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시간
옛날,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의 삶은 모든 가슴들이 열리고 온갖 술이 흘러 다니는 하나의 축제였다. -아르튀르 랭보
카니발의 절정, 일요일에는 포의 거의 모든 시민이 거리로 나와 약 2만 명 규모의 엄청난 행진을 했다. 대 여섯 축제음악 그룹들이 만들어내는 어마어마한 타악기 소리에 맞춰 다들 가장행렬을 따라갔고 종일 색종이 가루가 2월의 눈송이처럼 흩날렸다.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스펙터클이었다. 닭으로 분장한 할머니들, 인어공주, 백설공주, 네로황제, 포도송이, 허수아비 등 없는 게 없었다. 떠들썩했고 모든 게 다 허용되었고 온갖 근심이 사라진 채 마냥 신났다. 사회에서는 어떤 관계건 간에 여기서만큼은 모두 가슴을 열고 참여한다. 수만이 모여도 만취하여 행패 부리는 이를 보지 못했다. 싸움도 갈등도 없이 함께 어우러졌다.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내가 되어 공동체 속에서 다시 생명력을 얻는다. 천국이었다. 그곳이. 그 날이.
행렬 속에는 더러 우리 학교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누비아 이시도라 하루카 미츠요...... 실비앙의 퍼커션 팀에 속한 케이는 화려한 가발을 쓴 채 연주를 하고 돌아다녔다. 유준은 이모부와 이종사촌 꼬마 루카와 돌아다녔는데 나와는 어딘가에서 만났다 행렬에 묻혀 서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가 다른 거리에서 다시 마주치기를 반복했다.
이날 저녁, 샤피토에서 유준과 한 잔 하고선 신이 나서 춤을 췄다. 8,90년대의 열기 속으로 들어가 보시죠 하는 사회자의 안내 멘트와 함께 익숙한 음악들이 장내를 메운다. 모던 토킹의 곡이 흐른다. ‘유 아 마 하트 유 아 마 소울, 암 유어 비너스 암 유어 파이어’. 이국생활에서의 긴장을 모두 놓은 순간이었다.
조카뻘 되는 유준에게 나는 엄마 같은 누나다. 하지만 보기 드물게 천진한 데다 이상하리만치 관대한 마음을 가졌기에 유준은 그의 나이와 키보다도 훨씬 커 보인다. 유준은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자신의 비밀을 다 꺼내놓았다. 유준에게 한국에서의 일들은 그의 짧은 생애 전체를 통틀어 악몽이다. 그는 만만찮은 스토리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유복한 집안 아이였지만 유복이 곧 가족의 화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험난한 가족사를 겪었고 그 예사롭지 않은 과거의 모든 실타래를 여기서 헤쳐 나가며 거의 운명과 싸우고 있었다. 프랑스에 오기 전에는 큰 오토바이 사고까지 당해 힘들게 재활했으나 심신이 옛날 같지 않았다. 사고 직후 깨어났을 때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몇 살 박이 어린이의 뇌 상태였다고 한다. 여전히 몸은 성치 않아 넘어지거나 부딪치는 것, 누군가에게 맞는 것 등을 조심해야 했다. 언젠가 그와 쇼케이스에서 맥주를 마실 때 그는 재킷을 벗어 테이블에 흘려진 술들을 닦으며, 내가 그의, 예기치 않게 세상을 떠난 친어머니와 닮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비밀로 하라고 했으나 나 외에도 그의 비밀스런 삶에 대해 몇몇은 더 알고 있는 듯했다. 그는 이모 집에 기거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도 바로 학교 앞, 학교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었다. 나는 이 집에 두 번 정도 초대되어 만찬을 즐겼다.
그는 여기 포에서 삶을 다시 시작한다. 포는 자기 고향과 불협화를 일으켰던 여럿에게 출발점이 되어 주고 있다. 나는 사람이라는 장소들을 만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은 아닐까. 사람이라는 각각의 도시들, 풍경들, 나무들. 그들은 모두 그들의 숨겨진 인과를 품고 내력을 이고 다니는, 그들 본연의 자아의 흔들리는 그림자들이다.
