겨놓은 바람에 버젓이 은갈치라고는 부를 수 없는 길다란 민갈치, 정어리며 참치에....또 전혀 구경조차 해 본 적 없는 물고기들도 더러 있어 그 다양한 이름은 지금도 겨우 몇 종류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 날 나는 생태를 발견하여 날도 쌀쌀해지는 마당에 생태탕을 끓여먹기로 작정한다. 번호표를 뽑아 들고 순서를 기다렸다.

    "엉 메를뤼, 실 부 플레!"Un merlu, s'il vous plaît!(생태 한 마리 주세요!) 

    “쿠페 라 테트?”Coupez la tête?(머리 잘라 드릴까요?) 

    흰 모자를 쓴 직원 아가씨가 묻는다. 아, 여기서도 생선을 손질해주는가보다 싶어 대뜸 그래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생선 머리를 단숨에 내리쳐 동강내더니 쓰레기통에 휙 던져 버렸다. 순식간이었다. 생선으로 국물 요리를 거의 해 먹지 않는 그들로서는 머리는 그냥

버리나 보다. 다시 주워 담아달라고 할 수도 없고, 떨떠름한 기분으로 봉지를 받아든 나는 마트를 한 바퀴 돌도록 통 기분이 나아지질 않았다. 그리하여 그다음부터는 같은 질문에 당당히 외치곤 했다. “농, 자메 쿠페 라 테트!Non, jamais coupez la tête!”(절대 머리를 자르지 말아요!)

    이후로는 통째로 받아와 근사한 국물을 자주 만들어 먹었다. 추운 계절을 생태들와 더불어 헤엄쳐 나갔다.




자주 해먹던 아구탕



    또 한 번은 이 생선 코너에서 빛깔 좋은 참치 덩어리를 사다가 참치회덮밥을 만들어 먹었다. 호사스런 요리임에도 비용조차 저렴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만만하게 이 요리를 죽 해 먹으리라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는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뉴스에서는 붉은 참치 어획 중단 소식이 들려왔고 이와 더불어 마트에서는 붉은 참치가 안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시장의 상태를 확인하고자 직원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는 당분간 참치는 안 들어 올 거라고 답했다. 그리고 주춤 뜸을 들이더니 애매하게 덧붙였다. “일주일이나 한 달 후에는 혹 있을 수도 있고요.” 아닌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 간헐적으로 참치가 오긴 했는데 늘 싱싱한 것은 아니었다.



    먹는 일뿐만 아니라 의식주 전반에서 해결해야 할 사소한 것들이 생겨났다. 이 도시에 비가 많다 한들 역시나 유럽은 건조하여,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머리에서 비듬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성진 씨도 그가 감정의 강렬함을 나타낼 때 늘 그렇듯 눈동자를 위쪽으로 잔뜩 몰리게 뜨고는 말했다. “오랄라! 머리에 비듬 생기는데 어찌나 쪽팔리던지요, 선생님이 민간요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어요. 여하튼 헤드 앤 숄더 샴푸로 해결돼요.”


    우리나라와는 조금씩 다른 사계四季를 살아나가는 매일매일이 임시방편의 실험장이 되곤 했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서로에게 생활의 팁 한 가지씩 가르쳐 주기’를 할 때, 나는 기관지가 예민한 이시도라에게 습기공급을 위해 젖은 수건을 활용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젖은 수건 너는 것은 우리네에게는 익숙한 일인데 의외로 외국인들에게는 생소했던 듯싶다. 마리 크리스틴조차 이걸 따라 해 봐야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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