애어른처럼 살아온 우리들, 다시 태어나는 지점에서 만났기에 더 각별하다. 어쨌든 우리들은 달팽이마냥 각자 실존의 무게를 등에 인 채 여기 성벽 위 도시에서 만나 서로 어깨를 빌려준다. 불안이라는 정글짐을 건너가는 아웃사이더들, 순전히 개인적이라 믿어온 아픔들도 축제에서는 영원이라는 행성으로 착륙한다. 거기에서 우주의 한 점 티끌 풋내기들인 우리는 꺼지지 않을 반딧불처럼 춤추었다.
마음에선 이런 장엄한 느낌이 오가는 사이, 현실에서는 어느새 여러 명의 청소년이 내 곁에 다가와 춤을 추고 있었다. 질풍노도는 목청에서부터 그 회오리를 시작하기라도 한다는 듯, 사춘기 특유의 우스꽝스런 억양을 한 한 무리의 소년들이다. 아닌 게 아니라 프랑스 꼬마들의 몹시도 귀여운 억양은 사춘기가 되면 걷잡을 수 없이 얼띤 바보 같이 변해간다. 그들은 일제히 우리의 춤을 신기하다는 듯 따라 한다. 유준과 나는 어느덧 <펄프 픽션>의 존 트라볼타와 우마 서먼이 빙의한 듯 트위스트에 복고적인 손가락 춤까지 시전해 보인 참이다. 특히 사춘기에 갓 접어든 예쁜 소녀가 수줍어하면서 내 앞에 머물며 내 동작을 따라 한다. 이름을 물어봤다. 그 이름이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세실, 마리아, 플로랑스, 그 어느 것도 아니다. 그냥 프랑스의 소녀고 언젠가 지난 세기의 나도 저런 얼굴이었으리라.
“왜 그렇게 우리 근처에 몰려들었던 거지?”
앉아 쉬는 자리로 돌아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내가 물었다.
“얘네들이 잘 노는 거 같아도 우리만큼 화끈하게 놀지는 못하니까 부럽고 신나고 신기해서 그러는 거야, 누나.”
“그런 거였네!”
나도 자부심과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의외로 우리는 그들보다 잘 노는 거였다. 이 카니발은 프랑스 북쪽에서는 많이 사라져 남쪽만 전통이 이어진다고 한다. 카니발만큼은 포에 머물렀던 게 행운이었다.
모의재판이 열리는 대법원 앞
맨 마지막 날은 대법원 앞에서 모의재판이 있었다. 해마다 왕 역할을 맡은 사람이 재판을 받고 나서 처형된다고 한다. 재판에는 베아른어語가 쓰이는데 지켜보던 군중 속에서 나이 많은 사람들은 더러 이 재판 언어를 똑같이 따라 하기도 했다. 왕은 이송되는 과정에도 몇 번이나 탈출을 도모하지만 끝끝내 잡혀 죽게 되어 있다. 모든 군중은 손에 횃불을 치켜들고 왕을 불사르는 장소까지 이동하고, 여기서 모형으로 빚어진 왕이 화형되고 나면 불꽃놀이가 하늘을 수놓는다.
끌려가는 왕
손에 손에 횃불을 들고 처형장으로 향하는 시민들
이 세레모니의 의미를 자세히 들은 바는 없다. 단지, 왕이란 모든 탐욕을 대표하므로 이 존재를 처단함으로써 모두의 죄를 대신하게 한다고 한다. 조금 비약하자면, 절대권위로서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왕’이라는 관념 자체를 심판함으로써, 일찍이 혁명을 치러낸 그들답게 시민 공동체의 주권을 확인하려는 게 아닐까 싶다. 그들은 특정 권력의 우위를 거부함으로써 시민 각자가 주인이 되는 ‘우애의 세상’에 사는 것이리라.